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린샤오쥔 꺾은' 황대헌, 박지원 밀어 실격+포인트 몰수... 김건우-김길리 동반 우승 '韓 금 4개 대회 마무리' [쇼트트랙 월드컵]
황대헌은 23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23~2024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 남자 1000m 2차 레이스 결승에서 마지막 코너에서 박지원(27·서울시청)과 충돌하며 넘어졌다.
지난 시즌 세계 1위 박지원은 전날 1차 레이스에 이어 다시 한 번 1000m 최강자임을 입증하는 듯 했으나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결승엔 박지원과 황대헌, 김건우가 나란히 올랐다.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우승 후보였고 예상대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가장 앞서간 건 박지원이었다. 결승선을 반바퀴 앞두고 무난히 1위 골인이 예상됐다. 그러나 4위에 머물던 황대헌이 인코스를 파고 들었다. 한 번에 3계단 상승을 노린 전략이었으나 비집고 들어설 틈이 너무도 부족했다.
결국 마지막 코너에서 추월을 봉쇄하려는 박지원과 충돌했다. 고의성이 짙은 터치나 '나쁜손' 등이 나온 건 아니었으나 무리한 플레이로 결국 실격 판정을 받았다.
심판진은 황대헌에게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심한 반칙으로 인한 경고(Yellow card for dangerous behavior)'를 부여했다. 황대헌은 해당 종목에서 쌓은 모든 포인트도 몰수당했다.
박지원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으나 재빠르게 일어나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다.
3위로 달리던 김건우(25·스포츠토토)가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황대헌과 박지원이 충돌하며 넘어지는 과정에서도 바로 뒤에 있던 김건우는 중심을 잘 지켰고 결국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록은 1분26초712. 루카 스페첸하우저(이탈리아)를 제치고 정상에 섰다.
전날 감격을 누렸던 황대헌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큰 행동이었다. 황대헌은 22일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23초666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4년 전 불미스러운 관계로 마음고생을 하게 만들었던 린샤오쥔을 준결승에서 꺾어내고 거둔 성과라 더욱 남달랐다.
이후 린샤오쥔은 2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사이 선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귀화를 택했다. 임효준이 아닌 린샤오쥔으로 불리는 이유다.
올 초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중국 유니폼을 입고 나선 린샤오쥔이지만 당시엔 황대헌과 맞대결은 없었다. 황대헌이 지난 시즌 부상으로 인해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대표팀을 이끌고 계주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린샤오쥔은 "모든 선수들이 매 대회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나도 4년 만에 국제대회에 나서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노력했다. 국내에서 열린 대회라 더 긴장했다"는 그는 지난 시절에 대한 소회를 묻자 "물론 힘들었다. 힘들지만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고 마음 먹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무죄 판결을 받았고 시간이 지나며 다소 억울함이 있었다며 그를 옹호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린샤오쥔은 "아직 많은 팬들이 응원을 보내줘 감사한 마음"이라며 "중국 팬들도 멀리까지 와줘서 감사드린다"고 양국 팬들을 모두 신경 쓰는 반응을 보였다.
'피해자' 입장이었던 황대헌의 입장은 보다 불편해보였다. 린샤오쥔에 대해 수 차례 "경쟁상대 중 하나"라며 외면했다. 황대헌은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해서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고개를 숙였다.
전날 여자 1500m 결승에서 드스멋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이날은 달랐다. 김길리는 준결승 1조에서 산토스-그리즈월드에 이어 2위에 올라 결승에 나선 김길리는 마지막 코너에서 그림을 만들어냈다. 드스멋과 산토스-그리스월드가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오른발을 쭉 내밀며 극적인 역전 우승을 만들어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 최민정(성남시청)이 더 성장하기 위해 태극마크를 반납한 상황에서 김길리의 어깨가 무겁다. 네덜란드의 급성장 속에 3년 뒤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에서 쾌거를 써나가기 위해 성장 중이다.
시즌 첫 월드컵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면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이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김길리는 고교생 신분으로 참가한 지난 시즌 월드컵 1~6차 대회에서 총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포스트 최민정'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계주에선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황대헌과 박지원이 힘을 합쳐 나선 남자 5000m 계주 결승에선 황대헌, 박지원, 김건우, 장성우(고려대)가 6분55초895의 기록을 합작하며 캐나다에 밀려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도 김길리, 이소연(스포츠토토), 서휘민(고려대), 심석희(서울시청)가 결승선을 두 바퀴 남길 때까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으나 이번엔 김길리가 넘어지져 4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월드컵 1차 대회를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로 마무리한 한국은 금메달은 물론이고 합산으로도 가장 많은 메달을 수확하며 쇼트트랙 강국의 면모를 지켰다. 오는 27일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월드컵 2차 대회가 열린다. 한국 선수단은 이어 캐나다 라발에서 열릴 ISU 4대륙선수권대회를 치르고 돌아온다.
4차 대회가 하이라이트다. 오는 12월 8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3차 대회를 치른 뒤 12월 15일부터 국내에서 열린다.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지는데 올 초 무산됐던 황대헌과 린샤오쥔의 맞대결이 국내에서 펼쳐져 커다란 기대감을 모은다. 내년 2월 독일 드레스덴과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5,6차 대회가 연이어 펼쳐지고 시즌 마무리격 대회로 3월엔 세계선수권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개최된다.
▷ 은메달 = 남자 5000m 계주 김건우·박지원·이정민·장성우·황대헌, 여자 1000m 2차 레이스 이소연, 1500m 김길리, 혼성 2000m 계주 김길리·심석희·이소연·김건우·박지원·서이라·장성우
▷ 동메달 = 여자 1000m 1차 레이스 서휘민
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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