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뚝심과 솔로몬 지혜 필요한 연금개혁[김충남의 시론]
국민연금 35년간 단 2차례 개혁
저출산 심화로 재정 악화 가속
개혁 늦어 국제 평가 꼴등 수준
정부도 국회도 개혁 의지 실종
이번에 못하면 연금 위기 직면
재정 안정 위한 단일안 내놔야
“나는 인기 없는 쪽에 설 준비가 돼 있다. 여론조사와 국가 이익 사이에서 국익을 택하겠다. 우리가 기다릴수록 (연금) 재정은 더 악화할 것이다.”
지난 3월 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 공약이자 30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연금 개혁에 승부수를 던졌다. 올해부터 18억 유로(약 2조5000억 원) 적자로 돌아선 연금 재정을 개혁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정년과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을 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안을 내놨다. 야당은 물론 국민 70%가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로 번졌지만, 의회 동의 없이 정부가 단독 입법을 할 수 있는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해 4월 15일 법에 공식 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취임 직후 연금 개혁을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하며 “인기 없는 일이지만, 해내야 한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현재 적립금이 1000조 원을 넘었지만, 단 두 차례 개혁에 그쳤다. 1998년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수령액 비율)을 70%에서 60%로 낮췄다. 60세인 연금 수급 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 조정했다. 2007년에는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40%(올해 42.5%)로 낮추는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월급(기준소득월액) 대비 보험료율은 1998년 9%(고용주 4.5%, 근로자 4.5%)가 25년째 유지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연금 재정이 악화하고 있지만, 손을 대지 못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에 따르면 연금 재정은 2041년부터 적자가 발생해 2055년엔 바닥난다. 개혁이 지체되는 사이 우리의 연금 제도에 대한 국제 평가는 꼴등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미국 연금 전문 자산운용업체 머서 등이 발표한 ‘2023 글로벌 연금지수’에 따르면 한국 연금 제도는 보장성과 지속가능성, 제도 신뢰 등에서 51.2점으로 47개국 중 42위에 머물렀다.
이런데도 연금 개혁은 후퇴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보험료율 등 모수(母數) 개혁에서 기초연금 등과 연계한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틀더니 성과물 없이 활동 기간만 내년 5월 말까지 또 늦췄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가 깎일 수 있는 연금 개혁에 사실상 손을 놓겠다는 뜻이다.
지난달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9%인 보험료율 12%, 15%, 18%로 인상 △수급개시 연령(올해 63세) 66세, 67세, 68세로 연장 △기금 수익률 0.5∼1%포인트 인상을 조합한 18개 시나리오에 소득대체율 45%, 50% 인상 안을 추가했다. 보건복지부는 재정계산위의 보고서를 토대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이번 주에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 없이 개혁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 정부에 개혁 의지가 있다면 이번에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단일안을 내놔야 한다. 재정계산위는 보험료율 15%(2025∼2035년 매년 0.6%포인트)로 인상, 연금 수급 연령 68세로 상향, 투자 수익률 1%포인트 상향, 소득대체율 40%가 조합되면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인구 위기와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 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보험료율 9%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8.2%)의 절반 수준으로 6% 정도 더 올릴 여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수급 연령도 향후 정년 연장 등을 조건으로 수용이 가능하다. 우리처럼 관대한 공적연금을 운용해온 독일·스웨덴·일본도 저출산·고령화로 위기를 맞자 선제적인 보험료율 인상 등을 단행해 재정 안정에 성공했다.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안에 반대가 적지 않겠지만,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받을 사람은 급증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한 개혁 방향이다. 동시에 기초연금 개편, 다층 보장체계, 재정의 역할 등 구조개혁의 분명한 방향도 제시해야 한다.
인기 없는 개혁안을 놓고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다. 국익을 위해 개혁을 밀어붙인 마크롱의 뚝심과 민생고를 겪는 국민 마음을 살피면서도 미래세대를 위해 보험료 인상을 논리적으로 설복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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