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아무 소용 없다” 돌아온 ‘승부사’ 조훈현

윤은용 기자 2023. 10.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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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9단이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 월드 서밋 윙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세계바둑시니어최강전 우승 목표
서봉수·유창혁·최규병과 한 팀
“옛날 생각 많이 나…감회 새로워”
내년 2월 상하이서 2차전 열려
“한국, 신진서 보조 맞출 선수 필요”

한국 바둑 역사에서 조훈현(70)이라는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다. 변방에 있던 한국 바둑을 세계 중심으로 올려놓은 주인공이자,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키워낸 그는 한국 바둑의 산증인 그 자체다.

이제는 반상 앞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한발 물러나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넘긴 조훈현이 오랜만에 대국의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올해 창설된 제1회 농심백산수배 세계바둑시니어최강전에서 한때 자신과 함께 한국 바둑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최규병 9단과 팀을 이뤄 한국의 우승을 위해 다시 팔을 걷고 나섰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 월드 서밋 윙 호텔에서 열린 개회식을 앞두고 만난 조훈현은 “2~3년 전부터 농심에서 시니어대회를 한번 하자는 말을 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하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드디어 열리게 됐다”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나서 그런지 감회가 참 새롭다”고 말했다.

조훈현은 1999년 1회 농심신라면배부터 4회 대회까지 개근했고, 한국은 그 4번의 대회를 모두 우승하며 위세를 떨쳤다. 이번에는 비록 시니어대회라고 해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뒀던 ‘승부사’의 본능이 다시 타올랐다. 조훈현은 “국가대항전이 원래 진로배부터 시작됐는데 그게 농심신라면배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농심백산수배까지 생겼다”며 “여기 오니 예전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다시 한번 투지를 불사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 대회에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값 높은 기사들이 총출동했다. 제1회 응씨배 결승에서 조훈현과 명승부를 펼쳤던 중국의 ‘철의 수문장’ 녜웨이핑 9단은 물론 한때 이창호에게 강한 것으로 유명했던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 9단도 나섰다.

한·중·일이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하던 세계 바둑 지형도는 최근 신진서 9단이라는 걸출한 기사의 등장으로 한국이 흐름을 가져온 상황이다. 신진서는 이달 초 막을 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바둑 개인전에서는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지만, 동료들과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을 합작했다. 여기에 가장 큰 숙제였던 ‘바둑 올림픽’ 응씨배 정상에 오르며 커리어 정점을 찍었다. 현시점에서 명실상부한 1인자다.

조훈현도 이런 후배의 활약이 흐뭇하다. 조훈현은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동메달에 그친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런데 솔직히 아무리 최정상급 기사라도 잘해봐야 승률이 80~90%다. 즉 10판 두면 1~2판 정도는 진다는 것이다. 그게 이번에 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라며 “지금은 신진서가 선두를 달리고 있고, 그가 한국 바둑계를 짊어졌기 때문에 유지를 잘해서 끝까지 열심히 해주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다만 다른 기사들이 더 분발해 신진서와 함께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갔다. 그는 “나 때는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처럼 든든한 기사들이 많았는데 지금 신진서는 어떻게 보면 혼자서 중국, 일본 기사들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솔직히 말하면 위태위태하다. 잘 싸우고 졌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사실 2등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신진서) 혼자 싸우기는 힘이 많이 들 것이다. 주위에서 신진서와 함께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일 농심백산수배 1차전은 막을 내렸다. 우승국이 결정되는 2차전은 내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한국은 선봉장으로 나선 서봉수가 패하긴 했지만, 최규병이 1승을 따내 기분 좋게 2차전을 맞이하게 됐다. 조훈현 9단은 2차전에 한국의 우승 키를 쥐고 출전한다.

조훈현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바둑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를 기원했다. 조훈현은 “대회들이 많이 늘어나고는 있어도 바둑 인구 자체는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준다면 기사들도 더 열심히 해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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