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에픽하이, 홍대 지하서 코첼라 위…"우린 서 있어 HERE"

이재훈 기자 2023. 10.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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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힙합' 그룹의 생존·안착 관련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교과서"
[서울=뉴시스] 에픽하이(Epik High). (사진= 아워즈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첫 계약은 500에 3년 / 첫 숙소 500/30 / 첫 페이는 얇은 봉투 세 장 속에 만 원씩 / X 같지만 뭐 어때? / 오늘은 안주 먹는 날 (…) 습한 홍대 지하에서 코첼라 사막 위 / 배경은 달라졌지만 내 땀은 마르지 않지 (…) 수천 번 넘어지고도 우리는 서 있어, 히어(HERE)"(에픽하이 '프리퀄(Prequel)' 중)

힙합 그룹 '에픽하이(Epik High)'가 23일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꼭 20년 전인 2003년 10월23일 첫 정규 음반 '맵 오브 더 휴먼 솔(Map Of The Human Soul)'을 발매하며 데뷔한 이들은 국내 힙합의 '현실적 모순'을 '문학적 해결'을 통해 타파하며 '한국 힙합'의 체질을 바꾸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타블로, 미쓰라, 투컷 등 세 멤버로 구성된 이 팀은 국내에서 힙합을 둘러싼 이질적인 요소의 충돌을 때로는 정통적인 격렬함으로 때로는 대중적인 부드러움으로 완화시켜왔다. 문학적인 노랫말, 서정적인 멜로디, 탄탄한 비트 메이킹 등 3박자가 맞물리며 평단·대중의 호평을 골고루 얻었다.

언더 그라운드 힙합 공동체(무브먼트)와 K팝 대형 기획사(YG엔터테인먼트)를 오갔고, 힙합 콘서트와 예능 프로그램을 동시에 출연하는 등 이들의 궤적은 국힙(국내힙합)의 중심을 잡는 중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거 없는 괴소문에 시달리고 이유 없는 안티팬의 공격을 받은 이들의 삶은 국내 연예계와 사회가 합작한 부조리함이 만들어낸, 롤러코스터 같은 드라미틱한 부산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에픽하이 이즈 히어(Epik High Is Here)', 이들은 언제나 한국 땅 여기에 서 있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RM·슈가를 비롯해 수많은 '에픽하이 키즈'를 키워내며 지금도 한국 대중음악 신(scene)에서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혈기 넘치던 청년들이 모두 유부남이 됐지만 초창기 힙합 정신은 항상성을 유지 중이다.

팬덤 '하이스쿨'은 더 두터워지고 있다. 애초 오는 12월 16~17일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두 차례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는데, 단숨에 매진돼 같은 달 15일 공연을 추가했다. 매일 세트리스트가 달라 공연 추가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20주년을 맞는 해에 팬들을 위해 결정했다. 국내 힙합그룹으로는 드물게 미국 투어를 진행하고, 전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에 세 번 초청을 받은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서울=뉴시스] 에픽하이.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음악 전문가 일곱 명에게 ①에픽하이가 우리 대중음악계 끼친 영향 ②에픽하이 노래 톱3 ③에픽하이 노래 중 최고의 노랫말 등을 물었다. 다음은 그에 대한 대답.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

①2000년대 대중음악계에 힙합 음악으로 상업적 성과를 거두며 힙합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힙합 음악으로 처음 음악 방송 1위를 거둔 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장르를 넘어 일렉트로닉, 오케스트라, 록 등 다채로운 실험을 통해 고정관념을 타개하며 새로운 에픽하이만의 가요문법을 완성,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대 재능있는 음악가들과의 교류와 탁월한 노랫말, 그룹의 서사가 더해지며 당시 10~20대를 살았던 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팀이다. 특히 뮤지션들의 뮤지션으로 위상이 대단하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그룹 활동을 이어오며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② ▲'플라이(Fly)' : 긴 무명의 힙합 트리오를 최고 인기 그룹으로 만들어준 히트곡 ▲우산 : 에픽하이 서정성의 극치. 윤하와 함께, 영원히 비오는 날이면 떠오를 노래. ▲'본 헤이터(Born Hater)' :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장르 음악 신에서도 존경받는 에픽하이의 모습이 담겼다. 세로 형식 뮤직비디오 역시 숏폼 플랫폼의 오늘을 예견했다.

