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는 수십년을 기다렸다가도 피거든요… 인간이 당해낼 재간이 없죠[소설, 한국을 말하다]

박동미 기자 2023. 10. 2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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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금희
반려식물 - 풀의 전략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9월 4일부터 연재에 들어간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았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나는 남자를 처음부터 께름칙하게 생각했는데, 우선은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아무렇게나 흘려놓는 사람들은 나중에 보면 다 별 볼 일이 없었다. 중요한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일말의 힌트를 내놓는 일에조차 경중을 따진다. 그렇게 자기 정보를 관리해야 한다는 건 속악하게 말해 가진 것이 많다는 얘기였다. 집으로 치면 여러 개의 룸과 욕실을 가진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어 저택 밖의 소란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랄까.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유태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촌지간인 우리는 유태의 약국에서 같이 일하는데 여덟 살 차이라 사실 세대 자체가 달랐다. 요즘 애들은 그렇게 자기 몫을 잘 챙긴다던데, 유명인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애들조차 자기 삶 하나하나를 자원화해 손해 보지 않으려 열심이라던데 남자에게 휘둘리는 걸 보면 유태는 ‘요즘 애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사람 오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해. 알았지? 네가 못하면 내가 할게.”

유태는 답하지 않고 약 분쇄기를 솔로 사부작사부작 쓸어냈다. 그러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어떻게 그래? 그 사람도 손님은 손님이잖아.”

“유태야, 아니, 오 선생, 밴드 하나 파스 하나 사가면서 몇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는 게 무슨 손님이야. 영업 방해야, 영업 방해.”

“밴드 하나 파스 하나 파는 게 동네 약국의 일이야.”

“그 사람이 우리 동네 사람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아무튼 더 이상은 안 돼. 내가 말할 거야.”

처음 남자가 우리와 만난 건 노트북 거래 때문이었다. 매장에 노트북이 필요해 중고 거래 플랫폼을 찾았고 딱 한 번 쓴 제품을 내놓는다는 ‘풀’이라는 닉네임의 판매자와 거래를 하게 된 거였다. 친절도를 평가하는 점수도 높았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약속을 잘 지키며 물건에도 이상 없다는 평이 달려 있어서 의심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사실 실수는 우리 편에서 했다. 보통은 다시 마주칠 일이 없는, 자신의 주거지 정보가 노출될 위험이 없는 지하철역이나 동사무소나 마트 같은 곳에서 만났어야 했는데 약국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약국 역시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일종의 ‘공공건물’인 셈이니까 방심한 면이 있었다.

사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약속 시간보다 무려 삼십 분이나 일찍 왔고 약국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펼쳐놓았다. 대만산 그 노트북은 초기화 상태 그대로의 완전한 새것이었다. 키보드며 화면이며 반짝반짝 빛났다. 물건에도 가격 흥정에도 이상이 없었으므로 ‘쿨거래’ 인증을 해주고 지나갔는데, 남자는 그 뒤부터 우리 약국을 중고 거래 접선지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은 약국 앞이었다. 약국 앞이야 시 소유지이니까 뭐라 그럴 수 없었지만 예정보다 일찍 와서 불필요하게 오래 기다리는 그가 신경 쓰인 유태가 들어와서 기다리세요,라고 한마디 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남자의 거래 품목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식물이었다. 여름 땡볕 아래 완전히 노출된 채 오늘 분양 보내야 할 식물 한 포트를 촛불처럼 소중히 들고 있는,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 남자의 여름 양복을 보고 있자면 사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의 친절과 아량으로 우리는 거의 매일 그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나중에는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매장에 들어와 신문을 들추어보며 거래 상대를 기다렸다. 신문! 나는 이참에 세 종의 신문 구독을 다 끊어버리리라 생각했다. 신문은 수다를 위한 얼마나 좋은 장작이 되는지. 거기에는 매번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아무리 마음 수양을 한 인간도 서너 줄 만에 세상을 저주하게 되는 부조리들이 끝도 없었다. 그러면 굳이 우리가 읽어서 알아도 될 이슈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남자의 수다는 매장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탔다. 손님들이 와서 우리가 바빠지면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타이밍이 오면 또다시 그전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가 일정하게 북한산 비봉 코스를 따라 등산을 다니고 유튜브의 동물 스타인 한 판다에 빠졌으며 200여 종의 식물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가 중고 거래 플랫폼에 그렇게 많은 식물을 올려놓은 것이 이해가 갔다. 개운죽이나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가격이 좀 나가는 목베고니아 종류까지 모두 만 원 이하로 무척 저렴해서 나도 남자가 이런 인간만 아니었다면 거래해볼까 싶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보니 그렇게 해서 수다 대상을 낚는 모양이었다.

“인간은 절대 식물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풀씨는 일단 수십 년을 기다렸다가도 피거든요. 기다리는 식물을 인간이 당해낼 재간이 없죠.”

“네, 인상 깊은 말씀이네요.”

“언제고 완결이 없어요. 그렇게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늘 ‘되어 가는’ 존재가 식물이에요. 무시무시한 에너지죠.”

“네네, 옳은 말씀이에요.”

마음이 무른 유태는 약국 일을 하면서도 말을 다 들어주었고, 그가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집에 가서도 내 귓가에는 모깃소리처럼 그의 목소리가 앵앵거렸다. 나는 멈추지 않는 수다 괴물인 그가 식충식물로 변해 약국을 잡아먹는 기괴한 꿈을 꾸기도 했다.

