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무자격 조종사' 진실 밝혀냈지만…그는 한국을 등졌다
'부당한' 승진 차별에 문제 제기하다가 '무자격 조종사' 폭로
대한항공 "허위사실 유포"로 연이어 고소…결국 1년 옥살이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 증거 나오면서 '명예훼손' 무죄 확정
직장 잃고 억울한 옥살이…대한항공은 아무런 책임도 안져
▶ 글 싣는 순서 |
①'대한항공 무자격 조종사' 진실 밝혀냈지만…그는 한국을 등졌다 (계속) |
대한항공 부기장을 지낸 이채문씨(74)는 올 7월 초 한국을 떠났다. 가족들과 생이별한 이씨는 영국 런던에서 망명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씨는 대한항공과의 20년에 걸친 진실 게임에서 이겼지만, 되돌릴수 없는 상처만 남았다.
이씨는 처음 내부 승진 차별 문제를 제기하다가 실직한 후 대한항공의 무자격 조종사 문제를 폭로했다. 이것이 험난한 인생의 시작점이 됐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우여곡절 끝에 무자격 조종사 채용을 밝혀냈지만, 이미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난 뒤였다. 대기업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그만 억울하게 감옥에서 1년을 보냈다. 그에 대한 형사보상(대한항공이 아닌 국가에서 해준 보상)으로 손에 쥔 돈은 1800만원이 전부다.
무자격 조종사 고용, 17년만에 사실로 인정
이 때 검찰에도 관련 증거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무자격 조종사 채용이 드러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한항공이 이씨를 명예훼손 등으로 두번째로 고소한 재판에서다. 대한항공은 이씨를 총 3번 고소했다.
대한항공은 설립된 이후 30년간(1969~1999년) 3종류의 무자격 조종사를 고용했다. 1500시간의 비행시간을 채우지 못한 '시간 미달자', 계기비행 시간 50시간에 미달한 '계기비행 무자격자', 비행기가 아닌 헬리콥터 운행을 했던 '헬리콥터 조종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계기비행 무자격자'는 지난 2013년도 재판에서 이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 문서가 공개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대한항공은 무자격자 고용은 허위사실이라며 이를 주장한 이씨를 고소했지만, 되레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법원에 제출된 육군본부 인사기록 카드에는 당시 김모씨의 계기비행 시간은 '0'시간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때문에 김씨는 지난 2003년의 진술을 뒤집고 군시절 계기비행 시간을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실제 비행 시간을 부풀린 가짜 서류를 만들어 계기비행시험 실기를 면제받고 필기로만 합격해 조종대를 잡았다.
이를 기회로 이씨는 기존 사건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고, 그 결과 2016년 판결에서 계기비행 무자격자 채용 주장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 재판 과정에서도 김씨는 무자격 조종과 서류 위조를 모두 시인했다.
"제가 사실을 거짓(으로 진술)한 것은 맞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회사 직원이었고 회사 직원으로서 상대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서류를 위조한 구체적인 방법은 같은 재판의 다른 증인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1988년 3월경 서울 영등포시장 부근에서 위조를 했고, 육군참모총장 명의의 도장은 이름을 모르는 업자에게 돈을 주고 부탁해서 만들어 찍었습니다."
당시 증언에 따르면, 이때 대한항공에 지원한 육군항공 출신 7명 가운데 5명의 계기비행 시간이 위조됐다.
나머지 다른 두 가지 무자격 조종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 건 2년이 더 지나서다. 이씨는 자신이 법정구속되고 실형이 선고됐던 재판에 대해서도 재심을 신청해 새로운 판결을 이끌어 냈다.
지난 2019년 10월 법원은 "무자격조종사(시간미달자,계기비행무자격자,헬리콥터조종사)를 사용하여 온갖 사고를 다 내어왔다"는 이씨의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씨는 대한항공이 제기한 명예훼손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지 17년 만이다. 1년간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서는 국가로부터 1800만원의 형사보상을 받았다.
무자격자 채용한 대한항공 "명예훼손"이라며 잇단 고소
회사 관계자는 "담당자가 '모자란 시간을 채워오라'로 했지만 설마 (조종사들이) 위조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도 억울한 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사실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돼 징역을 살았지만, 대한항공은 무자격자 채용과 관련해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법정 증언 등을 보면 대한항공 측의 해명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우선 대한항공은 각자 알아서 비행시간을 채워오라고 했을 뿐이라지만, 회사 관계사의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구체적으로 나왔다.
2016년 12월 23일 김씨 피의자 신문조서 |
문: 대한항공에서 피의자를 비롯한 4명에게 비행경력증명을 위조하게 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답: 육군에서 추천을 하면서 대한항공에 제출한 비행경력증명에는 저의 계기비행시간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교통안전진흥공단에서 시행하는 계기비행자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 계기비행 50시간 이상을 이수했다는 비행경력증명을 만들어 오라고 당시 대한항공 인사과에 근무하던 이OO이 지시했습니다. |
대한항공은 부족한 비행시간을 교육을 통해 보충해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예비 조종사 입장에서 '비행 시간을 채워오라는 것은 서류를 조작하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6년 12월 15일 김모 기장의 법정 증언 |
이씨: 시간을 위변조하여 제출하고 계기비행시험에 응시하여 자격을 취득하였다고 밖에 볼수 없는 것이지요. 김 기장: 그렇습니다. 이씨: 대한항공이 조종사를 모집할때 조종사의 자격 조건이 어떠한지는 반드시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김 기장: 당연하지요. 이씨: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부족한 자에 대해 개별적인 보충훈련은 전혀하지 않았지요. 김 기장: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씨: 그리고 시간을 위변조해서 자격을 갖추도록 한 것이지요. 김 기장: 예, 일을 편하게 했지요. |
이씨는 "대한항공은 무자격자를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했다면 비행교육을 시켰어야 한다"면서 "'왜 비행 교육을 시켜주지 않느냐'고 물으니 '대한항공은 각 개인의 부족한 시간을 채워주는 비행은 안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개인의 부족한 시간을 채워주는 비행은 안 한다고, 각자가 알아서 하라고, 못하면 그냥 나가면 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당시 법정에서는 계기비행 시간이 없는 사람이 90%를 넘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비행시간 증명 자료 발급에 엄격했던 육군과 달리 공군, 해병대 등 다른 군에서는 가짜 증명서 발급이 쉽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격을 갖춘 조종사보다 그렇지 못한 조종사가 훨씬 많았다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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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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