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하면 ‘국민 여론’, 불리하면 ‘여론조작’?
경기 종료 1시간30분이 지난 뒤부터였다. ‘이상 클릭’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국 6.8%(211만 건) 대 중국 93.2%(2919만 건). 10월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한국-중국 8강전을 두고 벌어진 ‘다음(Daum) 클릭 응원’의 최종 비율이다.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투표 서비스에서 한국 대신 중국이 압도적 응원을 받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곧바로 이 일은 정치적 사안이 되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0월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포털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좌파 성향이 강한 포털사이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여론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어 “친민주, 친북, 친중 세력들이 얼마든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검찰, 경찰, 과학기술방송통신부, 방통위 등이 모든 조치를 강구해 여론조작 세력들을 엄단하라”고 촉구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0월4일 논평을 내고 “특정 반국가 세력들이 국내 포털을 기점 삼아 광범위한 여론조작을 하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 “‘드루킹 시즌 2’로 번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반응을 크게 보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0월4일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회적 재앙”이라며 ‘다음 아시안게임 응원페이지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된 범부처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했다. 같은 날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이런 걸 방치하면 바로 국기 문란 사태가 된다”라며 관련 대책 마련을 시사했다. 대통령실에서도 “국민들께서 여론이 왜곡되는 상황이 아닌가 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우려에 타당성이 있다”라는 메시지를 냈다.
정부·여당의 추측대로 이번 일은 반국가 세력이나 친중·친북 세력, 혹은 친민주당 세력이 벌인 조직적 여론조작 시도의 일환일까? 10월4일 카카오는 한-중 축구 경기 클릭 응원 참여 IP를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카카오 설명에 따르면 1대 9에 달하는,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한-중 응원 비율은 ‘매크로(자동반복 작업 프로그램)’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누군가 자동으로 ‘중국 팀 응원’을 대량 클릭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돌린 것이다. 총 클릭 응원 수 중 86.9%(1993만 건)가 해외 접속이었다. 그 가운데 네덜란드와 일본 각각에서 접속한 IP 두 개가 99.8%(1989만 건)를 차지했다. 실제 그 두 나라 거주자의 행위이기보다 VPN(가상사설망, 통신접속 위치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서비스)을 통한 우회접속일 확률이 높다. 카카오는 “서비스 취지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로 간주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그 두 개의 IP는 누구였을까? 다음 스포츠 ‘클릭 응원’ 페이지에서 중국 팀 응원 클릭 수가 급증하던 10월2일 새벽 0시38분, 디시인사이드 VPN 갤러리에는 ‘축구 응원 주작 중’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평소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해킹과 매크로 조작 등을 벌여온 것으로 유명한 한 익명 유저가 쓴 ‘매크로 조작 인증’ 글이었다. “갖고 있는 서버 총동원령 내리고 셀러리 라이브러리(분산처리 프로그램) 써서 해볼까. 지금은 2대로 돌리는 중”이라며 매크로 동작 화면 캡처 이미지를 함께 올렸다. 잠시 뒤 투표 수 ‘추월’ 성공 인증샷과, 네이버의 비슷한 투표 서비스에 대한 매크로 시도 작업 화면도 캡처해서 올렸다. 이번 사태가 국내 인터넷 유저(이용자) 한 명의 장난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만약 그 유저의 ‘주작’이 맞는다면,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온라인 투표 방식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다음 스포츠의 ‘클릭 응원’ 서비스는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횟수 제한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 이런 ‘열린 참여형’ 온라인 투표가 의아한 결과를 나타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9월28일 한국-키르기스스탄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 때도 다음 스포츠 온라인 투표에서 한국 팀 응원 비율은 15%에 그쳤다. 지난해 9월 열린 한국-카메룬 친선 축구 경기 때도 카메룬 팀 응원 비율이 한때 80%대까지 올랐다. 9월13일 한국-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때는 로그인이 필요한 네이버의 응원 투표 페이지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응원 수가 한국을 앞섰다.
