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남은 밥을 전해주는 간단한 과제조차 처리하지 못한다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23. 10. 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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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 인류는 아직 유치원도 못 들어간 어린애 수준이다


"너희는 남은 밥을 '가진 자'에서 '못 가진 자'로 전해주는 가장 간단한 과제조차 처리하지 못한다."

닐 도날드 월시가 신에게 물으면 신이 답하는 영감의 대화는 6년 넘게 이어집니다. 그 신이 진짜인지 아닌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통해 전해지는 말에서 신성을 느끼지요. <신과 나눈 이야기>의 세 번째 책에서 나오는 이 말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남은 밥을 나누는 일조차 그르치고 있지 않나요? 한쪽은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인데 다른 한쪽은 배를 곯아 죽을 지경이지 않나요? 남아돌면 그냥 주면 될 텐데 희한하게 줄 수 없는 이유가 줄줄이 따라붙지 않나요? 가장 간단한 일이 가장 복잡한 일로 꼬이지 않았나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거리마다, 골목마다 저 숱한 십자가는 왜 세워 놓았나요? 저 십자가 솟은 동네의 이웃들끼리만 사랑해도 이 땅에 굶주린 자는 하나도 없을 겁니다. 산마다 골마다 저 숱한 불상들은 왜 모셔 놓았나요? 저 불상에 절하는 중생들끼리만 서로를 돌보아도 이 땅에 헐벗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즐비한 교회 십자가를 볼 때마다, 웅장한 성당에 감동하고 눈부신 사원에 감탄할 때마다 나는 이 땅이 지상의 천국이 아닌 게 이상합니다. 헐벗고 굶주려 매일 수만 명씩 죽어가는 세상이 정말 이상합니다.

그게 다 예수님을 안 믿어서 그렇다구요? 부처님을 안 모셔서 그렇다구요? 5,000만 명 남짓한 나라에서 믿고 모신다는 분만 합쳐도 7,000만 명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부족한 건 믿음이 아니라 행실입니다.

툭하면 배추밭 무밭을 갈아엎고, 걸핏하면 소 돼지 닭 오리들을 몰살하는 행태를 볼 때마다 우리 모두 어디선가 길을 심하게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랙터로 밀어버린 배추밭 앞에서, 된서리에 날로 얼리는 무밭 앞에서 비정한 시장의 볼모가 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봅니다. 포크 레인으로 쓸어 묻는 뭇 생명들 앞에서, 비명횡사한 떼죽음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냉혹한 얼굴을 봅니다.

인류의 식량 생산량은 1973년에 총소비량을 넘어섰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지난 50여 년 동안 굶주린 자가 있었다면 그건 먹을 게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밥을 못 먹은 자에게 전해주는 가장 간단한 과제조차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은 밥은 그냥 주면 됩니다. 못 먹은 자에게 건네주면 됩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치하고 장사하는 이들은 이 일을 아주 어려운 숙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특히 우리는 사이 좋게 나눠 먹자는 말에 '빨갱이'라는 굴레를 씌워 한동안 입에 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남은 밥 갖고 겁박하는 건 얼마나 악랄한가요?

현실 사회주의 실험은 1980년 대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은 세계의 굴뚝이 됐습니다. 이후 세상은 돈 놓고 돈 먹는 탐욕의 투전판입니다. 돈맛에 홀린 사람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야바위판처럼 휘저어놓고 있습니다. 누구도 그 위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영원한 건 아니지요. 수백 년이 흘러 먼 후손들이 21세기를 돌아볼 때 그때는 다들 돈에 미쳐 돈만 외치는 정신병적 시대였다고 할 지 모릅니다. 오로지 돈 많은 자가 왕이고, 금수저들이 갑중의 갑이었던 별난 세상이었다고 고개를 갸웃할 지 모릅니다. 노예를 부리고, 노비를 사고팔고, 양반 상놈을 차별하던 수백 년 전 시절을 지금 우리가 이상하게 여기듯!

유물론과 계급투쟁론에 기반한 마르크시즘이 실패했다고 골고루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까지 끝장난 건 아닙니다. 오히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대립과 갈등을 키우는 오늘날 더욱 절실한 가치가 함께 나누는 분배의 정의입니다. 내가 벌면 다 내 것이라는 사유재산 제도는 신성불가침이 아닙니다. 자연의 베풂 없이, 이웃과 형제들의 거듦 없이 나 홀로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영적인 차원에서는 함께 나누는 기쁨이 최상의 진리입니다. 예수의 사랑도, 붓다의 자비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나요. 남은 밥을 기쁘게 나누자는 뜻을 흐리는 말은 그것이 어떤 논리로 무장했든,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했든 새빨간 거짓입니다. 지금 우리의 지성은 이런 속임수를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습니다. 그리하여 신께서 다시 한 말씀 하시는군요.

"너희 종 대다수는 자신들이 아직 유치원으로도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인류가 아직 영아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인정하지 못함 자체가 그들을 그곳에 붙잡아두고 있다."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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