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대선] '좌파 핵인싸' vs '극우 괴짜'…결선투표 시계 제로
마사, 여당 프리미엄·신뢰 높은 정책 활용해 정권 재창출 '승부수'
밀레이, 과격 공약 확장성에 걸림돌…反정부 민심 자극해 재역전 모색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내달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권을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이게 된 좌파 집권 여당의 세르히오 마사(51)후보와 자유전진당의 극우 괴짜 하비에르 밀레이(53)후보는 모든 면에서 서로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지난 8월 예비선거 이후 최근 선거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위를 지켜온 밀레이 후보가 본선에서 마사 후보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며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됨으로써 4주 후 결선투표에 대해선 현재로선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황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대선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에 오른, 현 정부 경제장관인 마사 후보는 여당 후보로서 각종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며 승부 굳히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정치 아웃사이더 밀레이 후보는 다시 도전자의 입장에서 여당의 실정과 기성정치권에 대한 여론의 반감을 등에 업고 재역전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페론주의' 단단했다…마사, 경제위기 책임론에도 디테일로 승부
'열세'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본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오른 집권여당의 마사 후보는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를 지배한 최대 정치 세력, '페론주의'(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정부에서 경제 장관을 맡고 있는 그는 하원 의장, 티그레 시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 주요 핵심 보직을 역임했다. 정치 아웃사이더인 밀레이 후보가 '배격 대상'으로 꼽는 주류 정치 세력인 정도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정치의 '핵인싸'(핵심 인사이더)이다.
2015년 대선에 출마한 적 있는 마사 후보는 본선에서 3위에 그치며 결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당시 대선에서는 본선 2위에 올랐던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이 결선에서 다니엘 시올리 후보를 꺾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밀레이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대중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선거 운동 기간엔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 및 전임 경제 장관들과 약간씩 거리를 두며 현 정부 '실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모습도 보였다.
마사 후보는 특히 장관으로서 미국·중국·브라질을 비롯한 주요국과 쌓은 스킨십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고 있다. 그는 대선 캠페인 전 외채 재협상을 진두지휘하며 나름 성과를 올린 바 있다.
마사 후보는 수출을 늘리고 달러 지출을 줄이는 조처를 통해 달러 준비금을 축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이 아이디어는 중국 위안화 사용 확대를 지렛대 삼고 있는데, 실제 그는 몇 차례 방중을 통해 중국과의 밀착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가 승기를 잡게 된 건 선전·선동보다는 디테일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 영향을 미쳤다.
빈곤층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 보조금 도입과 달러 암시장 단속 강화 등 정책 면에선 밀레이 후보와 비교하면 온건한 노선을 취하면서 신뢰도 높은 정책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디지털 통화 도입 등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점도 '숨은 표'를 끌어내는 데 주효한 것으로 평가된다.
경제위기 불안 속에 정책적 신뢰를 심어준 게 유권자들에게 주효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어 결선 투표를 앞두고 이런 전략을 극대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과격 언행이 발목 잡았나…밀레이 열풍 '주춤'
밀레이 후보는 8월 예비선거(PASO)에서 1위에 오르며 변방의 정치인에서 단숨에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당시 마사 후보는 2위, 정당 합계표 기준으로는 중도우파 제1여당에까지 밀려 3위에 그쳤다.
밀레이의 예비선거 1위 배경에는 연간 인플레이션 140%, 빈곤율 40%의 절망적인 경제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며 "기성 정치인을 다 쓸어 버리자"는 취지의 비속어 섞인 과격한 연설이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진 이들을 주요 지지층으로 포섭했다는 것이다.
그는 22일 본선을 앞두고 시행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선두를 유지하며 대권 가도를 탄탄대로처럼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밀레이의 정제되지 않은 언행과 과격한 공약은 본선에선 되레 패착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밀레이 후보는 아르헨티나 페소화를 '배설물'로 표현하며, 자국 통화 대신 달러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경제위기에 불안을 느끼는 유권자들을 겨냥한 공약이었으나 오히려 이런 공약이 유권자들의 불안 심리를 더 크게 자극하며, 사실상 아르헨티나 사회에 통용되는 '비공식' 환율 시장을 크게 요동치게 했다.
그 여파로 밀레이 후보의 과격한 공약의 위험성이 그대로 노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또 중앙은행 폐쇄 공약을 내세우면서 "중앙은행을 폭파해야 한다"라는 용어를 쓸 정도로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 효과와 이에 따른 물가안정 기능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밀레이 후보는 자국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을 '악마', '공산주의자'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 70∼80%가 가톨릭 신자인 아르헨티나에서 이 발언은 다른 대선 후보들의 지속적인 공격 대상이 되면서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밀레이 후보는 "틀렸다면 사과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이 오버랩되는 총기 소지 완화 정책을 비롯해 1976∼1983년 이른바 '더러운 전쟁' 시기라고 불리는 군사 독재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해 "피해자 규모가 과장됐다"며 재평가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지지층 확장을 가로막은 자충수로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내달 건곤일척 맞대결…변수는 '3위 표'
라나시온과 클라린 등 현지 매체는 두 후보의 결선 진출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면서도, 순위만큼은 "놀라운 결과"라고 보도했다.
예측불허의 결선을 앞둔 두 후보는 공히 결선 진출에 실패한 후보 지지자들의 표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3%대의 득표율로 본선에서 3위를 차지한 파트리시아 불리치(67) 후보 지지자들의 표심이 어디로 흐를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불리치 후보는 정치 이념 지형상으로는 중도우파다. 단순하게 보면 밀레이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리치 후보 지지자 중 밀레이 후보에게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게 현지 매체들의 분석이다. 중도 성향의 페론주의자들도 불리치 후보 주요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상황이다. 이는 마사 후보 캠프엔 긍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밀레이 후보가 전기톱을 들고 유세에 참석하는 등의 거친 모습을 계속 유지할지도 관심사다.
득표율 면에서 예비선거(29.8%대)와 본선(30.0%대)이 거의 유사한 상황에서, 그가 얼마나 확장성을 확보할 지도 관전 포인트다.
밀레이 후보로선 현 정부 때리기로 수세 국면을 전환하는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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