③'예스터데이(Yesterday)' : "한숨은 쉬어도 내 꿈은 절대 쉬지 못해". 에픽하이의 커리어에서 자주 반복되는 구절. 굴곡은 있었으나, 여전히 재치있고 단단하게 경력을 이어가는 3인조의 모토 같은 구절이다.
[서울=뉴시스] 에픽하이.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① 붐뱁 비트 위에 랩을 하면서도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대중적인 히트송 역시 만들어냈고, 예능프로에 출연하면서도 홍대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의 래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한국'에서 '힙합' 그룹이 어떻게 생존하고 안착했는가와 관련해 가장 먼저 참조해야 할 교과서.

② ▲'예스터데이(Yesterday)' ▲'낙화' ▲'레슨(Lesson) 3 (MC)'

③ '슈프림(Supreme) 100' : "나는 악동 yeah 문학동네에서 노는 두 얼굴의 문화 잡종 yeah"

유지성 프리랜서 에디터

[서울=뉴시스] 에픽하이(Epik High). (사진= 아워즈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① '플라이'를 통해 메인스트림에 힙합을 완전히 진입시킨 것, 힙합에 대한 신 내외부의 선입견 및 스테레오타입과 별개로 자기만의 노선을 개척한 것, 그렇게 한국 힙합에 "이렇게도 해볼 수 있고,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열린 대안을 제시한 것.

② ▲평화의 날 : 에픽 하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곡. ‘얼터너티브’로 대중을 설득시킨 좋은 예 ▲'플라이' : 지상파 음악방송 1위, 멜론 차트 5주 1위 등의 기록과 동시에 힙합 신의 공기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과 같은 곡 ▲정당방위 : 가장 동시대적인 피처링 진의 이름들과 함께, 오랜만의 정규 앨범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했다.

③ '레슨(Lesson) 3(MC)' : 타블로가 쓴 좋은 가사 중 하나만을 꼽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랩 신에서 조금 더 보고 싶은 가사는 '레슨(Lesson)' 시리즈처럼 어쩌면 약간은 나이브하게 느껴질 지라도 이렇게 결기를 품은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대화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①쇼미더머니 이전에도 힙합이 일상적으로 차트에 오르내리게 만든 주인공. 예능 활동과 팝 지향의 힘이 컸지만 한국에서도 래퍼가 연예계 대표 인물일 수 있음을 드물게 보여주었다. 음악성과 대중성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훌륭한 균형감과 그 덕분의 성공을 통해 발라드와 아이돌로 양분된 가요계에 다양성의 귀감이 되었다. 굳이 힙합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2000년대 가요계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그룹 중 하나.
[서울=뉴시스] 에픽하이(Epik High). (사진= 아워즈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② ▲'본 헤이터' : 적절히 대중성을 안배하던 틀을 깨고 과감한 사운드와 언어를 사용해 유독 임팩트가 강했던 노래. 가사들의 평균 수위가 지금처럼 높지 않을 때여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우산' : 에픽하이는 팝 프로듀서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노래. 팝 작/편곡 능력이 대단하다. ▲'러브 러브 러브(Love Love Love)' : 김태희 출연 광고에 힙합 그룹으로서는 드문 대중적 성공까지, 에픽하이 최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노래.

정민재 대중음악 평론가

① 힙합을 우리 가요에 정착시킨 주역. 에픽하이 이전에도 래퍼는 있었지만, 가요계 전면에 등장한 '힙합 스타'는 에픽하이가 최초였다.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정상에 올랐던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

②▲'플라이' : 에픽하이를 당대 최고 자리에 올린 곡. 시대를 위로한 희망의 노래 ▲'러브 러브 러브' : 게스트 보컬과 멜로딕한 하모니를 이루는 에픽하이 작법의 대표곡. 특히 라디오에서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본 헤이터' : 힙합 동료들과 함께 에픽하이의 귀환과 건재를 동시에 알린 컴백곡.

③ '플라이' : "때론 낮게 나는 새도 멀리봐 어두운 밤일수록 밝은 별은 더 빛나"
[서울=뉴시스] 에픽하이(Epik High). (사진= 아워즈 제공) 2023.10.23. photo@newsis.com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

