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 출신 ‘한국학 시조새’의 대를 잇다[주한 미 평화봉사단 이야기](5)

2023. 10. 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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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버나드 팔레·2008) / 산처럼



비교적 최근에는 한류의 유행으로 한국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 영화, 아이돌 등을 좋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의 사회나 역사나 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그런데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 이미 한국의 역사나 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고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문화가 해외에 잘 알려진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국이 잘사는 나라도 아닌데 무엇이 그들에게 한국을 공부하도록 이끌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해외(주로 미국)에서 한국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대부분 주한 미군을 배경으로 한다. 주한 미군 근무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한국의 역사, 철학, 문학, 사회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학자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 Wagner·1924~2001)도 하버드대학교 재학 중이던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휴학하고 미 육군으로 입대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1946년부터 1948년까지 한국의 미 군정에서 외교업무를 담당하는 군무원으로 근무했다. 한국 근무를 하면서 한국학에 관심을 가지게 돼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동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지역학으로 조선시대 역사를 전공한 끝에 195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35년 넘게 하버드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쳤고, 한국학연구소를 세웠으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데이비드 맥캔, 존 미들턴, 에드워드 슐츠·1979) /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센터



한국학자의 또 다른 시조새인 제임스 팔레(James B. Palais·1934~2006)는 미 육군 외국어학교(Army Language School in Monterey) 출신이다. 재미있는 것은 팔레가 애초에 러시아어를 공부하기를 희망했으나 그 강좌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는 점이다. 그 덕에 그는 한국과 한국의 역사에 흥미를 가져 조선시대의 유학을 연구했고, 마침내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훗날 그는 워싱턴대학교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많은 한국학자를 배출했다. 저서 <한미관계 20년사>(U.S.-Korea Relations from Liberation to Self-Reliance)로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에게 유명한 도널드 S. 맥도널드(Donald S. McDonald·1919~1993) 역시 주한 미군사령부에서 장교로 근무한 바 있다. 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을 세대로 나눌 수 있다면 이처럼 1세대는 냉전 시대의 초입 시기 주한 미군에서 일하며 한·미관계를 담당했던 게 계기가 됐다.

한국학자의 등용문, 주한 미 평화봉사단

주한 미 평화봉사단 또한 미국 내 한국학자의 등용문(登龍門) 역할을 했다. 등용문이란 <후한서>에 처음 등장한 표현으로, 전설 속의 잉어가 통과해 용이 되는 문을 일컫는다. 한국사회에서 등용문이란 입신양명이나 출세의 관문을 뜻한다.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이뤄도 등용문이라는 말을 쓴다.

평화봉사단은 단원들이 2년의 복무 기간 동안 초청국 사람들(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목표로 했다. 복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가족이나 주변 이웃들을 상대로 한국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애써 한국에서 습득한 한국어와 한껏 고취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치기엔 아까웠던 봉사단원들은 한국을 좀더 공부하기로 한다. 1966년 주한 미 평화봉사단 첫 기수인 K-1 단원 중 상당수는 1968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들의 대학원 진학 행보는 모쪼록 주목할 만하다. 선배 기수인 K-1이 대학원이라는 진로를 닦아놓음으로써 후배 기수들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표 1>은 K-1의 한국학 관련 대학원 석·박사과정 진학 현황이다.



98명의 단원 중 약 12%에 해당하는 12명이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거나 한국을 주제로 연구했다. 1968년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한국학을 공부할 수 있는 대학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비교가 안 되는 개발도상국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는 그러나 200여 년에 그치지 않는 미국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확실한 비교우위를 가진 유구한 역사가 있었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전통과 문명을 엿본 미국 청년들은 한국의 신비와 매력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한국 공부에 뛰어든 배경이다.

에드워드 베이커(Edward J. Baker)는 주한 미 평화봉사단 합류 시점에 이미 석사과정으로 예일대학교 로스쿨 재학생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로스쿨을 마치고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에서 한국사를 공부했다. 다른 단원들도 일부는 박사과정까지 진학했고, 이윽고 한국학 전공 학자가 됐다.

대학원에 진학한 K-1 단원들이 주축이 돼 1977년 1월 서울에서 ‘전환기의 한국학(Studies on Korea in Transition)’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하와이대학교 출판부는 그 내용을 10개의 챕터로 나눠 책으로 출판했다. 책의 주제는 <표 2>와 같다.

한국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던 미국 청년들이 1966년 봄 주한 미 평화봉사단에 합류해 더듬더듬 한국어를 배웠는데, 그 단원들이 11년 만에 한국학자가 돼 전문적인 주제의 학술대회까지 열었으니, 실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왼쪽부터) (브루스 커밍스·2023), (돈(도널드) 베이커·2012), (카터 에커트·2008) / 글항아리 / 푸른역사



한국학의 발전을 이끈 냉전 시대 장학금

K-1 선배들이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주한 미 평화봉사단 복무 후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도 상당했다. 이때 주류가 된 대학은 3개(하버드대학교·워싱턴대학교·하와이대학교)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버드대학교와 워싱턴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던 교수들은 주한 미군과 인연이 있지만, 그 이후의 대학원생들은 주로 주한 미 평화봉사단과 관련이 있었다. 주한 미 평화봉사단 경험자들을 한국학 대학원 진학으로 이끈 또 다른 배경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장학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선 지역학(area studies)이라는 학문 분야가 부상했다. 한국학 역시 지역학의 한 분과로 역할을 했다. 미국은 냉전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해외 지역의 정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했다. 미국의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가 이런 미 연방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지역학 발전의 거점이 됐다. 해외 지역학을 지원하고, 지역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아이젠하워 시절의 미 연방정부는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대한 충격으로 1958년 국가 방위를 강화하고 중요한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증진하는 국가방위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제정했다. 이 법령 제6조에 의해 외국어 연구와 지역학 연구센터, 언어교육원에 연구비가 책정됐다. 미 연방정부는 연구비뿐 아니라 대학 내 지역학 연구소 설치를 직접 지원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지역학 제도화의 기반을 마련했다. 역대 주한 미 평화봉사단원이 대학원에서 한국학을 전공해 연구자가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한국에 대한 이들의 학문적 호기심 외에도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이라는 학문이 공식 프로그램이 됐다는 점과 연구비 수령이 용이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방위교육법 내 외국어교육법 덕분에 아시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로렐 켄달·2016), (에드워드 슐츠·2014), (김승경, 마이클 로빈슨·2020) / 일조각 / 글항아리 / 워싱턴대학교 한국학센터



