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지옥’ 등 만든 드라마 EP들의 이야기 책으로 나왔다…‘파워하우스;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2023. 10. 23. 11: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이태원 클라쓰’ ‘재벌집 막내아들’ ‘소년심판’ ‘지옥’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한국 드라마 EP(Executive Producer) 10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김일중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장(문화콘텐츠학 박사)이 쓴 ‘파워하우스;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인물과 사상사)다.저자는 EP들의 이야기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프로듀서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끄집어낸다. 또한 인터뷰라는 형식 덕분에 두 사람의 ‘티키타카’로 재미를 더하는 것은 물론 속도감 있는 흐름으로 순식간에 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게다가 현장감 넘치는 입맛을 살린 덕분에 일분일초를 다투는 제작 현장의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조명받은 적 없지만, 드라마 산업에서 크고 무거운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 고민, 현실 인식, 꿈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EP들의 이야기를 통해 급변하는 한국 드라마 산업의 횡단면이 드러나기를 기대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콘텐츠 제작 산업의 생태계가 급변하는 지금 이 책은 콘텐츠 업계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지상파와 케이블 TV를 통해서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OTT를 통해서도 드라마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소비 지역이 글로벌화되고, 드라마 제작비는 크게 늘어났다.

넷플릭스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에 한국 작품에 투자한 규모는 5천억 원이며 오리지널 15편이 제작되었다. 2023년 화제작 디즈니플러스의 ‘무빙’ 제작비는 500억 원대에 달하며, 2024년 기대작으로 꼽히는 ‘폭싹 속았수다’의 제작비는 600억 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백억 원이라는 큰돈이 오가는 드라마 판을 움직이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바로 ‘EP(Executive Producer)’다. 지휘자가 여러 악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게 이끌어나가듯이, 아이템 선정부터 감독·작가·배우 캐스팅, 투자 유치, 마케팅, 판매까지 한 편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판을 짜고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는 이가 바로 EP다.

하지만 EP가 이렇게 중요한 일을 담당함에도 EP라는 존재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실제로 작품이 흥행하더라도 주목을 받는 것은 배우·감독·작가뿐이다. 이 책은 그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EP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 책의 제목을 ‘파워하우스;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라 지은 것도 그 때문이다. ‘파워하우스’는 어떤 분야나 시장에서 큰 영향력과 성과를 보유한 개인 또는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책에서 파워하우스 EP는 제작비를 투자해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 제작을 주도하고 감독과 협업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사람을 칭한다.

이 책의 저자 김일중이 만난 10인의 EP는 각자의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들이 추구하는 스토리도, 지향하는 제작사의 형태도 전부 제각각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그들은 미국의 마블스튜디오처럼 드라마를 시리즈화화고,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제작 환경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제 막 이 일에 발을 디딘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덜 겪으며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파워하우스;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저자 김일중 콘진원 부장.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동안 미처 잘 몰랐던 한국 EP의 지형을 그려나가는 첫 단추가 될 것이며, 같은 일을 업으로 삼고 이들에게는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에는 EP 10인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책은 단순히 이들 10인에 대한 성공담이 아니다. 지금과 달리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OTT 플랫폼과 손을 잡고 드라마를 제작한다든가, 모두가 외면하는 소재로 꾸준히 드라마를 제작함으로써 자신의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등 온갖 실패와 불안으로 가득했던 시기를 통과하면서 지금의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낸 이들의 분투기다.

이 책에 소개된 10인의 EP들이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다. 번번이 캐스팅을 거절당하거나, 편성을 받지 못하거나, 막대한 금액을 들여 작품을 찍었지만 채널을 확보하지 못해 방송을 하지 못한 일은 부지기수다. 게다가 신인수 대표처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고 연봉이 안정된 회사를 박차고 나와 늦깎이에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뒤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하면서 멸시를 받으며 일을 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무수히 많은 실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EP들의 이야기를 통해 직업으로서의 사명감뿐만 아니라 삶을 마주하는 태도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스튜디오329 윤신애 대표는 김종학프로덕션 1기 출신으로,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확장했다고 평가받는 ‘인간수업’ ‘글리치’ 등을 제작했다. 특히 그는 ‘인간수업’에서 기존 한국 드라마의 관행이었던 크레디트에 ‘제작’이라는 문구 대신에 ‘Executive Producer’라고 명시해놓음으로써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엔터미디어픽쳐스 이동훈 대표는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혀를 끌끌 찰 때도 백인 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강고한 성인 할리우드에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린 끝에 한국 드라마 ‘굿닥터’의 리메이크작인 ‘The Good Doctor’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길픽쳐스 박민엽 대표는 ‘스토브리그’ 같이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 제작을 추구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획 맛집’을 꿈꾼다. 가장 주목받는 제작자인 클라이맥스스튜디오 변승민 대표는 후발 주자임에도 남다른 추진력과 속도로 앞선 이들을 따라잡으며 자기만의 영토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하이지음스튜디오 한석원 대표는 ‘협업’ 덕분에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으며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제 잘난 맛에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세상이 되어버린 요즘, 그가 추구하는 일의 방식은 우리의 태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팬엔터테인먼트 김희열 대표와 래몽래인 김동래 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 시장을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양질의 한국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드라마 시장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작사가 IP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IP가 왜 중요한지, 제작사가 왜 IP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한국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빅오션이엔엠 신인수 대표가 추구하는 제작사의 미래도 IP 확보와 관련 있다. 그는 드라마를 기반으로 영화, 뮤지컬, 공연, 음원,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을 꿈꾼다.

히든시퀀스 이재문 대표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제작자다. 그는 소위 말하는 ‘스타(한류배우) 캐스팅’이나 ‘성공불변의 장르’에 기대지 않는다. 오롯이 작품의 색깔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게다가 그는 ‘제작사 팬덤’을 꿈꾼다. 제작사와 팬덤이라는 말은 매치가 안 될 정도로 부자연스럽지만, 팬덤을 구축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내놓는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걷고자 하는 길이 정도正道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연스레 그를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와이낫미디어 이민석 대표는 제작사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지털콘텐츠스쿨의 학장이기도 하다. 그는 출중한 크리에이터를 양성해 그들을 칸에 보내는 원대한 꿈을 지니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이재규 감독은 추천사에서 “한국 드라마 EP들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와 다름없다. 작가의 대본을 느끼고 해석하며, 감독·배우·스태프가 최고의 앙상블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나가는 영웅들이다”고 전했다.

홍경수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전 KBS PD)는 “감독의 시대, 작가의 시대를 거쳐 EP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책은 세계적인 K-콘텐츠의 핵심인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EP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며, 드라마의 최종 책임을 지는 EP들의 작업 과정이 섬세하게 묘파되어 있다. K-콘텐츠의 현재와 미래가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고 썼다.

저자인 김일중 박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미국사무소장과 아카데미운영팀장을 역임했고, 여러 해 동안 방송산업팀에서 드라마 제작 지원과 수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혁신·IP전략TF팀장을 맡고 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JTV전주방송, KBS 사내기업 굿모닝코리아, KBS플러스에서 다수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KBS 공사 창립 30주년 HDTV 특별 기획 5부작 ‘소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KBS 스페셜 ‘세 마을 이야기’로 아시아태평양방송개발기구AIBD 최우수 TV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한국 드라마 기획 개발과 비즈니스를 주제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21년에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드라마 제작사의 기획개발 동적역량과 기업성과의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wp@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