①힙합은 펑크 록(punk rock), 전자음악 등과 함께 유난히 국내 주류 무대에 뒤늦게 소개된 음악이다. 그로 인해 오해나 다소 비정상적인 문화 풍토도 뒤따랐는데, 주류와 (언더그라운드 힙합으로 불리던) 비주류, 작품성과 (발라드 랩, 감성 힙합으로 대표되던) 상업성이 그 안에서 특별히 배척되는 가치이자 개념처럼 받아들여졌던 상황이 그것이다. 와중에 에픽하이는 초기 국내 힙합 크루 중 제일 잘 알려졌던 무브먼트 소속으로 TV 쇼 무대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작품성도 인정받는 꾸준한 활동으로, 분리된 두 영역에 모두 걸쳐 힙합을 폭넓게 소개했다. 이합집산이 잦은 힙합 신에서 흔들리지 않는 팀 콤비네이션을 유지했으며, 펀치라인과 문학성으로 대표되는 타블로의 랩, 다양한 주제/소재의 가사를 통해 라임과 플로우가 전부가 아닌 우리말 가사의 매력을 발굴했다. 결과지만 한국 힙합 아티스트 최초로 코첼라 무대에 선 것이 이들의 대표성을 상징한다.

② ▲'본 헤이터(Feat. 빈지노, 버벌진트, B.I, MINO, BOBBY)'(2014) : 타블로, 미쓰라를 포함한 래퍼 6명과 멤버 투컷까지, 하나의 제목 아래 완성한 7명의 이야기. 서로 혹은 누군가 또는 세상을 향한 일곱 가지 공격과 7대 죄악을 상징하는 뮤직비디오의 셀프 디스까지. 모처럼 랩 퍼포먼스의 쾌감을 살린 구성과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노래 자체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흉(Feat. MYK, YDG, Dok2)'(2009) : 대외적으로 친근했던 이미지와 반대로 이들에게는 안티와 풍파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공격성과 독기를 절대 숨기지 않은 곡도 꽤 있었는데, '흉'은 특별히 살벌한 날것의 공격성과 에픽하이 고유의 여유, 위트가 동시에 최대치까지 끌어내어진 노래다. 유명세로는 대표곡이 될 수 없으나, 어두운 정서로 무장한 블랙 에피 하이를 대표할 수 있는 노래. ▲'아이 리멤버(I Remember)(Feat. Kensie)'(2003) : 동시대 다른 가요 랩처럼 코러스를 중요하게 썼지만 확연하게 랩이 돋보였고, 하이 톤과 로우 톤이라는 흔한 구성의 두 래퍼였으나 유려한 가사와 과장되지 않은 높은 전달력의 발성과 랩으로 확고한 차별성이 있었던, 긴 역사의 시작과 같은 노래다.

③▲'풍파(Feat. 한상원)' : "인생이란 버드나무 너는 지는 낙엽. 수천, 수만 가지 잎은 너의 경쟁자며, 실패란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낙엽이 된 가엾은 그대여 두발로 뛰어가렴" ▲'연애소설(Feat. 아이유)' : "우리 한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 ▲'레슨 원(Lesson One((Tablo's Word)' : "Genius is not the answer to all questions. It's the question to all answers"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 "듣기 싫어 평온, 평화를 뺏은 놈들의 “rest in peace”. 박수 칠 때 떠나래. 떠나야 박수 치는 세상이 참 우스워.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샴페인(Champagne)' : "피아노를 만지작거리며 노래하는 하루를 보면 잊었던 아빠의 말투가 내 입에서 들리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

①힙합, 넓게 보아 랩뮤직을 대중화하는데에 있어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랩을 기반으로 한팀 중에 이렇게 폭넓게 그리고 오래 사랑받는 팀은 많지 않다. 더불어 이 팀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중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작품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타블로를 구심점으로 구현되는 그들만의 '문학성'은 어느 팀도 따라하기 힘든 매력이자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점을 기반으로 '스타'와 '아티스트'를 겸업할 수 있었으며, 일반 리스너와 평단의 환호를 모두 획득해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② ▲'플라이' ▲'스틸 라이프(Still life)' ▲'우산'

③ ▲'레슨 2(Sunset)' : "여전히 이 젊은이 위험한 꿈을 꿔 무법자 눈을 떠 화염병이 불 붙어 / 저 하늘에게 충성 심판의 칼을 차리 이땅의 법이 출석부라면 나 결석하리" ▲'알고보니' : "태평양보다 깊은 사랑 알고보니 얕더라 남자의 자존심 수표 한 장 보다 얇더라 / 그 숲을 알고보니 그 늪을 알고보니 도망치듯 스쳐가는 세월의 손을 잡고보니" ▲'낙화' : "어쩌면 이미 흩어진 꿈을 쥐고 날 속이면서 / 빈손이 가득 찬 착각에 세상을 놓치면서 살아왔던 건 아닐까"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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