2세대 한국학자, 주한 미 평화봉사단

그렇게 양성된 주한 미 평화봉사단 출신 한국학자들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해외 한국학을 이끌었다. 최근 새롭게 번역된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나 <한국인의 영성>의 도널드 베이커(Donald Baker), <제국의 후예>를 쓴 카터 에커드(Carter Eckert), <무당, 여성, 신령들>의 로렐 켄달(Laurel Kendall), <무신과 문신>의 에드워드 슐츠(Edward Shultz) 등 미국의 한국학 관련 연구자 중에서 평화봉사단 출신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세대 한국학자로, 미국에서 한국학 연구를 이끌었던 이들 주한 미 평화봉사단 출신 연구자들은 1940~1950년대생이 많다. 이미 학계에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이들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한 지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신냉전 시대가 도래했다는 분석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미국과 소련이 과거와 같은 수위로 체제 대결을 벌이는 상황까지는 아니다. 냉전 전략으로서 지역학의 의미도 퇴색한 지 오래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한국학도 애초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역대 주한 미 평화봉사단 출신 연구자들의 한국학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살펴보면 한국 역사, 문학, 사회학, 지리학, 인류학, 법학, 교육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한국 오일장의 경로 선택(노바코브스키), 한국 시조 운율 구조(맥캔), 18세기 한국 유교와 천주교의 만남(베이커), 고려시대 무신정권 최씨 일가(슐츠) 등의 주제는 냉전 전략과는 요원해 보인다. 순수학문으로서 한국학을 발전시킨 셈이다. 이는 평화봉사단 창설 과정에서도, 지역학 지원 시점에서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前)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의 조직인 프렌즈 오브 코리아(Friends of Korea)와 미 한국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 워싱턴대학교 한국학센터 및 인디애나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공동으로 2020년 12월 발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코로나19가 ‘심각’ 단계인 시기여서 참석자들은 줌(Zoom)과 유튜브로 만났다. 온라인 세미나에서 그 시절 한국에서의 생활과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저자들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Donald Baker, Edward Shultz, Clark Sorensen, Katheleen Stepnens, 문옥표, Laurel Kendall / 미 한국경제연구소(KEI) Youtube 채널 캡처



전(前) 미국 평화봉사단원들의 조직인 프렌즈 오브 코리아(Friends of Korea)와 미 한국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 워싱턴대학교 한국학센터 및 인디애나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공동으로 2020년 12월 발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코로나19가 ‘심각’ 단계인 시기여서 참석자들은 줌(Zoom)과 유튜브로 만났다. 온라인 세미나에서 그 시절 한국에서의 생활과 일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저자들의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Michael Robinson, Bruce Fulton, Donald Clark, Edward Baker, Linda Lewis / 미 한국경제연구소(KEI) Youtube 채널 캡처



평화봉사단과 미국에서 한국학 만들기

2020년 8월, 주한 미 평화봉사단 출신 한국학자들(도널드 베이커·에드 베이커·도널드 클락·카터 에커트·브루스 풀턴·로렐 켄달·린다 루이스·에드워드 슐츠)과 사회학자 김승경, 인류학자 문옥표, 한국학자 클락 소렌슨, 평화봉사단 출신 전 주미대사 캐서린 스티븐스 등 모두 12명이 모여 <평화봉사단과 미국에서 한국학 만들기>(Peace Corps Volunteers and the Making of Korean Studies in the United States)라는 책을 출간했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학자들이 그동안의 성과를 정리하고 미래에 한국학이 나아갈 방향을 조망한 책이다. 주한 미 평화봉사단의 활동 시작 50주년을 기념하는 2016년, 주한 미 평화봉사단 출신 한국학자들이 미 인디애나대학교에 모여 평화봉사단이 자신들의 삶과 연구에 미친 영향에 대해 동명의 콘퍼런스를 열고 논의한 내용을 정리했다. 젊은 봉사단원들이 한국에서 ‘개고생’한 에피소드 대목에선 깔깔 웃음이 터져나왔고, 한국 민주화를 위해 애쓴 이들의 회고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책에 대해 할 말이 훨씬 많지만, 50여 년간 한국학 분야를 연구한 슐츠 교수의 조언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현재 해외에서 한국학은 한류의 확산으로 유례없는 인기몰이 중이다. 반짝인기가 아닌 지속가능한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슐츠 교수는 지켜져야 할 내용을 6가지로 정리했다.

①고급 한국어를 연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라. ②한국학을 공부하는 학부생들이 1년간 해외(한국)를 경험할 수 있는 컨소시엄을 구축하라. ③한국의 전(前)근대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양성하고, 이들이 고전 한문의 문리를 틀 수 있도록 훈련하고 독려하라. ④성별 균형을 염두에 두라. ⑤학제 간의 다양성을 고려하라. ⑥박사 논문 연구 지원을 확대하라.

점점 위축되고 있는 한국의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체에도 해당하는 조언이다.

서나래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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