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디바' 이은미, '가까운 지인'처럼 속마음 들어줍니다
'애인 있어요' '녹턴'의 작곡가 윤일상 또 협업
내년 초 정규 7집 발매 계획…"스탠더드 음악 담는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교도 기교지만 감정이 더 근본적인 이유다. '맨발의 디바' 가수 이은미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힘든 까닭이 그렇다.
'애인있어요' '녹턴' '헤어지는 중입니다' '가슴이 뛴다' 등 국민가요급 반열에 오른 곡들은 대중의 명실상부 애청곡(愛聽曲)이지만 이은미 급 보컬이 아니면 애창곡(愛唱曲)이 되기는 힘들다.
이은미가 1년8개월 만인 최근 내놓은 신곡 '괜찮을 거예요'는 애창가를 꿈꾼다. 이은미와 '애인 있어요' '녹턴'을 합작한 작곡가 윤일상이 작정하고 작업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또 원망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 곡은 코로나 시대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네 풍경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은미는 이 곡을 많은 이들이 따라 불러줬으면 했다.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만난 그녀는 "제가 팬분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뭔지 아세요?"라고 먼저 물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일문일답.
-'노래 너무 좋아요'인가요?
"실제로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이은미 씨 노래는 따라부르기 어려워요'였어요. 윤일상 씨랑 술 한잔 하면서 '따라 부르기 쉬운 음악은 어떤 걸까'라는 얘기를 나눴죠. 일상 씨가 '누나 그러면 제가 좀 쉬운 멜로디를 만들어 볼까 봐요'라고 해서 '좋지'라고 답했고, 이후에 이번 곡을 자신 있게 저한테 딱 보냈더라고요. 처음 들었을 때 쉬웠어요."
-쉬웠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랬습니까?
"기존에 윤일상 씨랑 작업한 '녹턴'이나 '애인이 있어요'보다 훨씬 쉬웠어요. 기본 멜로디 진행이 무리 없이 진행됐고 대단한 가창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었거든요. '알바트로스' 같은 곡들은 되게 고난도잖아요. 제가 음반을 한 장 만드는 중인데, 거기에 넣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여러분들한테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근데 막상 불러보니까 어렵더라고요."
-고음이 없어도 선생님 노래는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부르면 어떤 곡이든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노래를 잘 부른다'는 기준이 예전과 지금이 똑같나요.
"달리 다를 건 없어요. 음악은 목소리로 연기하는 거예요. 쉽게 얘기하면 연기자들은 온몸이나 발성을 써서 연기 하지만 음악가는 선율이나 또 악기들의 밸런스, 자기 목소리의 중심 등을 적절하게 녹여서 연기를 하죠. 그러니까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얼마나 잘 녹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따라 부르기 어렵다는 건 그런 감정을 따라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겠네요.
"제가 특별히 더 어려운 멜로디의 음악들을 부르는 게 아니라 제가 표현해낸 감정을 비슷하게 표현하는 게 쉽지가 않으신 거죠. 제가 가장 먼저 고르는 사람이다 보니까 제가 기준이 되는 거죠."
-그런데 기존 곡도 선생님이 부르시면 어렵게 됩니다.
"이번 '괜찮을 거예요'는 많은 분들이 공연장에서 쉽게 따라 부르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막상 만들어 놓고 나니까 '내가 부르면 어려워지는구나'로 결론이 났어요. 일상 씨는 이런 표현를 해요. '누나는 내가 만약에 100을 원하면 120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감정선을 항상 맥시멈으로 채워주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해요. 보컬리스트로서는 되게 고마운 칭찬이면서도 부담이에요."
-곡에 대한 몰입도·몰입력이 대단하다는 건데 같은 곡을 수백번, 수천번 부르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매번 그 감정을 평균치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대단해요. 가수분 본인들은 100% 만족하기 힘들겠지만, 관객들이 볼 때 '완벽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도 프로의 모습인 것 같아요.
"매번 그렇지 않아서 어려워요. 그런데 명성에 걸맞은 표현들을 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그 명성이라는 건 금방 사라지거든요. 그런 과정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매번 부담이 되죠. 준비를 잘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데 쉽지는 않습니다. 리허설을 하는 단계부터 공연이 끝나 관객들과 헤어진 뒤 귀가를 할 때까지가 공연의 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리허설 할 때부터 제가 굉장히 많이 긴장하고 예민해져 있죠. 일할 때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공연 전날 한번도 숙면이라는 걸 취해본 적이 없어요. 난생 처음 뵙는 분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데 그분들을 또 만족시켜야 하니까 쉽지 않죠. 공연장 안에선 저한테 호의를 갖고 계신 분들이 많지만, 그 호의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거든요. 티켓값 아깝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에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건 제일 어려운 일이죠."
