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와 마틴 스코시지가 제안한 공생의 방법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10월 중순 북미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영화는 다름아닌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였다. 극장 사전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빠른 매진으로 대흥행이 예상되었던 가운데, 이 공연 실황 영화는 북미 3855개관에서 개봉해 4일간 9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역대급 공역 수입을 기록한 올해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을 편집한 작품으로, 경쟁이 치열했던 라이브 공연 티켓팅에 실패해 낙심했던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다. 9000만 달러의 개봉 성적은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보다 높은 성적이고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는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이다.
그러니까 여느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 급의 오프닝 성적으로 이해하면 맞을 것이다. 극장 영화의 최대 옹호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최근 대학 강연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어떤 배급사도 거치지 않고 직접 배급한 이 콘서트 영화를 두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극장과 직접 계약을 통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보여줬다. 이것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와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다"라고 지지 발언을 보탰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 영화가 영화인가를 묻는 원론적인 질문은 일단 접어두자. 이 엄청난 성공에 고무된 극장과 음악계는 잇달아 후속 계약을 준비하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과 함께 올해 공연으로 성공을 거둔 비욘세도 자신의 콘서트를 집약한 '비욘세: 르네상스 월드 투어'를 12월에 개봉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의 팬덤 '스위프티스'가 장악한 극장가에 도전장을 던지는 대작 영화도 예사롭지 않다. 영화인 중의 영화인인 마틴 스코시지 감독이 연출한 대작 '플라워 킬링 문'이 바로 그 작품이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판권을 구매하고 2016년부터 스코시지 감독과 함께 개발한 작품으로 1920년대 유전 개발 지역 토지를 소유한 아메리칸 원주민 살인 사건에 대한 충격적 실화를 담았다. 그리고 러닝타임은 '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보다 40분이 긴 206분이다. 3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에서부터 극장에서 장시간 동안 관객을 몰입하도록 만들겠다는 영화인들의 도전 의지가 느껴진다. 애플TV+로 공개되었을 때 집에서 온전히 세 시간 이상 관람할 자신이 없는 영화 팬이라면 집중에 도움이 되는 극장 환경에서 관람할 필요가 있다. OTT로는 경험할 수 없는, 자신에 집중력에 대한 뿌듯함을 얻게 될 테니 말이다.(미리 본 이의 경험담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개봉 주말을 기준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예측 전문가들은 '플라워 킬링 문'의 오프닝 주간 성적을 2000만 달러에서 2500만 달러 사이로 예측하고 있다. 배우 파업으로 인해 디캐프리오가 영화 홍보를 전혀 하지 않았고, 성인 대상 3시간 이상 영화임을 감안할 때 꽤 고무적인 수치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직배로 극장 배급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었다면, '플라워 킬링 문'은 애플 스튜디오에서 제작하고 극장에서 개봉하는 대작 영화라는 의의가 있다. 애플 스튜디오는 선댄스영화제에서 기록적인 가격으로 북미 판권을 인수한 영화 '코다'가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받으면서 영화계의 진지한 플레이어로 인정을 받았다. 당시에는 아카데미 시상식 출품작 규정 중 팬데믹 특수 상황으로 인해 극장 개봉 조항이 면제되었다. 때문에 스트리밍 공개작도 아카데미 후보작으로 고려될 수 있었다. '코다'로 인해 애플TV+ 구독이 환연히 증가했다는 보도와 함께, 애플TV+에서는 스타 배우들의 영화가 꾸준히 독점적으로 공개되었다. 톰 행크스의 '그레이하운드'와 '핀치'를 비롯해, 덴젤 워싱턴의 '맥베스의 비극', 테런 애거튼의 '테트리스', 크리스 에반스의 '고스팅' 등 여러 작품이 지금까지 리스트업되었지만 제작진과 스타의 이름에 비해 화제성은 미미했다.
올해초 애플 스튜디오는 극장 영화에 대한 10억 달러 투자 계획과 함께,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 매튜 본 감독의 '아가일' 등을 극장에서 우선적으로 개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더 특이한 점은 애플은 영화 배급을 위해 할리우드 배급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플라워 킬링 문'은 파라마운트, '나폴레옹'은 소니, '아가일'은 유니버설 픽처스가 각각 극장 배급을 한다. 그러나 극장 독점 상영이 끝난 후 각 영화가 애플TV+ 외에 배급사 계열사인 OTT 플랫폼에도 동시 공개되는지는 아직 발표된 바가 없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서비스 대기업이 극장 배급을 위해 계약을 맺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때문에 업계는 이 전략이 어떤 효과를 불러 일으킬지 주목하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2020년에 '나폴레옹' 제작을 검토하게 된 이유는 '탑건: 매버릭'의 성공 때문이었다고 한다. '탑건: 매버릭'이 전세계적으로 1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을 목격하면서 극장 개봉 수익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더불어 '탑건: 매버릭'의 조셉 코신스키 감독은 애플과 함께 브래드 피트가 주연하는 영화를 개발하고 있다.
굵직한 작품들이 대기 중인 상황에서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은 '바비'와 '오펜하이머'에 지갑을 열었던 관객들이 아카데미를 노리는 대작 영화에도 비슷하게 반응할지 기대를 안긴다. 올해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통과한 관객들은 극장 영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고, 극장 영화는 더 신선한 이야기와 만듦새를 관객에게 선보여야 한다. OTT 영화가 비슷한 장르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향이 점점 두드러지면서, 극장 영화는 이와 차별된 다른 차원의 작품을 보여줘야 한다.
배우들이 홍보에 빠지면서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의 작가, 미술, 촬영, 의상 등에 걸친 베테랑 스태프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호호백발 마틴 스코시지 감독은 틱톡과 유튜브 인플루언서인 딸 프란체스카의 채널을 통해 MZ세대 은어를 맞히는 영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결국 '킬러스 오브 플라워 문'은 미국 영화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미국의 역사, 특히 미국 원주민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전달하는 문화 경향에 일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설적인 영화인이 백인의 흑역사를 폭로하면서 반성을 꾀하는 점은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단순한 영화 홍보를 넘어 미국의 유산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전략이 북미 및 전세계 관객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게 될 것인가. 넷플릭스에서 '아일리쉬맨'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코시지 감독은 내년에 애플 스튜디오와 함께 다시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두 번째 도전과 릴리 글래드스톤의 여우조연상 후보 등극도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라스 투어'와 '플라워 킬링 문'을 통해 미국 극장가와 스트리밍 영화는 공존의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음악 아티스트는 극장 개봉으로 자신이 콘텐츠가 가진 효력을 확고하게 입증할 수 있고, 스트리밍 플랫폼은 극장 영화로 브랜드에 대한 구독자들의 신뢰가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북미 극장가는 이 시장이 승자를 위한 경쟁 시장이 아니라 공생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시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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