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시장에서 가격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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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가격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비평을 들었다.
구매자는 시장가격을 보고 상품을 사고 싶은가를 결정한다.
그러나 시장가격을 주고 상품을 구매했다면 이 상품에 대한 필요성이 가격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가격은 생산과 소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므로 가격은 시장 상황을 수시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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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황따라 변할 수 있어야
의료 공백·전기료 인상 논란 등
인위적 가격 조절이 낳은 결과
신호 왜곡땐 시장 제 역할 못해
정책적 개입 등 신중히 검토를
최근 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는 가격을 너무 가볍게 본다는 비평을 들었다.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장 운영에 있어서 가격이 가장 중요한 신호인데, 정부는 가격을 툭툭 통제한다. 국민도 가격 제한을 요구하는데, 이는 가격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 같아 가격의 역할을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먼저 가격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생산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구매자는 시장가격을 보고 상품을 사고 싶은가를 결정한다. 즉 필요성이 가격보다 높으면 상품을 사는 것이고, 낮으면 상품을 사지 않는다. 물론 상품을 사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더 낮은 가격으로 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가격을 주고 상품을 구매했다면 이 상품에 대한 필요성이 가격보다 더 높았다는 것이다. 강요당하거나 속지 않았다면 이 상품을 구매하는 데에 있어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생산자와 판매자도 마찬가지다. 비용보다 가격이 높으면 상품을 만들지만 가격이 낮으면 상품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는 생산의 각 단계에서 나타난다. 연필 같은 단순한 상품을 만드는 데에도 여러 생산단계가 있고 각 단계에는 원자재와 노동력이 필요하다. 각 단계에서 생산자와 노동자는 가격(노동의 가격인 임금을 포함)을 보면서 생산을 결정한다. 내가 받는 가격이 비용보다 높아야만 생산과정에 참여할 것이다. 또 어떤 상품의 가격이 너무 낮아서 이득이 적다면 다른 상품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가격은 누가 무엇을 만드는지 결정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가격은 생산과 소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므로 가격은 시장 상황을 수시로 반영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가격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행동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신호이다.
이런 가격의 역할 논리를 제시하면 흔히 반박되는 논리가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틀린 논리는 아니다. 소득이 적어서 생존에 꼭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할 수 없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 소득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이지, 가격을 정책적으로나 인위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면서 시장이 왜곡돼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병원 진료비, 특히 대학병원의 내과나 외과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의 전문의에 대한 가격을 상당히 저렴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환자가 대학병원으로 몰리면서 의사들은 과로로 곤란을 겪고 있으며, 유능한 의과 학생들은 가격 제한을 받지 않아 소득이 높은 성형외과 같은 분야로 빠진다. 모순적인 결과로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분야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최근 전기료도 마찬가지다. 석유와 가스 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민 부담을 빌미로 전기료를 올리지 않았더니 한국전력공사에 사상 최대의 손해가 발생했고, 한전이 사채를 발행하면서 자금시장의 혼란을 유발했다. 비용 증가를 반영해 가격을 제때 올렸으면 이런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격은 시장이 돌아가는 데에 필수적인 신호이다. 이런 신호를 왜곡할수록 시장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고 이에 따른 문제는 언젠가 나타난다. 가격을 정책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고, 불가피한 경우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한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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