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프리즘]변호사의 질문, 국회의원의 질문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공감하고 경청하되 의뢰인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빠뜨리는 사실관계나 스쳐지나 갈 수 있는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되물어야 된다. 자칫 의뢰인 감정에 이입해 간과한 사실관계가 소송의 복병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뢰인 말의 모순점을 지적하며 되묻기도 해야 되는데, 그 때에는 방어 기제가 작용하지 않도록 추궁의 자세가 아니라 ‘나는 당신의 편이며 당신을 도우려는 사람이다’라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어조와 태도로 질문을 해야 한다.
변호사가 얼마나 질문을 잘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무대는 소송에서의 증인신문절차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처럼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증인의 답변이 달라질 수 있기에 증인으로부터 필요한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위해 긴장 속에 치밀한 두뇌싸움이 이뤄지는 자리다. 반면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검사나 판사의 질문은 또 다르다. 상대의 말이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집요하고 엄하게 물어야 된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흔들리는 동공이나 콧잔등에 맺힌 식은땀처럼 상대가 보이는 신체적 반응이 답이 될 수도 있기에 매섭게 몰아세우는 질문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처럼 법률가는 어느 직업보다도 질문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인데, 질문을 많이 하는 직업은 또 있다. 바로 국회의원이다. 인사청문회나 대정부질문, 국정감사처럼 국회의원이 질문을 하는 날은 셀 수 없이 많다. 국민을 대표해 공직자가 되고자 하는 이의 자질을 점검하고, 국정 수행을 따져보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회 상황을 보면 의원의 주요 의정활동의 하나인 질문을 ‘잘’ 하는 자세는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해마다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국정감사장에서 냉철한 지적이나 심도 있는 질문보다 또 어떤 해프닝들이 벌어질지 우려하게 된다, 고성과 호통은 기본이며, 질문의 요지를 도통 알 수 없는 자기 홍보만 나열한 질문, 원하는 답을 강요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 질문, 상대에게 답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몰아세우는 질문, 대의와는 관련 없는 이목 끌기 질문들이 이어진다.
변호사와 검사의 질문이 판사를 설득하기 위한 것처럼 국회의원의 질문은 지켜보는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질문이라고 선의로 해석하면 한바탕 쇼를 하는 것도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없으나, 문제는 이제 그러한 보여주기식 질문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달 리얼미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는 국회의 대정부질문, 국정감사의 질의응답 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 중 22.8%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에 대해 국회의원의 전문지식과 자질 부족을 꼽았다. 풀어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질책하고 지적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지위의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다. 질문자는 응답자보다 배경과 사실관계에 대해 ‘지식적 우위’를, 당위와 근거에 대한 ‘논리적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 한다. 비록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했다는 지위로 질문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을지라도 유용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개인의 태도와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준비가 안된 질문들은 ‘이 모 교수’가 ‘이모’로 둔갑하듯 조롱과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 할 뿐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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