[단독]한국어쌤 ‘착취’로 지탱하는 한류?…계약서 모두 모아봤더니[국감2023]

조해람 기자 2023. 10. 2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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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 26곳 한국어 교원 계약서 전수분석
노동시간 깎고 노동자성 희석하는 꼼수 만연
산재보험 미가입·근로계약서 위반 ‘불법 천지’
지난 6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577돌 한글날 기념 한국어 퀴즈대회’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어 골든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한국어 교원 A씨는 입원으로 대체 강의를 진행했다가 대학 관계자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이 관계자는 쉬는 날에도 전화해서 업무와 강의 평가 등을 빌미로 화를 냈다. A씨는 “주 3일 수업을 주는 걸 혜택처럼 이야기하면서 본인 마음에 안 들면 주 2일 수업을 준다고 협박한다”라고 했다.

한국어 교원 B씨가 일하는 대학은 항상 오후 6시부터 회의를 시작한다. 회의는 매번 오후 9시를 넘겨 끝나지만, B씨는 한 번도 이에 대한 수당을 받아 본 적이 없다. B씨는 “결혼했거나 아이가 있는 선생님들은 힘들어한다”고 했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대학에서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원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어 교원은 대학으로부터 불법 소지가 큰 계약서 등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공립대조차 한국어 교원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며 산재보험을 들어주지 않거나, 실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계약을 맺어 책임을 회피했다. 법이 정한 근로계약서 내용을 모두 기재한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가짜 3.3’ 계약에 ‘초단시간 만들기’까지

2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과 경향신문은 교육부로부터 받은 국공립대 26곳의 한국어 교원 근로계약서를 전수 분석했다.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 계약서 명칭, 4대 보험 가입 여부, 노동시간, 근로조건 명시 의무 준수 여부 등을 들여다봤다. 국립법인으로 전환된 서울대·인천대는 제외했다.

26개 대학 중 21곳은 류 의원실 질의에 ‘한국어 교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한국어 교원은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라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경북대·경상국립대·목포대·서울과학기술대·창원대 등 5곳은 ‘한국어 교원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26개 대학 중 17곳이 정식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탁용역계약서’ ‘위촉계약서’ 등 계약서를 작성했다. 노동자성을 흐릿하게 하고 사용자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데도 ‘위탁’ ‘용역’ 등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계약을 맺는 것을 사업소득세 세율 ‘3.3%’를 따서 ‘가짜 3.3 계약’으로 부른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추석맞이 한복 체험 행사에서 외국인 유학생 가족이 송편을 먹고 있다. 연합뉴스

대다수 대학은 한국어 교원을 노동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는 고용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 당연가입과 퇴직금 지급 의무가 적용되지 않는다. 20개 대학이 수업 시수에 따라 노동시간을 12~15시간으로 설정하거나, 월 60시간(주 11~14시간) 등으로 설정한다고 밝혔다. 6개 대학(경북대·경상국립대·목포대·부경대·충남대·한밭대)은 아예 노동시간을 밝히지 않았는데 사용자와 협의에 따라 초단시간 노동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강의 준비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깎는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12월 대법원은 “한국어 강의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업무처리(강의 준비시간, 문제 출제, 행정업무 등)에 필요한 시간은 소정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는데 현실에서는 강의시수만 근무시간으로 치는 초단시간 계약이 만연하다.

산재보험 필수인데…절반 가량 ‘미가입’

‘가짜 3.3 계약’과 ‘초단시간 꺾기’는 4대 보험 미가입 등 구체적인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7월 기준 26개 대학 중 4대 보험을 모두 적용한다고 근로계약서에 적은 대학은 한경국립대 1곳에 불과했다. 한국어 교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고 답한 강릉원주대·국립공주대·금오공대·충남대·한국교통대·한밭대 6곳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한 경북대·경상국립대·목포대·창원대 4곳 등 10곳은 4대 보험 전체를 미적용하고 있었다.

10개 대학은 계약형태·소정근로시간과 관계없이 필수 가입해야 하는 산재보험도 가입하지 않았다. 15개 대학은 노동자를 3개월 이상 고용한 경우 가입해야 하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산재보험·고용보험 미가입은 각각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국립공주대와 금오공대, 창원대는 의원실 질의가 들어오자 뒤늦게 “노무사 자문 결과 필수 가입 대상자임을 알았다”며 “9월부터 산재보험에 가입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2019년 10월9일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 등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교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처우 개선과 사회적 지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학들은 한국어 교원들에 대해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면서도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 경북대 위탁용역계약서를 보면 “한국어 교원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휴강할 경우 대학에 최소 2주 전 통지한 뒤 대학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학의 요청에 따른 청강이나 수업 참관 요청, 특별수업 요청이 있는 경우 성실하게 협조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경북대는 류 의원실의 자료 요청에 “한국어 교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되며, 용역계약이므로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회신했다.

“나오랄 때 나오고, 주는 대로 받아라”

계약서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다. 근로기준법과 기간제법이 규정하는 근로계약서상 필수 명시 사항을 모두 지킨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임금, 소정근로시간, 휴일 등 근로조건 서면 명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기간제법상 계약기간, 근로시간, 임금 구성항목 등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한다.

임금구성항목을 미명시한 경우가 가장 흔했다. 26곳 중 23곳은 한국어 교원의 임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계약서에 적지 않았다.

26곳 중 17곳은 ‘소정근로시간’조차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다. 많은 대학이 아예 소정근로시간을 적지 않거나 ‘O시간’ 등 공란으로 비워뒀다. 사용자 편의에 따라 강의 시수를 배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서울시립대와 전남대는 소정근로시간을 “주당 15시간 미만”으로 적어 어떻게든 초단시간 노동자에 해당할 수 있도록 했다.

2020년 10월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어 교원의 사회적 지위 보장·처우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어 교원 조합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기관의 의지만 있다면 한국어 교원의 ‘강의시간 외 노동’을 인정하고 초단시간 계약을 맺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은 2016년부터 지침을 개정해 주 15∼20시간 수업 외에도 20∼25시간을 보조교재 개발 등 노동시간으로 인정한다.

류 의원은 “한국어 교원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므로,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대학들이 필수 노동조건 기재 사항을 정확히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교부하고 4대 보험 가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특히 강의 준비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주 15시간 이상의 최소 노동시간 보장과 온전한 노동관계법 적용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류 의원은 이어 “한국어 교원 노동조건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한 적 있는 문체부도 관계부처와 협력하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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