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에 반하다]② ‘아아’ 푹 빠진 伊 컴퓨터 과학자… “내 이름은 안두리”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 도울 도구 만들어
“한국 연구 인프라 좋아… 커뮤니티 문화도 잘 맞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의대 쏠림 현상까지 겹치면서 이공계 분야의 인재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연구인력 부족을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해외 인재 유치다. 하지만 비영어권 국가인 한국은 여러모로 해외 우수 인재를 데려오기가 쉽지 않다. 해외 인재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면 연구 환경과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비즈는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다를 건너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구자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이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들어보고 해외 인재 유치 과정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난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얻어본다. [편집자 주]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국내 박사 학위 취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 학생은 1944명으로 2012년 473명에 비해 4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62%에 해당하는 1205명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국내에 남은 외국인 박사는 579명으로 10명 중 3명도 채 되지 않는다. 외국 학생의 본국 귀국은 2016년 40.9% 보다 21.1%p 늘어났고, 한국 거주 비율은 2016년 39.1% 보다 9.3%p 낮아졌다.
아이돌 그룹 BTS와 영화 기생충 같은 ‘K-콘텐츠’의 인기가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지만 ‘K-사이언스’의 인기는 정작 뒷걸음질하고 있는 셈이다. 이역만리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된 인물이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의 안드레아 비앙키 교수다.
안드레아 비앙키 교수는 한국 이름인 ‘안두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탈리아 토박이지만 한국의 매력에 반한 비앙키 교수는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열렬한 팬이다. 안드레아 비앙키, 아니 안두리 교수를 사로잡은 한국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리고 한국을 떠난 70%의 외국인 박사의 마음을 사로잡을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 17일 대전 KAIST의 연구실에서 안드레아 비앙키 교수를 만났다.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언제 였나.
“미국 뉴욕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2006년 여름에 여행하러 왔다. 그때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알고 있던 상태라 6주 동안 머물며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그동안 같은 곳에 살던 한국 학생들이 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그때 느꼈던 친절함과 에너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내가 살던 뉴욕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친절하지만 한국과는 다른 느낌이다. 한국은 마치 집처럼 느껴졌다. 그 뒤에 뉴욕으로 돌아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취직까지 했지만, 한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2008년 KAIST 박사과정에 진학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나서도 한국에서 자리를 잡았다.
“사실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먼저 내가 유럽으로 돌아가 연구를 이어가고 싶은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 방식을 연구하는 분야가 당시 시작하는 단계이기도 해서, 이탈리아에서 연구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한국은 생활 방식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문화가 좋고 무엇보다 나에게 꼭 맞는 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뒤에 한국에서 아내를 만나면서 가족과 친구, 연구 커리어와 동료들 모두 한국에 있어 정착했다. 한때 아내는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싶어했지만, 내가 여기 있자고 주장했을 정도다.”
-이탈리아의 커피가 그립지는 않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 커피가 평균적으로 이탈리아 커피보다 맛있다고 생각한다. 커피 종류도 다양하고 서비스도 좋다. 한국에서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서비스의 집합체라는 느낌이다. 이런 면에서 이탈리아보다 좋다는 뜻이다. 한국만의 음식 문화를 좋아한다.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거나 음식을 쉐어하는 문화도 좋아한다. 미국에 있을 때는 모두가 각자 밥을 먹었다. 일본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없었다. 밥이나 커피가 일종의 사회적인 행동처럼 보였다. 이런 커뮤니티 문화가 특별하게 느껴지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드레아 비앙키 교수는 삼겹살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긴다고 하면서 한국만의 문화들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단 하나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 한국 문화는 운전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평소에 한국인들은 정말 상냥한데 운전할 때만 되면 공격적”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사용자가 컴퓨터와 원하는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를 만든다. 컴퓨팅과 디자인의 중간이라고 보면 된다. 이 분야는 코딩 같은 컴퓨터 과학 개념 외에도 기기를 직접 만들거나 사용자의 심리를 분석하기도 해야한다.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아 기기를 개선하는 것도 연구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하는 만큼 복합적인 연구 분야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면.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와 함께 사용자에게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컨트롤러를 개발했다. 막대 형태의 컨트롤러 두 개인데, 이 컨트롤러는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이를 손에 쥐면 컨트롤러가 줄넘기처럼 서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이 컨트롤러는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게임을 할 때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물고기가 안에서 펄떡이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우리는 이 컨트롤러를 ‘게임스 본드’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가상현실 체험을 할 때 실제로 그 장소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치로 만들었다. 가로세로 2.5cm 크기의 타일로 이뤄진 바닥인데, 타일이 위 아래로 움직이며 계단이나 언덕과 같은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랜드 캐니언같은 협곡을 가상으로 여행하고 있을 때 실제로 그곳을 걷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거다.”
-한국에서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KAIST에서 연구하는 것은 정말 큰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연구원들, 그리고 연구실까지 지원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니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다.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국제 연구진과도 자주 연구를 같이 할 수 있다. 지금만 봐도 미국 시카고대나 텍사스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협업을 하고 있다. 연구 성과를 내면 이를 컨퍼런스에서 공유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네트워크로 이어진다. KAIST의 인프라가 네트워킹의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언어적인 어려움은 없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한국어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한국인들이나 한국 연구자들이 영어를 잘해서 소통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영어로 말해도 모두 잘 이해하고, 의견을 말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딱 하나 연구 과정에서 어려운 건 제안서를 쓸 때다. 연구 제안서를 쓸 때 가끔 한국어로 된 제안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제안서는 영어로 작성하더라도 참고 서류들은 한국어로 작성해야한다. 지금은 연구실 학생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인이라 한국어 제안서 작성이 어렵진 않지만, 여기서 외국인 학생을 더 받으면 어려워질거 같다.
언어적인 어려움은 아니지만 한국의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가 적다는 생각은 한다. 국제적인 협력이 오히려 쉽다는 생각이다. KAIST나 한국의 과학계는 좋은 의미로 경쟁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영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다.”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연구자들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 몇 가지는 조정될 만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외국 교직원 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비교적 작은 집단인 외국인 교직원들의 목소리를 대학 운영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의도는 좋지만 논의하고 싶은 주제가 같다면, 굳이 (외국인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꾸려나가고 싶은 만큼 다른 교직원들과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구 주제는 지금 연구를 같이하는 학생들과 미래에 함께할 학생들에 달려있다. 지금 학생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 흥미를 느껴 함께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무엇에 흥미가 있는 지에 따라서 연구 주제가 사라지거나 바뀌고,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연구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 동영상을 편집할 때는 일종의 자동화 프로그램들을 사용하지 않나. 이런 것처럼 내가 원하는 작업을 자동으로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지금 고려대 안암병원과 같이 환자가 느끼는 통증을 조기에 감지하는 기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더 나은 의료 현장을 만드는 기술에도 관심이 많다.”
안드레아 비앙키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2004년 이탈리아 보코니대 경영학 학사·석사
2007년 미국 뉴욕대 컴퓨터과학 석사
2012년 KAIST 문화기술학 박사
2013년 성균관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2015년~현재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2022년~ KAIST 전산학부 겸임교수
주요 연구성과
UIST ‘19: Proceedings of the 32nd Annual ACM Symposium on User Interface Software and Technology(2019), DOI: https://doi.org/10.1145/3332165.3347926
Proceedings of the ACM on Interactive, Mobile, Wearable and Ubiquitous Technologies, DOI: https://doi.org/10.1145/3369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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