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아깝다…가을 극장가 왜 이렇게 풍성한 건데
거장 영화 넘쳐나…인상적 작품도 줄이어
미야자키 하야오·고레에다 히로카즈 신작
마틴 스코세이지 새 영화는 이미 상영 중
스릴러 대가 데이비드 핀처 영화도 극장서
이와이 슌지 로맨스, 한국영화 기대작도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여름엔 참담했다. 추석엔 처참했다. 그렇게 비수기인 가을을 건너 뛰고 허무하게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 가을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흥행을 장담할 순 없지만 영화의 참맛을 알게 해줄 영화, 티켓값 1만5000원이 아깝지 않을 영화가 가을 극장가에 쏟아진다. 거장의 영화, 대가의 영화는 물론이고 한국영화계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영화, 계절에 어울리는 로맨스 감성에 푹 빠져들게 할 영화가 관객 만날 채비를 마쳤다. 여름과 추석 때도 극장에 안 간 엄격한 관객이라고 해도 이 라인업을 보면 이번 가을엔 한 번 쯤 영화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돌아왔다
우선 가장 기대감이 높은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다. 1941년 생인 하야오 감독은 이번 영화가 은퇴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도 신작을 향한 관심이 어느때 보다 높다. 23일 오전 예매 관객수 17만명(영화진흥위원회 기준)을 넘긴 이 작품은 개봉일이 아직 더 남았기 때문에 예매 관객수만 20만명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화재로 어머니를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에 간 마히토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왜가리 한 마리가 나타나고, 마히토는 왜가리와 함께 이세계(異世界)로 들어가게 된다. 일본에선 지난 7월 공개됐고, 역시 큰 화제 속에 매출액 83억3000만엔(약 754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걸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너무 난해한 작품이라는 평도 있어 흥행을 장담할 순 없다. 오는 25일 공개 예정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개봉일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11월 중 국내 관객을 만날 예정인 거장의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다. 이 영화는 두 소년의 비밀을 그린다. 다만 두 아이에 관해서만 담아내는 게 아니라 두 아이와 얽혀 있는 성인들의 시각을 함께 이야기하며 우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프랑스에서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찍고, 한국에서 '브로커'를 만든 뒤 4년만에 다시 일본에서 일본 배우들과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기대를 모으고 있다.
'괴물'은 따뜻함과 냉정함이 함께 담긴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고레에다 감독이 이전에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퍼즐식 구성이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 드라마를 대표하는 작가인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썼고, 세상을 떠난 영화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만들었다.
◇스릴러의 대명사
스릴러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그 이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새 영화도 관객을 만난다. 핀처 감독 신작 '더 킬러' 역시 스릴러다. 킬러가 예기치 않은 상황이 탓에 타겟을 눈앞에서 놓치고, 이로 인해 자신을 고용한 이들과 전 세계 암살자들에게 쫓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마이클 패스벤더, 틸다 스윈턴, 찰스 파넬 등이 출연했으며 올해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더 킬러'는 극장에서 오는 25일부터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선 다음 달 10일 공개 예정이다.
◇206분짜리 시네마의 참맛
영화 마니아라면 놓칠 수 없는 영화 한 편이 이제 막 관객을 만나기 시작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플라워 킬링 문'(10월19일 공개)이다.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오세이지라는 이름을 가진 원주민 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어떤 경지를 넘어선 스코세이지 감독의 유려한 연출을 맛보게 해준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판을 치는 시대에 '플라워 킬링 문'은 시네마가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역작이다.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 중 최대 규모인 2억 달러(약 2700억원)를 쏟아부은 대작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가 2017년 내놓은 동명 논픽션을 영화화 한 이 작품은 러닝 타임만 무려 206분. 짧아지고 더 짧아져 30초 짜리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기에 길고 긴 상영 시간이 진입 장벽인 건 부정할 수 없다.
◇'러브 레터' 그 감성 다시 한번
2000년대 초 일본 영화 붐을 이끌었던 그 사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는 11월1일에 나온다. 이번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 영화. 이와이 감독은 음악 영화를 처음 만든다. 길거리 뮤지션 키리에, 키리에의 친구 잇코, 사라진 연인을 찾는 남자 나츠히코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음악으로 엮어가는 작품이다. 이와이 감독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만의 감성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러브 레터' 같은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만족할 수 있다. 아이아 디 엔드가 키리에를, 히로세 스즈가 잇코를, 마츠무라 호쿠토가 나츠히코를 연기했다.
◇올해의 한국영화
한국영화계가 큰 위기를 맞이한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을 잃지 않게 해주는 작품이 나왔다. 오는 25일 공개되는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다. 조 감독은 드라마 'D.P'에서 '조석봉'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긴 바로 그 배우. 2010년부터 단편영화를 수 차례 만들며 연출 실험을 해온 그는 이번 작품으로 장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너와 나'는 고등학생 소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표면적으로는 두 아이의 사랑을 담은 작품인데, 조 감독은 이 영화를 퀴어 로맨스로 남겨 두지 않고 도약시킴으로써 10년 전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위로하는 데 쓴다. 물론 완벽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이고 윤리적이기까지 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한국영화계 미래를 일정 부분 긍정할 수밖에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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