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수는 돼도 한국 가수는 안 된다… 中, 여전한 ‘한한령’ 고집
한국 가수 본토 공연은 사실상 불가능
FTA 협상서도 문화 개방 부정적인 中
中 공연시장 70조원 규모… 업계 초조
“중국 감사합니다, 상하이 감사합니다, 중국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미국 인기 가수 찰리 푸스(32)가 지난 13일 중국 상하이 동방체육센터에서 이같이 소리치자 2만명 가까이 들어찬 공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푸스가 중국에서 콘서트를 연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이번 푸스 콘서트의 좌석 가격은 최고 1880위안(약 35만원)에 달했지만 표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저장성 항저우에 거주하는 푸스의 한 팬은 “9월 28일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0초 만에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며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추가 좌석이 풀렸지만 모두 몇 초 만에 예매가 끝났다”라고 했다.
중국이 공연 시장을 전면 개방하고 미국 등 서방 가수에게도 공연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한국에는 여전히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금지령)’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0조원 규모(2021년 기준)에 달하는 중국 공연 시장은 최근 ‘콘서트 이코노미’라는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 문화계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인 서비스 분야 후속 협상에서도 한류 콘텐츠 유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어 업계의 초조함이 커지고 있다.
23일 중국 문화계에 따르면, 지난 여름부터 외국 가수의 중국 본토 공연 소식이 크게 늘었다. 아일랜드의 4인조 남성 그룹인 웨스트라이프는 지난달 상하이·난징·쑤저우·창사·광저우·선전에서 콘서트를 연 데 이어, 다음 달에 또다시 마카오를 찾는다. 한국 젊은층에서 인기가 많은 덴마크 출신 남성 가수 크리스토퍼는 지난 20일부터 중국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호주, 캐나다,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가수들이 중국 콘서트를 이미 마쳤거나 앞두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부터 외국인의 상업 공연의 신청 접수 및 허가 절차를 재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절엔 관련 검역을 완료한 뒤 중국 문화여유국에 공연 허가를 신청해야 했는데, 도시 간 이동을 막고 집합을 금지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사실상 공연이 불가능했다. 봉쇄가 끝나자 중국 공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공연이 열리는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면서 ‘콘서트 이코노미’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중국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콘서트 등 음악 공연은 총 506회 열렸다. 이에 따른 표 수익은 약 24억9700만위안(약 4600억원), 관객 수는 약 550만명을 기록했다. 중국 문화계는 외국 가수들의 소규모 공연이 주를 이뤘던 상반기와 달리, 연말로 갈수록 대규모 콘서트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韓 문화계엔 봉쇄 여전… 올해 초 해제 조짐도 양국 관계 악화에 실종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가수들이 중국 문화당국의 승인을 얻어 공연하고 있지만, 한국 가수의 중국 콘서트 소식은 여전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걸그룹 블랙핑크가 지난 5월 마카오에서 콘서트를 열기는 했지만, 본토까지는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재중 한국 문화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은 본토로 무엇을 들여오기 전 마카오 등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국이 블랙핑크의 마카오 콘서트를 허용한 것은 본토에 한국 가수의 진입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을 텐데, 결국 아직도 본토 시장은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중국이 공연 시장을 전면 개방했지만 한국에만큼은 2017년 사드 사태 이후로 계속해 온 ‘한한령’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올해 들어 악화된 한·중 관계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화계 관계자는 “중국이 올해 초 한국에 문화 시장을 개방하기 위해 한국서 수입한 드라마·영화 방영을 순차적으로 신청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며 “실제 몇몇 가수들의 중국 콘서트 논의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과 미국 국빈 방문 직후 얘기가 쏙 들어갔고 아직까지 문화 관련 봉쇄가 풀리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한중 FTA 2단계 협상에서도 문화 콘텐츠 부문의 자국 시장 개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15년 12월 상품 분야에 한해 발효된 한중 FTA는 서비스·투자 부문 후속 협상을 진행 중이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문화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한한령 기조가 FTA 2단계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화계 관계자는 “드라마, 영화 등은 물론 노래 가사까지 한국 콘텐츠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고, 정치적·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도 많다”며 “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중국 입장에서는 개방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연 시장은 2021년 기준 3789억위안(약 70조원) 규모에 달한다. 문화계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콘서트는 ‘단위가 다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중국 내에서 콘서트를 할 경우 한국 내 여론이 우려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업계는 기본적으로 중국 시장이 개방되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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