이런 ‘비상식적 투표 결과’는 이제까지 별달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온라인 투표를 일종의 ‘놀이’로 보고 그 결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두고 ‘여론조작’ 운운하는 정부·여당을 향해, ‘파맛 첵스 사건(2004년 농심켈로그가 시리얼 신제품 홍보를 위해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이벤트 취지와 달리 ‘파맛’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일)’ 같은, 기업의 마케팅 기법과 인터넷 놀이문화 사이에서 발생한 해프닝에 너무 정색하고 달려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대통령실도 이런 허술한 온라인 투표 방식을 채택해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대통령실은 이전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없애고 새 정부의 여론 수렴 창구인 ‘국민제안’을 신설하면서 온라인 투표 기능을 적용했다. 임의로 10가지 주제를 선정해 7월21일부터 열흘 동안 ‘국민제안 톱10’ 투표를 진행하고 상위 3개를 향후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8월1일 대통령실은 최종 우수 제안 선정을 취소했다. “중복 투표, 해외 IP 접속, 우회접속 등 방해세력으로 추정되는 비정상 투표가 다수 발생했다”라는 이유였다.
‘포털 때리기’에 동력 얻은 정부·여당
온라인 투표 방식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계속 온라인 투표로 국민 여론을 수렴했다. 올해 1월부터는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 허용, 3월부터는 KBS 수신료 분리 징수, 6월부터는 집회·시위 제재 강화 등 논쟁적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주제를 온라인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 시스템상 동일인이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 중복 투표할 수 있고, 유튜브나 SNS에서 조직적 투표 독려가 발생한 사례 등이 지적되면서 여론조작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대통령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세 주제 모두 ‘추천’에 압도적으로 많은 표가 몰렸고 정부는 이 결과를 실제 국정 운영에 반영했다. 온라인 투표에 대해 어떨 때는 ‘비정상 투표’라며 결과를 무효화하거나 수사·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어떨 때는 ‘국민 여론’이라며 정책 집행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니 이번 ‘다음 클릭 응원 여론조작’ 국면을 이끌어나가는 정부·여당에게는 중국 팀에 ‘광클’ 응원을 보낸 범인이 실제 누구인지가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도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잡고자 하는 쪽은 ‘매크로 조작범’보다 ‘포털사이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애초 정부·여당은 다음을 비롯한 포털사이트에 대해 여론조작과 가짜뉴스의 온상이라며 비판하던 참이었다. 올해 초부터 포털의 기사 배열·검색 알고리즘·제휴 심사 등에 대해 ‘좌파 편향·반정부적’이라는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그러던 중 때마침 포털에 대한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가 하나 더 발생한 것이다. 이전부터 지속해온 정부의 ‘포털 때리기’를 앞으로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포털 규제와 관련해 올해 들어 국민의힘이 발의해놓은 법안만 3개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의 추천을 받은 위원들로 구성된 ‘인터넷뉴스진흥위원회’가 기사 배열 기준을 심의하고 의견 제시·시정 권고를 할 수 있거나(김승수 의원 발의 신문법 개정안), 문체부 장관이 포털의 뉴스 서비스 실태를 직접 조사하고 경영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하거나(윤두현 의원 발의 신문법 개정안), 온라인 댓글 등에 이용자의 접속 장소나 국적을 표시하도록 포털에 의무를 부과하는(김기현 의원 발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 포털 뉴스와 댓글 서비스 운영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이다.
9월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네이버, 다음의 포털 뉴스 서비스에 대해 “가짜뉴스 유통 악순환의 핵심 고리”라며 “신문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터넷 뉴스서비스 사업자의 의무 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뉴스 검색 알고리즘에 제기된 의혹을 바탕으로 지난 7월5일부터 네이버 뉴스 서비스 실태점검을 실시했고, 관련 규정 위반 소지를 발견했다며 9월25일부터는 사실조사로 전환해 전기통신사업법 금지행위 위반 여부를 따지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런 움직임을 두고 10월6일 낸 논평에서 “다가오는 총선을 앞두고 ‘포털 길들이기’에 나선 거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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