-일상 씨랑은 좀 어떤 점이 그렇게 잘 맞나요?
"둘 다 못된 구석이 맞죠. 하하. 자칫하면 둘의 그 예민함이 충돌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서로 존중해 줘요. 그래서 작업을 해도 부딪히는 법이 없어요. 처음부터 그랬는데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하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진 것 같고요. 일상 씨는 제가 부를 곡은 처음부터 온전하게 저를 염두에 둔다고 해요. 그런데 제가 거절하는 노래도 많거든요. 그러면 손질해서 다른 가수를 주는 게 아니라 그냥 폐기한다고 해요. 제가 자신의 가장 좋은 페르소나라고 얘기를 해주니까 너무 고마운 일이죠."
-두 분이 협업을 하신 노래들 각각 개성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애절한 정서를 기반 삼지만 무조건 부정적인 게 아니라 뭉근한 희망 같은 게 묻어난다는 거예요.
"저희 둘이 되게 시니컬할 것 같다고 많은 분들이 보세요. 그런데 그렇지는 않거든요. 일상 씨가 훨씬 더 살가운 편이고 더 희망회로를 잘 돌리죠. 작업실 위로 자기 집인데 이란성 아이를 낳고 키우고 그런 과정들도 그런 정서에 도움을 준 거 같아요. 일상 씨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아주 해맑고 건강하고 예뻐요. 특히 남자 아이는 아빠 닮아서 그런지 감수성이 대단해요. 저희 음악이 기왕이면 선기능을 좀 해줬으면 해요.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잊으시기를 바라는 거죠. 또 실연의 아픔이나 상처도 덮는 게 아닌, 지독하게 그리워해 봐야 잊히는 경우들이 있잖아요. 가까운 지인이 속마음 들어주는 것처럼 저희들 음악이 그랬으면 해요."
-일상 씨와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하세요?
"한 15년 됐는데요.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났어요. 일상 씨가 열아홉 살 때부터 활동을 시작해 20대 초반엔 이미 굉장한 히트곡들을 만들어냈어요. 너무 바빠서 녹음실에 가야 만날 수 있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일상 씨를 더 어렸을 때 만났으면 작업을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마침 저를 처음 만났을 때 경험이 많이 쌓였고 세상도 알게 된 때였죠. 또 제가 일상 씨가 만든 노래 중에 박지윤 씨가 불렀던 '스틸 어웨이'를 좋아했어요. 편곡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박지윤 씨가 부르는 느낌도 좋았어요. 동양적이면서, 어렵지 않은 멜로디의 구성이 묘하더라고요. 일상 씨가 갖고 있는 이전 댄스곡들과 분위기가 달랐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일상 씨 작업 중 뮤지컬 '서편제' 넘버를 좋아합니다.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작곡가예요. 그래서 선생님도 뮤지컬 무대에 서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실제 뮤지컬 '서편제'의 주인공을 맡을 사람이 몇 안 되잖아요. 그 스펙트럼을 소화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거죠. 일상 씨도 뮤지컬 얘기를 하긴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계속 필드에서 공연을 하고 있고 음반도 내고 하고 있으니까 좀 부담되는 일 같기도 해요. 사실 데뷔 직후부터 뮤지컬 권유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늘 고사한 이유는 '뮤지컬은 뮤지컬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연기도 하고 춤도 추고 앙상블 연습도 하고 대사도 연습하고 연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뮤지컬 무대는 그렇게 준비하는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죠. 저는 연기도 자신 없고 춤도 자신 없어요. 제가 갖고 있는 조금의 보컬리스트 경력으로 그 분들의 무대를 빼앗는 건 싫어요."
-올해 2월부터 라이브 투어 콘서트 '녹턴'을 돌고 있는데요. 코로나 이후에 열리는 투어라 소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공연장 분위기가 너무 좋고요. 관객분들도 진짜 오래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 공연을 몇 번 시도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좋죠."
