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이어 고수온…전복도 꿈도 ‘폐사’
“전복들 죽어 앞이 안 보이는데
합동조사단조차 꾸려지지 않아”
전남 완도군 금일읍 도장항에서 1㎞쯤 떨어진 한 전복 양식장. 한명근씨(43)가 지난 16일 오후, 어선의 크레인을 움직여 가두리 양식장을 들어올렸다. 양식장 한 칸에는 미역과 다시마를 먹여 2년 반을 꼬박 키운 전복 600미가 살았었다. 늘 설렘과 반가움으로 길어 올리던 전복을, 요즘 한씨는 괴로움과 미안함으로 끌어올린다. 한씨가 직사각형 칸이 나뉜 양식장을 배 위에 올리고 직각으로 들어올리자 후드득, 전복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살아 있는 전복은 빨판으로 단단히 그물에 붙어,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반은 죽었네. 반은 죽었어.”
읊조리며 뱉은 한숨이 대수롭지 않은 듯 동료 어민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에이, 반절 아니다. 30%다. 이 정도면 양호하네.” 골라서 뜯어낸 ‘산 전복’ 10여미를 한씨가 무심한 표정으로 썰어 냈다. “남의 전복이 제일 맛있더라.” 웃자고 건넨 농담인 줄 알기에 마주 웃었지만, 한씨 입가에 걸린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아는 동료 어민들의 농담 사이사이에서 한숨이 비죽비죽 새어나왔다.
올해 들어 완도 전복 어가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생산지 전복값은 폭락했다. 28도 이상 고수온에 취약한 전복은 여름이 오기 전인 7월 말쯤 다 팔려야 했지만, 제값을 받지 못하고 양식장에 남았다.
결국 지난달 완도의 전복 양식장 곳곳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7월 하순부터 9월 중순까지 폭염이 계속되면서 연안 수온이 평년(최근 30년)보다 1~3도 높게 유지됐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던 전복 도맷값은 완도 전복 줄폐사 이후 최근 반등했다. “다 죽어버리니까 가격이 오르데요.” 어민들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코로나도 버텼는데…고수온 폐사, 비현실적 기준에 보상도 막막”
앞으로가 더 두려운 ‘전복 키우는 완도 청년들’
금일도 청장년 양식업자 40여명
대부분이 ‘귀어’한 토박이들
“9년 전만 해도 전복 가격도 좋고
저금리 대출 등 정부 지원도 빵빵
지금은 다 빚…1년에 1억 갚아야”
풍운의 꿈 안고 터 잡은 청년들
금일도 도장어촌계에는 30~50대 청장년 전복 양식업자 40여명이 살고 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전에 귀어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실은 완도 금일읍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다. ‘섬 밖으로 나가 살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광주 등 섬 밖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서울과 천안 등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귀향한 이들도 있었다.
9년 전 귀어한 한병훈씨(41)는 “부모님과 마을 어르신들이 양식업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전복 양식을 시작할 때는 정부자금 지원도 잘돼 있었고, 전복 가격 자체가 좋았다”며 섬으로 돌아오던 때를 회상했다.
작은 배 한 척에 2억원, 큰 배는 15억원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양식업에 이들이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젊은 수산인력 양성 사업’ 덕분이었다. 만 50세 이하 후계어업인에게 저금리 대출을 지원하는 ‘수산업 경영인’ 정책 등에 힘입어 이들은 희망을 안고 섬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게 이제 다 빚이네요.” 11월에 치패(새끼 전복)를 사들여 몇 해 농사를 시작해야 하지만, 올해 입은 경제적 타격으로 치패 살 돈 없는 이들이 마을에 수두룩하다고 했다. 특히 정책자금 원리금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청년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나왔다. “다들 대출 5억~10억원은 기본이에요. 이자만 월 300만~500만원인데 원금을 상환하려면 1년에 생활비 빼고 1억원을 갚아야 해요.” 한씨가 말했다. 정책자금을 받은 이들은 수산업 이외에 4대보험에 가입되는 직종에 종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출구도 없다.
완도금일수협이 자체적으로 보험 가입 대상자들의 양식장을 조사한 결과 감목, 구동, 도장, 동백, 생일, 신평, 척치 어촌계의 양식장 4031칸 전복 중 3만6986미(약 55%)가 고수온으로 폐사 피해를 입었다. 피해 추정금액은 29억여원에 이른다. 아직 사고조사가 진행 중인 점,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어민이 상당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이라는 게 완도금일수협 측 설명이다.
청년이 무너지면, 마을이 무너진다
부모의 양식장을 물려받아 4년 전 귀어한 한선호씨(50)는 마을 청년 중 맏형님뻘이다. 그는 마음이 더 무겁다고 했다. 한씨는 “어린 동생들을 보면 ‘접고 마을 떠나라’고 자꾸 말하게 되더라”고 했다. 부모님을 모시려 돌아온 데다 처자식이 있는 자신은 앞으로 20년, 30년이고 눌러앉아야 할 팔자지만 ‘홀몸인 청년들은 아직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떠난 ‘마을의 미래’에 대해 한씨는 “다른 도서 지역이 그렇듯 금일도에서도 젊은이는 사라지겠지”라고 했다. 금일읍에 거주하는 청소년(현재 금일초 70명, 금일중 51명, 금일고 32명) 대부분이 전복 양식으로 먹고사는 집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나마 귀어·귀촌한 청년들이 있어 학교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다 떠나버리면 문제가 되겠죠.” 한씨는 ‘섬을 떠나 살라’던 어르신들의 말씀에 요즘 공감한다고 했다. “우리가 시작할 때는 전망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내 자식들에게 ‘어업하라’는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한씨로부터 ‘마을을 떠나라’는 잔소리를 자주 듣는 임국빈씨(31)도 지친 마음을 꺼내보였다. 5년 전 귀어한 임씨는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모아 전복을 길러놓으니 코로나19에다 오염수까지 터졌다”며 “전복 죽은 껍데기만 보면 화가 나서 바다에 나가기도 싫다”고 했다. 그는 올해 양식장에 종자를 넣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임씨 주변에는 양식업을 접은 이도, 개인파산 신청을 고민하는 이도 있다. “저희끼리는 앞으로 어떻게 사냐, 모이면 매일 이런 얘기뿐이에요.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 섬 안에서 메아리만 치는 기분입니다.” 임씨가 말했다.
