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풍경에 가을 한 스푼…큰기러기 ‘김포 체크인’

한겨레 2023. 10.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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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인 지난 9월 28일,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큰기러기가 한강하구 김포시 홍도평야에 날아왔다.

기러기는 외롭고 쓸쓸한 가을을 알리는 철새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풍요를 느끼게 해주는 가을걷이 전령사 구실도 한다.

큰기러기는 가을에 무리를 지어 찾아오는 새라 하여 '추금(秋禽)', 달밤에 떠다니는 새라 하여 '삭금(朔禽)'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지켜야 기러기도 자연과 한 약속을 지키며 이곳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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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가을 알리는 전령 큰기러기, 김포 홍도평야 찾아
추금, 삭금 등 이름도 여럿…친근하지만, 멸종위기종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기러기가 지난 9월 말 한강하구에 나타나 가을을 알렸다.

추석 전날인 지난 9월 28일,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큰기러기가 한강하구 김포시 홍도평야에 날아왔다. 부모 때부터 이어져 온 약속의 땅으로 찾아왔지만, 아직 손님 맞을 준비가 온전치 않다. 아직 농경지 추수가 시작되지 않아 큰기러기가 앉을 곳이 마땅치 않지만, 그나마 이른 벼를 심어 일찍 추수를 마친 논을 찾아 앉는다.

큰기러기는 다른 무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날아든다. 위협 요인과 천적으로부터의 방어 본능 때문이다.
우리 곁을 찾아오는 큰기러기는 정겹고 친근하다. 먼발치서 지역 주민이 농경지에 내려앉는 큰기러기를 보고 있다.
큰기러기가 보기 좋았는지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추수한 뒤 남은 낟알을 주워 먹는 기러기는 벼를 베는 농부가 반갑다. 일찍 날아와 먹이터가 늘어나는 것이다.

기러기는 외롭고 쓸쓸한 가을을 알리는 철새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풍요를 느끼게 해주는 가을걷이 전령사 구실도 한다. 큰기러기는 매우 진중한 성격이다. 월동 중에는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다툼도 없는 편이다. 자리싸움은 긴 목을 서로 낮추고 앞으로 길게 뻗어 서로 흔들며 힘 과시를 하는 정도다.

어미를 둘러싸고 있는 어린 큰기러기들은 어미의 보호를 받는다.
낱알을 먹는 어린 큰기러기를 어미가 든든히 지키고 있다.

가족애가 강해 가족과 먹이를 함께 먹고 이동도 같이한다. 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않는다. 다친 가족을 위해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례가 종종 관찰되곤 한다.

주택 근처에 앉아있는 큰기러기가 정겹다. 마치 이곳에서 키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심 속에서 큰기러기를 볼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곳 홍도평야는 기러기의 땅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들의 방해를 받아 자리를 옮기곤 한다.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며 암컷과 수컷 중 하나가 남게 되더라도 새로운 짝을 맺지 않고 홀로 산다. 그래서 예부터 기러기는 정절의 상징으로 혼례식에서도 이용된다. 신랑이 신붓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는 의식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전통 결혼식에서는 목각으로 된 기러기를 올려놓는다.

큰기러기는 매우 온순한 새다.
흰기러기와 쇠기러기 혼혈로 보이는 기러기도 홍도평을 찾아왔다.

큰기러기는 가을에 무리를 지어 찾아오는 새라 하여 ‘추금(秋禽)’, 달밤에 떠다니는 새라 하여 ‘삭금(朔禽)’이라고도 한다. 계절이 변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여겨 편지를 기러기 안(雁) 자를 써 ‘안서(雁書)’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기러기만큼 많은 이름을 가진 새도 없을 것이다.

큰기러기의 날갯짓은 언제나 힘차다.
동이 틀 무렵이면 큰기러기는 어김없이 홍도평야로 날아든다. ‘큰기러기 홍’, ‘섬 도’를 쓰는 홍도평은 기러기 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갈대 사이를 날아가는 큰기러기.
큰기러기는 도심 속 아파트를 자연 속으로 끌어들인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암컷과 수컷 모두 어두운 갈색과 흰색, 주황색으로 멋을 부리지 않은 단순한 색을 지녔다. 빛깔이 조화롭고 지루함이 없다. 주황색의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유난히 하얀 엉덩이를 실룩거려 해학적이다. 아주 순한 얼굴에, 깊고 검은 눈엔 왠지 가련한 눈빛이 서려 있다. 관찰하다 보면 무게감과 철학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큰기러기는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농경지에 떨어진 메마른 볍씨를 먹다 보면 목이 마르다. 인근 한강으로 나가 갈증을 달랜다.

큰기러기는 우리에게 가장 정겨운 새다. 그러나 기러기는 높이 날며 더러운 땅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새는 뒤돌아서지 않는다. 우리가 이 땅을 지켜야 기러기도 자연과 한 약속을 지키며 이곳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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