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병원 폭격, 증거 조작까지”… 팔레스타인과 일부 언론 주장 살펴보니
이스라엘과 서방 주류 언론들은 ‘알아흘리 병원 참사’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이하 '팔')의 책임이라고 시사한다. ‘팔’ 측(구체적으로는 가자 지구에서 하마스 다음의 무장세력인 ‘이슬라믹 지하드’)이 쏜 ‘불량품 로켓’이 목표물인 이스라엘군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상공에서 오작동으로 폭발해버렸다는 것이다. 그 남은 잔해와 연료가 알아흘리 병원으로 떨어져 참사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는 일단 알아흘리 참사 발생 시각(현지시각 10월17일 오후 7시쯤) 직전, 가자 상공을 촬영한 동영상이 있다. 어두운 상공을 배경으로 작은 빛 덩어리(발사체)가 두어 번 ‘섬광’으로 번득이다가 궤적을 아래쪽으로 급격히 틀면서 암흑 속으로 녹아든다. 몇 초 뒤, 지상의 알아흘리 병원에서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다.
이스라엘 측은, 빛 덩어리가 섬광으로 번득인 장면을 ‘팔’ 측 로켓의 상공 폭발로 해석한다. ‘불량품 로켓’이 상공에서 터져버린 뒤 지상으로 추락했기에 알아흘리 참사 현장의 훼손 정도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 공습에 주로 사용하는 고성능 미사일(미국산 JDAM)은 폭발 지점 주변을 거의 완벽하게 파괴하면서 깊고 넓은 구덩이(crater)를 남긴다. 그러나 알아흘리 참사 현장의 건물들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큰 구덩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 측 입장을, 시사IN은 지난 10월20일에 이미 '가자 병원 참사의 책임자는?...이스라엘의 입장과 서방언론의 취재' 기사를 통해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한 ‘팔’(과 아랍) 측의 반박을 6가지 질문으로 나눠 살펴보았다.
1. 가자 상공의 섬광이 의미하는 것은?
아랍권 최고의 보도 전문 채널로 평가받는 〈알자지라〉는 알아흘리 참사 이후 ‘검증팀’을 구성해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방송사는 10월20일자 보도에서, 이슬라믹 지하드 측 불량품 로켓의 상공 폭발이 ‘섬광의 정체’라는 이스라엘 측 주장은 참사 책임을 ‘팔’ 측으로 미루기 위한 선동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증팀이 해당 시점을 포착한 여러 동영상들을 정밀 검토한 결과에 따르면, 참사 직전에도 이스라엘의 ‘아이언돔(상대방의 로켓과 포탄을 요격해 파괴하는 이동식 방공 시스템)’이 가자 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요격하고 있었다. 즉, 이스라엘의 요격 미사일이 ‘팔’ 측 로켓을 가자 상공에서 파괴하면서 그 결과로 ‘섬광’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2. 참사 원인인 로켓(잔해)은, ‘팔’ 측이 쏜 것인가?
이스라엘 방위군은 참사 다음날인 10월18일 아침 연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로켓이 알아흘리 병원 뒤에서 발사되었다고 주장했다. 참사 책임의 규명에서 ‘로켓 발사 지점이 어디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의 북쪽에서 동쪽, 나아가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경계선에 촘촘히 포진되어 있다. 가자 지구 내부에 갇힌 ‘팔’ 측 무장세력이 외부의 이스라엘군 쪽으로 쏜 로켓이 도중에 떨어졌다면, 발사 지점은 알아흘리 병원의 남서쪽이 유력하다.
이스라엘 측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는 영국 BBC는 발사 지점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의구심을 표시한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로켓이 알아흘리 병원 인근 묘지에서 발사되었다고 말했다. 병원 옆에 묘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변인이 제시한 지도엔 (병원에서) 좀 더 떨어진 장소가 발사 지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문제는, 그 장소(대변인이 발사 지점으로 표시한)엔 묘지가 없다는 것이다(10월20일 보도).”
〈알자지라〉는 10월20일 보도에서 참사를 유발한 로켓이 이스라엘군 쪽에서 발사된 미사일이라며, 그 근거로 서방측 민간 연구기관들의 분석 내용을 인용한다.
영국 런던대 부속 기관인 ‘포렌식 알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의 10월20일 게시물에 따르면, 참사 현장에 파인 작은 구덩이와 그 주변의 지형을 분석할 때, 참사의 원인인 로켓은 “이스라엘군이 통제하는 가자 북동쪽에서 발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포렌식 알키텍처는 인권 침해적 사건·사고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목표로 삼고 있는 연구 단체다.
‘인권과 환경 옹호를 위한 오디오 자료 조사’를 표방하는 비영리 연구 단체인 ‘이어샷(Earshot)’은 참사 당시 음파 분석을 통해 로켓이 알아흘리 병원의 “북동쪽이나 동쪽 또는 동남쪽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2. 참사 현장이 비교적 멀쩡하게 보인 이유는?