완도 금일도의 어민들이 무너지는 모습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정부 정책자금을 지원받은 어민들이 파산 신청을 하면 90%를 농림수산업자신원보증기금(농신보)이, 10%를 수협이 책임지는 구조다. 완도금일수협이 어민 개인회생파산으로 떠안은 ‘연도별 대손판정 대위변제 현황’을 보면 10월15일 기준 243건, 141억여원이다. 지난해 한 해를 통틀어 떠안은 241건, 143억원과 비슷한 수치다. 이진영 완도금일수협 상무는 “아직 올해가 두 달 남았는데 지난해 수치에 도달하는 등 부실 수치가 오르고 있다”며 “청년 어민 한 사람이 포기하게 되면 연쇄작용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 오염수 방류 관련 정부 대책
어민들에게 체감되는 건 없어
한계수온 28도 안 돼도 ‘줄폐사’
전복 산업 지속 가능성에 의문
고수온 줄폐사에도, 관청은 “기준 미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 우리 정부는 다방면으로 수산물 소비촉진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어민들이 느끼는 효과는 미미하다. 완도읍에서 전복 유통업을 하는 황인중 경영수산 전무이사는 “정부 노력을 느끼긴 하지만 결국 그건 나 같은 유통업자만 배 불려주는 것일 뿐 어민들에게 돌아가는 건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그는 “겨우 ‘(2.5t 트럭) 한 차 ○○수산에 팔았다’ ‘다행이다’ 정도로 생각하지 정부 역할이 체감되는 건 없다”고 했다.
금일도 청년 어민들은 폐사의 원인을 찾는 ‘행정합동조사’가 시급하다고 했다. 양식수산물재해보험에 가입된 어민은 폐사가 ‘고수온 피해로 인한 것’임을 증빙하는 공문서가 있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폐사율을 측정하려면 양식장 안에 죽은 전복을 남겨둬야 한다. 새끼 전복을 넣어야 하는 11월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행정합동조사는 요원한 상황이다.
해양수산부가 정한 전복 한계 수온 기준은 28도인데, 이 상태가 3일 이상 지속돼야 고수온 경보가 발령되고 피해 보상 조사도 이뤄진다. 완도군청 관계자는 “(지난여름에) 신고 들어온 몇 곳을 동향 파악차 점검했지만 28도 평균수온을 넘은 해역이 없었고, 가두리마다 폐사율이 달랐다. 한 칸을 조사하는 데 6명씩 30분이 걸리는데, 기준치를 넘지 않으니 저희로서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어민들은 ‘28도 고수온’이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이라고 본다. 황 이사는 “평소 전복이 안 죽던 동네도 올해 많이 죽었다”며 “28도는 고수온, 27도는 고수온이 아니란 말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서광재 금일수협 조합장은 “수온이 28도로 올랐다가도 해류 등으로 시시각각 변하는데, 3일 연속 28도 이상은 누구도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기준”이라고 했다. 완도군청 관계자도 “28도 기준은 2015년 정한 것으로 근 10년 가까이 된 기준이다. 바다 환경이 달라졌고, 이를 연구해달라고 수산과학원에 건의할 생각”이라면서도 “당장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올해를 넘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민들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10년차 양식업자 조재근씨(41)는 “출하를 제대로 못하고 고수온 피해 보상도 못 받아 생계가 위급해 죽겠는데 정부는 아무 대책이 없다. 알아서 버티라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수협 관계자들은 대출금리 인하와 납부기한 유예 등 어민 숨통을 틔울 직접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완도군청 측은 “재정 지원은 지금 당장 힘들지만 늦어도 올해 안까지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이자 지원이나 감면을 건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오염수, 아직 완도 바다에 안 왔다 해도
위기에 직면한 어민들은 전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도 막막함의 원인 중 하나다. 임형찬씨는 “정부는 과학이니 안전하다고 믿으라는데, 혹 전복이든 해산물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면 어민들은 진짜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며 “할 수만 있다면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전복 먹어도 괜찮아요?” 완도에서 전복으로 먹고산다는 이유로 오염수 방류 이후 이들은 친구·친지 또는 손님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되풀이해서 받는다. 한명근씨는 “우리 같은 청년 어민들이 사라지면 다음 세대는 없다고 본다”며 “아직은 어떻게든 이 섬에서 버텨보려 하지만 지금 (포기하고픈 마음이) 목끝까지 차오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황인중 이사의 유통업체는 지난 7월부터 자체적으로 방사능분석센터에 방사능 검사를 의뢰하고 있다. 그는 “제가 설득한다고 몇 명이나 설득될지 모르겠지만 의문 갖는 사람들에게 우리 전복이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만에 하나 방사능이 검출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묻자 그가 답했다. “사업 접어야죠. 그땐 접어야죠.”
전지현·박채연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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