-공연 타이틀을 '녹턴'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4년여 만에 콘서트 투어를 시작한 거잖아요. 그 4년이 제게 엄청 긴 시간이더라고요.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전 1년에 최소 35회에서 많게는 55회 정도 공연해요. 그러니까 4년 동안 최소 120회를 못한 거죠. 오랜만에 관객과 대면하는 공연이니 '가장 이은미다운 모습을 추려보자'고 생각을 했고 '이은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뭘까' 고민하다 역시 '녹턴'일 것 같아 정했죠. '녹턴'이라는 타이틀로 관객 여러분들을 꼬시는 거죠. '이은미 공연해요. '녹턴'도 부를 거야 이렇게요. 하하."
-녹턴은 존 필드, 쇼팽 같은 클래식음악 작곡가들의 곡 제목으로 알려졌는데 '야상곡'이라는 뜻이잖아요. '밤의 성질'을 갖고 있는 곡인데 어두운 가운데서도 달빛이 있는 분위기가 선생님의 곡 정서와도 어울립니다.
"굳이 철학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저도 그렇고 일상 씨도 그렇고 음악가는 약간 멜랑콜리(melancholy·우울 또는 비관주의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라는 사람의 성향을 파악해 보면 아주 큰 부분을 우울감이 지배하고 있거든요. 제 밑바탕의 80% 정도는 늘 우울감이 깔려 있어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이 부분에서 영감을 받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거죠. 서양적으로 말하면 '블루'에 있는 거죠. 블루는 우울에 가깝고 그건 외로움, 쓸쓸함과 맞닿아 있죠. 그리고 결국 그리움과 접해 있는 거 같아요."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시는데 KBS 2TV 신규 예능물 '골든걸스' 첫 방송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를 필두로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선생님과 함께 디바 그룹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건데 어떠세요?
"힘들어 죽겠어요. 일단 쑥스러움을 해결을 못하는 게 쑥스러워서요. 무대 위에서 음악만 연주하면 됐던 사람이 다른 것도 신경을 써야 되는 거잖아요. 팀의 일원이니 밸런스도 생각을 해야 되고, 제가 춤을 배워본 적이 없으니 다른 세 분한테 너무 미안한 거죠.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제 몸을 그렇게 써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제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있는데 '저게 내 모습인지 아닌지' 헷갈려요. 현장 분위기가 아주 가관입니다. 카메라 감독님들은 막 쓰러지고요. 하하. 무안해 죽겠어요. 제가 뻔뻔스럽지가 못해서요. 틀려도 뻔뻔스러워야 되는데요."
-근데 선생님은 무대 위에서 열정적인 가운데 지킬 건 다 지켜오셨다는 느낌이에요. 특히 사람에 대한 예의 측면에서요.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 감사해요. 사실 그게 쉽지는 않죠. 제가 올해로 데뷔 34주년을 맞았는데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프로 가수로 살았어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운을 제가 다 갖고 와서 쓴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죠. 특히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면서 제 길을 열심히 닦아가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건 작업 자체였어요. 제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이 있으면, 그 음악을 최고로 잘 만들어줄 사람들과 작업하는 게 가장 중요했죠."
-정규 7집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그 내용에 대해 힌트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스탠더드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까 오래 들리고 편안한 음악이요. 30년대에 나왔던 재즈 스탠더드가 기준이 된 것이고요. 재즈가 기준이기는 하지만 어렵기보다 더 대중적이고 쉬운 음악을 만들고자 해요. 내년 봄에 발매할 계획인데 제가 89년부터 시작을 해서 LP, 카세트 테이프, CD, 음원을 모두 거쳤죠. 근데 여전히 LP 같은 아날로그가 좋아요. CD로 들으면 그 공간의 배음(背音)들이 싹 다 지워지는 거 같아요. 그게 상당히 피곤하게 느껴져요. 사람들이 왜 다시 LP를 들으면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지 알 거 같아요. 녹음 작업도 번거롭고 제작비가 많이 들더라도 최대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하려고 하죠."
-선생님은 콘서트 제작비도 무대랑, 음악 자체에 다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돈 때문에 음악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전 제 자존감을 세우기 충분할 만큼 벌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요즘 음악하면서 일상 생활이 안 돼 투잡, 스리잡 하는 친구들이 엄청 많거든요. 요즘 음악하는 후배들에 비하면 저는 진짜 너무 조건이 훌륭하죠. 그러니까 자꾸 돌아보게 돼요. '내가 부족한 건 없나. 그들에 비해서 내가 너무 많이 누리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니 제 개런티를 양보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에요. 돈을 양보해서 얻는 건 진짜 쉬운 일이에요. 제일 어려운 거는 사람을 갖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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