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백투백시어터 "장애가 타인 아닌 자기 이야기란 자각 선사"
모두예술극장서 연극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 성료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우리는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야. 다들 내가 이 표현을 써도 괜찮아?"
지난해 '연극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 입센상을 수상한 호주의 극단 백투백시어터가 지난 19∼22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연극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를 올렸다.
백투백시어터는 지적장애를 가진 배우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극단이다. 1987년 호주 남부 소도시 질롱에서 창단된 이 극단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포용성과 예술적 우수성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를 이끌고 가는 것은 지적 장애를 가진 배우 세 명이다. 이들은 뭉개지고 느린 발음이나 종종 일어나는 근육경련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연기한다.
극의 배경은 질롱에 있는 마을회관. 사라, 스콧, 사이먼은 모임의 주최자로 장애에 관한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자신들의 생각을 말한다. 그렇다고 연극이 장애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선입견을 파고드는 데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의 토론 주제는 곧 인공지능(AI)으로 넘어간다. 모든 면에서 사람을 능가하는 AI가 표준화된 미래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장애가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을 시도한다.
백투백시어터의 예술감독 브루스 글래드윈(57)은 23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타자성'(otherness)이 공연의 핵심 주제라고 강조했다.
글래드윈 감독은 "공연 처음에는 세 명의 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발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미래에 관객과 인공지능이 맺게 될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며 "우리는 관객이 처음에는 이 공연이 '타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흥미로운 극적 전환은 관객들에게 소외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관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현대의 불안감을 다룬다"고 덧붙였다.
극초반 사라와 스콧이 무대 바닥에 마치 객석과 경계선을 긋듯 테이프를 가로로 길게 붙였다가, 토론이 모두 끝난 뒤 이 테이프를 떼어내는 모습에서도 이런 연출 의도가 드러난다. 테이프가 떼어지는 순간 무대와 객석,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너진다.
극 중 펼쳐지는 장애에 관한 토론은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대표적으로 '장애'(disability)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스콧은 자신의 임상적 진단을 공유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답하고, 사라는 장애라는 단어가 자기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신경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어떠냐고 말한다.
글래드윈 감독은 질문을 던지되 명쾌한 답을 주지 않은 이유에 대해 "장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하듯 용어 역시 항상 변한다"며 "가장 가치 있는 방향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냥꾼의 먹이가 된 그림자'는 공연 내내 현실과 세 배우의 토론이라는 연극적 상황을 교묘하게 왔다 갔다 한다.
극 중간 배우가 관객들을 가리키며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스콧에게 야유를 보낼 사람 있나요?"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배우들의 실명이다. 무엇보다 토론 중 장애인들이 불임시술을 당했다거나 칠면조 가공 공장에서 30년 동안 노예로 착취당했다는 등의 지적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이거나 최근까지 뉴스에 언급됐던 일들이다.
글래드윈 감독은 이런 연출적 기법에 대해 "사실과 허구 사이의 모호함을 활용했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전기적인 이야기와 가상의 이야기 사이의 긴장감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며 "이는 갈등이나 혼란을 탐구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기에 매우 생산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를 가진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는 데는 어떠한 어려움도 없다. 이들과 함께 창작한 작품들은 복합적이고 다양하며, 여러 면모를 지니게 된다"고 덧붙였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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