더 견딜 수 없는 건 우리만이 아니라 손님들에게도 말을 건다는 거였다. 약국을 찾는 모든 어린이와 어른들, 제약사 영업사원, 포교를 위해 방문하는 각종 종교인, 전단지 아르바이트생과 택배기사에게까지 말을 걸었고 하다못해 약국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문밖에 묶여 보호자를 기다리는 강아지에게도 다가가 “조금만 기다려. 엄마 금방 오신다.” 하며 괜한 알은체를 했다. 그건 타인에 대한 친절보다는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전략 행위 같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강요와 부당한 프라이버시 침해였다.

오늘이 데드라인이다, 더 이상은 안 돼,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오, 지, 마, 한마디면 끝날 일이었다.

“올해 여름 참 이상해. 비가 오다가 갑자기 이렇게 또 그치네.”

입간판을 들이러 갔던 유태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게 다 환경 재난 아니니. 큰일 났어. 인간들이 나 잘났소, 하다가 벌어진 문제지. 자기들이 얼마나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지 깨달아야 하는데.”

“겸손해야지.”

유태가 말했다.

“그래, 인간들은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어.” 장부를 정리하며 나도 동의했다.

남자는 저녁 여섯 시쯤 등장했다. 한 손에는 네 잎 클로버처럼 생긴 풀이 수북한 포트를 든 채였다. 안녕하시냐는 남자의 인사를 유태는 받았지만 나는 노트북으로 뭔가를 작업하는 척했다. 남자는 또 누군가와 중고 거래가 있는지 우리 약국 손님을 위해 마련해놓은 의자에 앉았다. 유태와 내가 인터넷 손품을 팔고 팔아 고심해서 고른 가죽 의자였다.

“저기 저희가 약국이라 식물 반입은 이제 어렵겠어요.”

내가 말하자 그는 약간 놀란 듯이 몸을 뒤로 젖혔다가 아이고, 미안합니다,라고 답했다.

“흙에 미생물들이 많잖아요? 약국은 위생이 중요한데 곤란할 것 같아요.”

“아…… 그런데 저기 산세비에리아도 있지 않나요?”

남자가 약국 한편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알 것이지 남자가 토를 달자 내 안의 깊은 분노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내일 집에 갖다두려고요.”

“사실 여기 있는 상당수의 약제들도 식물을 이용한 것 아닌가요?”

“정제라는 과정을 거쳤지요.”

“정제…… 하지만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괭이풀은 말입니다. 원래 약재로도 쓰는 것으로 이렇게 그냥 씹어 먹어도 복통이나 염증을 다스리는 몸에 아주 좋은 것이거든요.”

“아니, 아니요. 풀이 문제가 아니라 흙이 문제잖아요. 흙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흙이 문제라고요?”

남자는 자기가 든 포트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죄송했습니다, 하고 약국 문을 나갔다. 그 뒤에도 남자는 보도에 서서 여름 저녁의 햇볕을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노을이 지면서 하늘이 한층 도시 가까이 내려올 때까지. 유태는 조제실로 들어가 당장 안 해도 되는 작업을 하며 그 시간을 견뎠다.

이윽고 여든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왔고 풀이 건네졌다. 돈이 오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료 나눔인 듯했다. 그리고 바로 헤어지지 않고 노인과 남자는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또 한 명이 걸려드는군,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지켜보게 됐는데 노인이 웃었고 남자가 그의 팔을 잡고 어디론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의 퇴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심을 끊지 못하고 배웅하듯 출입문까지 다가갔다. 그가 어디까지 자기 자신을 이 차갑고 무표정하고 바쁜 이들에게 파종하듯 뿌려 대는지를 궁금해하면서. 언제고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풀의 행태는 정말 가능한 전략인지 잠깐 생각하면서. 하지만 곧 약국 전화기가 울렸고 나는 누군가의 대기 상태를 단축시키기 위해 얼른 카운터로 돌아갔다.

“절대 삶을 포기 않고 끝까지 다하는 게 식물의 전략”

■ 작가의 말

‘식물 집사’로 잘 알려진 김금희 작가의 책상 앞에는 꽤 많은 식물이 있다. 머리를 쥐어짜다가 바라보면, 잎을 어마어마하게 내며 잘 자라고 있다. 김 작가는 “그런 벅찬 성장과 나의 마감 고난이 대비 될 때가 많고, 그런 모습이 ‘풀’에게 투영된 것 같다”고 했다. “절대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면서 살기 위해 끝까지 다하는 것이 식물의 방향,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꾸준함과 인내가 전략 같아요.”

‘풀의 전략’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힌 ‘풀’은 그런 사람이다. 식물의 전략을 가진, 아니, 행태 하나하나 인간으로 환생한 식물이다. ‘나’의 영업장을 약속 장소로 삼더니,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사람을 만나고 화분 거래를 한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때를 기다리며.

‘풀의 전략’을 빼닮은 ‘풀’의 전략은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어떤 온도, 태도, 연대가 필요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풀’의 뒷모습을 내내 지켜보는 ‘나’의 시선엔 ‘식물 집사’를 권하는 작가의 다정한 마음이 담겼다.

“되도록 모두 식물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삭막한 도시에서도 내 방에 자기만의 고유한 군락지를 이루시기를!”

■ 김 작가는…

1979년생. 2009년 등단.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을 썼다.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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