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기술혁신 경쟁은 규제경쟁이다
‘규제의 모래주머니’라는 말이 있다. 불필요하고 낡은 규제는 모래주머니와 같아서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성장을 저해하고 방해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규제혁신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민·관·연 합동 규제혁신추진단을 설치하고, 대통령·총리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중요 규제를 해소하고 있다. 지난 7월 국무총리를 단장으로 한 규제혁신추진단은 출범 1주년을 맞아 정부와 함께 1027건의 규제를 개선함으로써 약 70조원의 경제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는 성과를 밝히기도 했다.
과학기술 규제는 일반 규제와 다른 특성이 있다. 첫째, 일반 규제는 공정경쟁, 소비자보호 등 특정 산업과 기업에 초점을 두지만 과학기술 규제는 바이오, 인공지능과 같은 신생 기술과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한다. 둘째, 일반 규제는 통신, 은행 등 특정 산업을 목표로 하지만 과학기술 규제는 첨단 기술을 다루기에 다양한 학문과 산업 분야에 적용된다. 셋째, 일반 규제는 매우 서서히 변화하며 장기적 경제 주기에 따라 변화하지만 과학기술 규제는 매우 빠른 기술 진보속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섯째, 일반 규제는 성숙된 시장에서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지만 과학기술 규제는 신기술과 관련된 환경영향, 안전성, 윤리 등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을 중시한다. 여섯째, 일반 규제는 보통 국내 시장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과학기술 규제는 글로벌 차원의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많은 경우 국제 협력이나 협약을 통해 결정된다.
과학기술 분야 규제는 기술혁신과 시장 창출의 속도를 저해하기도 한다. 반면에 규제에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위험에 대한 보호장치 역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규제가 너무 강하면 기술 개발 자체가 매우 더뎌지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반면 세계 최초의 첨단 기술이라도 규제가 없다면 낮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리스크가 커지기에 투자를 받기 어렵고, 혁신으로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투자자에게 규제가 없다는 것은 그 기술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을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기술은 필요조건이고 이후 규제를 해결해 혁신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가가 충분조건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규제는 살아 있는 생명체, 유전자 변형, 복잡한 생물학적 프로세스를 다루기에 제품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복제, 유전자 교정, 유전자 변형 등 윤리적인 이슈가 제기되기도 한다. 또한 생물학, 유전학, 화학, 윤리 등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 개발에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되며, 규제 프로세스도 안전성, 유효성과 같은 복잡하고 엄밀한 평가를 포함해 승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특성이 있는 바이오 분야의 규제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선 바이오 제품과 프로세스를 평가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아울러 규제 프로세스를 투명하게 하고 국민을 의사결정에 참여시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잠재적인 환경, 건강, 윤리적 위험을 평가하기 위한 위험평가 및 관리 절차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빠른 혁신속도에 따라 안전 및 윤리 기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발전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적응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그동안 예방 원칙을 기준으로 시행해 온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이오 규제의 특징을 고려할 때 어떠한 안전장치나 보완장치 없이 원칙적 허용과 예외적 금지라는 네거티브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규제가 필요하지만 불확실성과 리스크 우려가 있는 바이오 데이터, 합성생물학 등 신생 기술에 대해서는 섬세한 제도 설계를 통해 지속적인 리스크 평가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제도의 경쟁력도 중요하다. 그간 기존 규제 이슈들을 핀셋 형태로 발굴하고 개선했다면 앞으로는 합성생물학 등 바이오 신기술을 어떻게 규제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논의에 과학적 사실과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과학자’가 중심이 돼 예측, 평가, 판단을 하는 규제과학을 중점 육성할 시점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2017년 발동한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 13771호와 같은 규제혁신을 국내에도 도입하고 법제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 행정명령은 ‘규제 1개를 새롭게 공표하거나 입법 예고할 경우 적어도 2개의 기존 규제를 폐지해야 하고, 신규 규제로 인한 총비용증가액이 0보다 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구 감소,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핵심 열쇠 중 하나는 기술혁신이다. 하지만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창의적 연구와 안정적 지원, 그에 더해서 신기술에 대한 신속하고 적절한 규제가 합쳐져야 한다. 그래서 기술혁신 경쟁은 곧 규제 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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