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세계경제[서중해의 경제 망원경](20)
10월에 세계경제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두 회의가 잇달아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가 지난 10월 9~15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렸다. 10월 17~18일 양일간 중국 베이징에서는 제3차 일대일로 포럼이 열렸다. IMF와 WB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질서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이고, 일대일로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외교 전략의 중심에 있다. 이 두 회의를 통해 현재 세계경제질서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질서의 청사진에 따라 IMF가 탄생했다. 국제규범에 기반을 둔 국제통화체제를 만드는 것이 청사진의 핵심이었는데, 이 체제를 감독하는 역할을 IMF가 맡게 된다. IMF와 WB는 어려움을 겪는 회원국에 자금을 제공하는데, 자금 제공에는 조건이 붙는다. IMF와 WB는 해당 조건을 실현하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면 이 두 기관은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에서는 면제돼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국가도 이들 기관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거버넌스에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의사결정은 가중치 투표로 이루어지고 가중치는 회원국의 경제 규모와 재정 기여에 상응하도록 했다. 이는 국제법 질서의 핵심인 주권국가 평등의 원칙(즉 주권국가는 1표씩 행사하는 방식)을 수정한 것이다.
IMF 의결권 개편 추진과 미국
IMF 회원국의 의결권 개편이 이번 마라케시 회의의 주요 사안 중 하나였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올해 말까지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IMF는 안건을 의결할 때 쿼터 85%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미국 단독으로 16.5%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안건도 처리할 수 없다. 반면 세계경제의 18%를 차지하는 중국은 현재 6.08%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의결권 개편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비중을 높이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의 비중을 낮추는 구성일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IMF 기금 확충과 쿼터 개편 요구에 대해 이번 마라케시 회의에서 미국은 ‘등비례’ 증가를 제안했다. 현재의 쿼터 구성은 그대로 두고 회원국의 출자금 규모에 비례해 추가로 출자를 하자는 내용이다. 현재의 쿼터 구조는 2010년에 개정된 것으로 이후의 세계경제 구성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세계은행도 유사한 상황이다).
10월 17~18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제3차 일대일로 포럼이 열렸다. 일대일로 10주년인 이번 포럼은 중국 정부의 치적을 알리는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됐다. 러시아,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헝가리, 케냐 등 20명 이상의 국가수반이 포럼에 참석하고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의 대국외교(大國外交) 전략의 중심에 있다.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나자르바예프대학에서 연설하면서 “실크로드 경제벨트” 구상을 제시했다. 곧이어 해상 벨트를 포함하게 된 일대일로 구상은 규모면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급격하게 확대돼 협약을 맺은 국가가 한국을 포함해 155개국에 이른다. WB는 최근 연구에서 중국이 일대일로를 통해 해외에 제공한 자금을 대략 1조달러 규모로 추정한다. 이중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이 약 2400억달러인데, 이는 IMF가 같은 기간에 제공한 구제금융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최근 중국은 구제금융 제공 규모를 계속 늘리고 있다. 최근 3년으로 한정하면 중국이 제공한 구제금융은 IMF가 제공한 구제금융 총액의 40% 이상에 해당한다.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해외에 제공하는 중국의 구제금융 자금과 인프라 건설사업은 수원국에는 양날의 칼이다. 우선 이자율이 높다. IMF의 비양허성 대출이자가 2% 수준인데, 중국 자금의 이자율은 5% 이상이다. 나아가 대출 상환을 못 하는 경우에는 납기 유예나 대출 상각 등 채무조정보다는 이용권 공여 또는 시설 조차 등으로 시설을 중국 측에 넘기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남부 함반토타 항구가 그랬다. 최근 페루에서는 수도 리마의 전기공급회사 지분을 중국이 거의 확보하면서 전기공급을 중국기업에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리마 북쪽의 찬카이 항구에는 중국의 국영기업 COSCO(중국원양운수집단)가 심해항구를 건설하고 있다. 남미 최대 규모로 공사 중인 이 항구를 페루 정부는 제2의 상하이로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 함대의 전진기지로 사용될 수도 있다.
최근 방문한 타지키스탄에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개도국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국토의 90% 이상이 3000m 이상의 산악지역인 이 나라는 교통망이 매우 낙후돼 있다. 국토의 주요 거점을 이어주는 도로는 대부분 왕복 2차선 도로다. 험준한 산악지역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주는 도로(한계령 고갯길은 상대적으로 거의 평지 수준이다)는 과거엔 이란이, 현재는 중국이 건설 중이다. 수도 두샨베에는 건물신축 현장이 널려 있는데, 공사 현장에 중국어로 된 표지판이 크게 걸려 있고 중국 화물차량이 드나든다. 시내 택시는 현대차와 기아, 도요타 로고를 달고 있지만, 전기자동차는 모두 중국 브랜드다. 두샨베 시내 택시는 5년 이내에 모두 전기차로만 운행될 계획이다. 타지키스탄에서 만난 주요 인사들은 타지키스탄의 주요 인프라 건설에 기여하는 중국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장비와 인부를 모두 중국에서 가져오고 대출금리가 국제기구보다 높아 우선은 필요해서 수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덩치 키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두 회의는 미국과 중국 대외경제 전략의 한 단면으로 그 민낯을 보여주었다. IMF-WB 연례총회는 현재 세계경제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두 전쟁(러시아-우크라이나·이스라엘-하마스)에 대해 어떤 합의된 공식발표도 없었고, 더욱 강해지는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중심의 산업정책에 대한 대안도 없었다. 더욱 중요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지구 전체의 당면과제에 대해서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대일로 포럼은 시진핑 주석을 빛내는 국가적 행사지만 중국의 일대일로가 “제국의 과잉확장”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우지 못했다. 일대일로 사업은 국내의 잉여저축을 해외에 수출하는 발전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경제가 고도성장기를 마감하면서 세계경제 기여도가 낮아지고 있는 한편 내부 구조조정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두 회의는 ‘세계경제는 각자도생의 각축장’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진영논리와 자국 이익에 매인 주요 2개국(G2)의 리더십이 지구공동체의 호응에는 이르지 못했다.
서중해 경제학자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완주 쉽잖을 것” 대세…“지금 구도 계속” 관측도
- [박성진의 국방 B컷] (19) 병사 월급 뒤에 숨은 ‘표퓰리즘’으로 무너진 징집·모병체계
- 달라진 정부…우크라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할까
- [전성인의 난세직필] (32) 이재명 대표의 금투세 폐지 결정, 즉각 철회해야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1) 기후위기, 숲이 주는 해답
- [메디칼럼] (43) 의료개혁, 국민만을 위한 ‘새판’ 짜야
- “명태균 관련 거짓말에 캠프서 있었던 일 공개하기로 결심”
- [꼬다리] 수능 듣기평가 시간에 모기가 날아다닌다면?
- [오늘을 생각한다] 전쟁을 끝내자!
- 법원, 이재명 대표에 징역 1년 집유 2년···의원직 상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