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선 외국인 돌봄이 익숙하죠”…15년간 단계적 안착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근로자 50여명 중 11명이 외국인
EPA·기능실습→특정기능→개호 비자
단계적 접근으로 외국인력 신뢰 높여
“고항가 데루 우타오 우타오오~(밥이 나오는 노래를 부르자~)” “하하하, 타노시이 우타데스네(하하하, 즐거운 노래네요).”
지난 14일 찾은 일본 아이치현 도마키시의 개호시설 케어뱅크(CARE BANK). 11시 30분이 되자 단기 숙박 서비스 이용자가 묵고 있는 2층이 분주해진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개호(돌봄) 시설 단기 숙박 이용자들을 이동시키며 단란한 대화를 이어간다. 한 할머니가 재치 있는 한 마디를 던지자 함께 있던 외국인 근로자가 활짝 웃으며 장단을 맞춘다.
센 마사엔 케어뱅크 대표는 “상당수 개호 시설에 외국인이 종사하고 있어 이제 외국인은 ‘익숙한 존재’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명랑하고 상냥해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용자나 보호자는 한명도 없었다”며 “케어뱅크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일본 이민 정책의 핵심은 단계적 접근이다. 인력이 부족한 산업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문을 열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자국민의 반감을 줄이고, 같은 업종 안에서도 여러 종류 비자 제도를 구성해 다양한 수준의 외국 인재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정책의 최전선에 개호(돌봄) 인력이 있다.
고령 노인 대상 데이 케어 서비스, 단기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어뱅크는 전체 직원 50여명 중 11명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다. 2020년부터 특정기능 1호, 기능실습생 제도를 통해 외국 인력을 쓰기 시작했다. 도쿄 중심부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걸리는 시골에 위치한 이곳은 일본인 근로자로만 채우기 어려워진지 오래다.
외국인 근로자는 일본인 근로자와 동일한 환경과 조건에서 일하며 이용자 생활 전반을 돌본다. 먼저 오전 9시께 도착한 데이 케어 서비스 이용자의 기본 건강 상태를 점검한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을 복용했는지, 체온은 얼마인지 등을 묻고 전달한다. 가장 바쁜 일은 식사와 목욕이다. 30~40명 가량의 인원이 식당과 빈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혼자 식사하기 힘든 고령의 노인 옆에 앉아 식사도 보조한다.
11시 45분이 되자 니루아데 유리 세치아리 부또리(20)씨가 노인의 옆에 앉아 능숙하게 앞치마를 둘러줬다. 세치아리 씨는 인도네시아 국적으로 케어뱅크에서 일한지 벌써 1년째다. 식사를 하던 노인이 손을 뻗자 눈을 맞추며 “티슈?”라고 물은 뒤 전달했다. 단호박 샐러드를 집어든 뒤 잠시 고민을 하더니 “치이사쿠 키리마쇼오카(작게 썰어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노인의 끄덕임에 곧바로 검지 손가락 2개 크기의 단호박을 4등분해 천천히 입에 넣어줬다.
오전, 오후로 나뉜 목욕 시간에는 이용자 1명당 2명의 근로자가 함께 움직인다. 비교적 거동이 편한 이용자는 목욕 시설 오른쪽에 자리한 탕으로 안내한다. 휠체어를 타고 있거나 혼자 움직이기 힘든 이용자는 왼쪽에 위치한 시설에서 씻긴다. 11시 36분, 식당 이동이 한창이던 시간 2층 목욕실에서는 2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오전 목욕 서비스를 마친 뒤 소독 스프레이와 물을 뿌려가며 한창 뒷정리 중이었다. 개호 시설 총책임자인 오가와 사토시씨는 “외국인 근로자는 직업 정신을 가지고 일한다”며 “목욕을 하다 노인의 반지가 빠지는 것을 본 외국인 근로자가 가족에게 ‘살이 빠져서 반지가 헐거우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가족이 매우 감사해 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만족도도 높다. 베트남에서 개호 관련 대학을 다닌 뒤 지난해 4월 일본에 온 니와얀 데뷔 크리스티안띠(26)씨는 “세계적으로 일본 개호 시설이 잘 돼있기로 유명하고 월급도 베트남보다 훨씬 높다. 해외 취업 과정도 전혀 복잡하지 않아 3개월 만에 비자가 나왔다”며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서 일할 생각이다. 가족과 상의가 필요하겠지만 좋은 사람이 있다면 일본에서 결혼해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고령자 돌봄 노동은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통상적인 제조업이나 서비스 업종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 고령자 신체·정신에 대한 지식, 체력을 요구한다. 대표적인 ‘중숙련 노동’이다.