알아흘리 병원의 내부 부지로 날아와 꽂힌 것이 가공할 무기인 이스라엘군의 JDAM이었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하마스 측이 500여명으로 추산)는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러나 JDAM이었다면 참사 현장이 초토화되고 ‘깊고 넓은 구덩이’가 발견되어야 한다. 현장의 모습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 측은 물론 상당수 전문가들도 참사 원인을 ‘팔’ 측의 ‘불량품 로켓’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불량품 로켓이 상공에서 폭발한 뒤 떨어졌다면, 사망자가 500여 명에 이를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방위군 및 미국의 일부 정보기관은 실제 사망자 수가 ‘팔’ 측 발표보다 훨씬 적을 것(예컨대 100~300명)으로 본다. 그래야 이스라엘 측 주장의 앞뒤가 맞는다.
영국의 지상파 방송국인 채널4(Channel 4 Television Corporation)는 ‘엄청난 사망자 규모’와 ‘참사 현장의 멀쩡함’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채널4 역시 참사 현장에 떨어진 미사일이 JDAM이라고 보지 않는다. 현장엔 박격포로 공격했을 때나 발생하는 작은 구덩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공습에 JDAM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채널4는 “이스라엘군이 공중확산탄(airburst munition)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공중확산탄은 지상에 닿기 전에 탄약들을 사방으로 흩뿌린다. 이 탄약들이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광범위한 폭발을 야기한다. 그래야 알아흘리 참사에서 인명 피해 규모는 엄청나지만 건물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고 구덩이도 작게 파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감청했을까?
이스라엘군은 10월18일 아침 기자회견에서 ‘하마스 대원들의 대화’를 감청했다며 오디오 자료를 공개했다. 그 자료에서 하마스 대원 중 한 사람은 이슬라믹 지하드 측이 “미사일 파편이 이스라엘 쪽이 아니라 우리 쪽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알자지라〉는 이 오디오 자료의 조작 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에 나온 ‘이어샷’은 이 오디오 자료의 포렌식 분석을 통해 “두 개의 별도 채널로 녹음한 뒤 편집한 것으로 신뢰할 만한 증거 자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채널4 알렉스 톰슨 기자는 전문가들이 해당 오디오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하마스 대원으로 주장되는 사람들의 “어조, 구문, 억양, 관용구 등이 (현지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믿기엔) 터무니 없”었다는 것이다.
4. 참사 전후 이스라엘 측의 수상한 동향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디지털 보좌관인 하난야 나프탈리는 참사 직후인 10월18일 새벽, X(트위터)에 이런 게시물을 올렸다. “이스라엘 공군이 가자 지구의 한 병원에 있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기지를 타격했다.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죽었다. 하마스가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병원, 모스크, 학교 등에서 로켓을 발사하고 있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스라엘군이 알아흘리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나프탈리는 이 게시물을 올리자마자 삭제했다. 이로 인해 논란이 벌어지자, 몇 시간 뒤 X에 사과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썼다. “(이스라엘군은) 병원을 폭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군대가 가자 지구의 하마스 기지 중 하나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생각했다.” 앞뒤가 좀 맞지 않는다.
나프탈리가 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하고 다시 게시하는 와중에 이스라엘 방위군도 논란에 휩싸였다. X에 쓴 게시물 때문이다. “적(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이 이스라엘 쪽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로켓은 병원이 타격당한 시점에 그 근처를 지났다.” 문제는 게시물에 첨부된 동영상이었다. ‘팔’ 측의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이 병원 상공을 지나가는 내용인데, 영상에 표시된 시각이 알아흘리 참사로부터 40분 뒤였다. 이를 〈뉴욕타임스〉 기자가 지적하자, 이스라엘군은 해당 영상을 별다른 해명 없이 삭제했다.
한편, 나프탈리는 “이스라엘군은 병원을 폭격하지 않는다”고 썼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참사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알아흘리 참사 이전까지 가자지구의 의료 시설에 51건 이상의 공격이 가해졌다고 지적했다. 15명의 의료진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을 입었다. 알아흘리 병원의 운영자인 영국 성공회 재단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측은 이 병원에 대해서도 의료진과 환자들을 내보내라고 경고했다. 〈알자지라〉와 CNN(10월18일)은, “이스라엘군이 참사 며칠 전, 알아흘리 병원에 ‘경고’ 차원으로 포탄 2발을 발사했다”라는, 가자 지구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5. 객관적 조사가 가능할까?·
지금까지 봤듯이, 알아흘리 참사라는 하나의 현상을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갈래의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양상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측 모두 적극적으로 ‘여론전쟁’을 펼치고 있는 데다 제3자의 현장 접근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론과 전문가들은 사실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적 이익이나 믿음에 따라 이번 참사에 대한 접근 태도가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10월20일 유엔은 알아흘리 참사에 대한 독립적 국제 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10월20일까지 1400여명의 이스라엘인과 40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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