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 반도체 백혈병 기금으로...안전보건공단, 240억 청사 샀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태’로 기탁한 500억원 중 250여억원으로 청사로 쓸 건물을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정비 계획법을 어겨 감사원 지적도 받았다.
23일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신축 건물인 ‘중앙골드라인타워’ 건물을 총 264억9000여만원에 매입했다. 건물가 240억원에 부가세와 취득세 20억8000여만원, 부동산 중개보수 등을 합친 것이다. 수원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건물로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다. 공단은 구입한 건물에는 실험분석실, 전자 유체 시뮬레이션실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건물을 사고 남은 잔액 중 112억원은 센터 인프라 구축, 109억원은 전자산업 안전보건사업, 15억은 시설 운영 등에 쓸 계획이다.
기금 500억원은 삼성전자가 백혈병 사태를 계기로 공단에 기탁한 것이다.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 근로자가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고, 반도체·LCD 제조 공정에서 피해자가 추가 발생했다. 삼성전자와 피해자 모임 단체인 ‘반올림’은 조정위원회의 중재로 2018년 11월 11년 만에 피해 협상을 타결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산재 예방 등을 위해 개별 피해 보상과 별개로 500억원의 기금을 내놨다.
공단은 2020년에도 이 기금으로 청사를 매입하려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500억원 중 390억원을 들여 건물을 사려했다. ‘기금 80%를 공단 자산과 몸집을 불리는 데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었는데, 지난해 결국 청사용 건물을 산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단이 법을 어겨 운영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현행 수도권 정비 계획법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에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청사를 새로 지으려면 국토교통부 산하 수도권 정비 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돼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2014년 울산으로 내려간 안전보건공단 역시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 결과 공단은 이 법에 대한 검토를 하지 않았고, 위원회 심의 역시 아예 받지 않았다. 공단은 2020년 건물을 운영하기 위해 미래전문기술원이라는 조직도 새로 만들고 인력 24명도 배치한 상태인데, 감사원은 “미승인 조직·인력”이라고 판단했다.
공단은 어쩔 수 없이 미래전문기술원 인원을 울산에 잔류시키고 조직을 다른 부서와 통폐합하기로 했다. 대신 공단 경기지역본부 안에 있는 산업안전보건센터가 대신 매입한 건물을 운영한다는 내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감사원은 “당초 작년 12월이 목표였던 개원이 지연되고 있고, 후속 절차 등을 고려했을 때 향후 개원 일정도 불확실하다”며 “거액의 기부금이 당초 취지대로 사용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상태다.
공단이 굳이 경기도에서 청사를 매입한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공단은 “전자산업 사업장 60%가 분포하고 있고, 현장 방문 사업을 하려면 접근성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업체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공단은 당초 1순위로 서울역·종로, 영등포·구로, 강남·강동 등 서울권역을, 2순위로 광명, 평촌, 판교, 분당, 광교 등 수도권의 건물을 사려 했었다. 우선적으로 서울을 사려다 경기도에 건물을 샀다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 모임 단체인 ‘반올림’은 지난 6월 공단 측에 “삼성전자 등 핵심 기업과 유관기관과의 접근성이 뛰어나 수원시가 사업 진행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이미 공유드린 바 있다”면서 “인프라 구축이 더 이상 지체되지 않도록 특별한 노력을 부탁드린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이자 의원은 “공단이 공공기관 이전 절차를 지키지 않고 건물을 매입해 초기의 사업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이라도 기탁금이 소기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제반 절차를 철저히 지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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