일본은 외국인 근로자 확보를 통한 개호 인력 확충을 꾀하면서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무분별한 외국 인력 수용으로 개호 서비스 신뢰도가 떨어지거나 이로 인해 외국 인력에 대한 기피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 간사이 대학원에서 이민정책·개호 제도를 연구 중인 신지 카와노 케어뱅크 고문은 “일본이 개호 인력을 외국에서 받아들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지 않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EPA(경제협정) 개호복지사 후보자 ▷개호 재류자격 ▷기능 실습생 ▷특정기능 1호까지 총 4가지 유입 경로를 마련했다. 첫 시작은 2008년부터 운영 중인 EPA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3국과 협정을 맺어 개호, 간호 학교를 졸업한 인력을 들여오는 제도다. ‘개호복지사 후보자’ 자격으로 들어와 4년간 개호시설에서 근무한 뒤 일본 ‘개호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비자를 무기한 갱신할 수 있다. 가족 동반도 가능하다.
10년간 EPA로 외국 인력을 활용한 일본은 2017년 본격적으로 ‘개호 재류자격(비자)’을 신설했다. 전문성 있는 외국 인력을 일본 안에서 양성하기 위한 제도로 한국에는 없다. 일본 내 외국인 유학생이 간호 전문 학교 등 교육 기관(2년 이상)을 졸업하고 개호복지사 자격을 취득하면 가족 동반, 무기한 갱신 가능한 개호 비자가 나온다. 개호 외국 인력이 경력을 활용해 취득할 수 있는 최상위 비자다. 이어 2018년 기능실습생 대상 업종에 개호업을 추가했고, 2019년 특정기능 1호를 만들면서도 대상 업종에 개호업을 포함시켰다.
4개의 제도가 유기성을 갖고 연결되는 것도 특징이다. 초기 개호 비자는 유학생만 도전할 수 있었다. 현재는 특정기능 1호, EPA 개호 인력도 도전할 수 있다. 특정기능 1호 소유자가 개호 시설에서 3년 이상 근무·연수를 받거나 EPA 개호 인력이 4년 이상 개호시설에서 근무하면 개호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전제로 개호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EPA와 기능실습생이 특정기능 1호로 전환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EPA는 4년차에 개호 복지사 자격 시험에 불합격하면 본국에 돌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특정기능 1호로 전환해 일본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 기능실습생 또한 3년 동안 개호 시설에서 근무하면 특정기능 1호로 비자를 바꿀 수 있다. 가와노 고문은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아시아에서 앞선 인력 수용 제도로 평가받지만 실질적인 운영 측면에서는 일본이 앞서 있다”며 “제도에 따라 숙련도를 다르게 정하고 단계적으로 밟아 개호 비자로 수렴할 수 있게 제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개호 분야에 종사 중인 외국인 노동자 수는 ▷EPA 개호복지사·후보자 3257명(자격 취득자 635명) ▷개호 비자 5339명 ▷기능 실습생 1만 5011명 ▷특정기능 1호 1만 7066명으로 총 4만 673명이다. 아이치현(일본)=박지영·안세연 기자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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