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전 해도 '하마스 궤멸'은 불가능... 오히려 보복의 연쇄만 불러"
일본 정부 중동 정책에 깊이 관여
"이스라엘이 지상전을 감행하면 하마스를 따르는 사람들이 또 생길 것이다. '하마스 궤멸'이란 목표는 애초 달성 불가능하다."
'일본 내 이스라엘 연구의 1인자'로 통하는 이케다 아키후미(68) 도요에이와여학원대학 명예교수의 진단은 이랬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의 최대 변수가 될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담겨 있었다.
이케다 명예교수는 1980년부터 이스라엘·중동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온 권위자다. 특히 1990, 2000년대엔 일본 외무성에 자문하거나 국제협력기구(JICA) 전문위원 활동을 하면서 일본 정부의 중동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일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 공식 협상이 중단됐던 2000년쯤부터 5~6년간 일본 외무성이 양측 지도급 인사들을 일본으로 불러 비공개 회담을 하면서 신뢰 구축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했을 때, 이케다 교수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도요에이와여학원 학장(한국 대학교의 총장에 해당)을 지낸 뒤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이케다 명예교수를 지난 19일 일본 도쿄에서 만나 이번 전쟁의 향방과 각국 대응에 대한 견해를 들어 봤다.
"이스라엘, 전례 없는 피해 입어 보복 의지 강해"
-하마스가 이 시점(이달 7일)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장기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경제적 곤궁이 심각해졌고, 사회적 불만이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로 향하자 이를 해소해야 했다. 또 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교 정상화 등에서 보였던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수교 협상을 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움직임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지상전으로 하마스를 궤멸한다는 목표가 달성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하마스는 다른 이슬람 무장 세력과 다르다.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사상'이고 '운동'이다. 조직은 파괴할 수 있지만, 사상은 현재 조직원이 사라져도 다른 지지자가 또 생겨난다. 지상전을 감행하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나올 것이다. 그러면 하마스에 자원해 이스라엘에 보복하겠다는 사람이 반드시 나온다. 보복의 연쇄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하마스엔 신병 모집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스라엘은 왜 지상전을 고집하나.
"이스라엘은 예전과 전혀 다른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는 하마스가 수십~수백 발의 로켓포를 쏘았으나 이번에는 수천 발을 쐈고, 이스라엘 영토 안에 들어가서 사람을 죽이거나 인질을 잡았다. 이 정도로 당한 건 처음인 만큼 더욱더 철저하게 보복한다는 태세다. 특히 가자 북부의 지하 터널을 완전히 부수어 하마스가 적어도 10년 이상 회복하지 못하도록 만들려 한다. 다만 강력한 공격을 하되 점령은 하지 않고 나올 것이다. 미국 등이 반대하기도 하지만, 점령 시 이스라엘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이란이 이번 전쟁 규모 결정... 개입 시 큰 전쟁"
-국제사회가 지상전 개시를 막을 수 없나.
"이스라엘의 의지가 강해 '말'로는 막기 어렵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 때 다른 나라의 실제 병력 파견 여부다. 과거 수차례의 중동 전쟁 땐 팔레스타인을 위해 주변 아랍 국가들이 직접 참전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란은 물론 하마스 편이지만 사우디와 튀르키예는 한쪽에 크게 치우치지 않으면서 모두에 자제를 촉구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자제시킬 수 있지 않나.
"이스라엘의 고삐를 쥐고 있는 건 미국이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 초기부터 '이스라엘에 자위권이 있다'고 했다. 과도한 보복은 안 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보복은 용인한 것이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간 속내도 사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걸 미국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목적은 이란에 '개입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었다."
-이란이 이번 전쟁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전쟁이 얼마나 커질지 그 규모를 결정하는 건 이란이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개시 때 북쪽에서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시리아에 있는 이란 혁명수비대 같은 단체가 들어와 이스라엘을 공격할지가 관건이다. 이스라엘이 3만 명 병력의 하마스와 상대하면서 예비군 36만 명을 동원한 것은 확전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이란이 만약 헤즈볼라를 쥔 고삐를 놓으면 굉장히 큰 전쟁이 될 것이다. 헤즈볼라의 공격이 시작되면 이스라엘은 이란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것이고, 이란도 맞받아칠 것이다. 미국이 항공모함까지 보낸 건 이런 확전을 피하고 싶어서다."
"이스라엘 정권 안 바뀌면 평화로운 해결 불가능"
-유럽은 '오슬로 협정'을 중재했던 예전과 달리 이스라엘을 지지했는데.
"유럽 내 극단주의 이슬람계 테러가 여기저기 일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국민에게 '이슬람의 테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지원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스라엘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 탄약, 탄환, 미사일, 로켓 등을 얼마나 보충할 수 있느냐인데, 유럽은 이미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무기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인 피해도 예상되는 상황이라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기는 어렵다."
-다른 중재 가능한 국가는 없나. 중국은 어떤가.
"중국도 하마스와 연결고리가 없어 어렵다. 사실 다른 나라도 같은 이유로 중재가 불가능하다. 대부분 국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사이를 중재해 왔을 뿐이다. 하마스와 중재가 가능한 나라는 튀르키예와 이집트 정도다. 그러나 이들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이끌어내긴 현실적으로 힘들다. (나중에) 휴전 국면 땐 중재 역할을 맡을 수 있겠지만, 현 단계에선 이스라엘이 거부할 것이다."
-평화로운 해결은 불가능한가.
"요르단강 서안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가자지구에는 하마스가 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정부를 인정하지 않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공격적 정책을 폈다. 그런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 세력과 연정을 하다 보니 하마스가 통치하지 않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도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 등 강경책을 펴고 있다. 이런 정부가 바뀌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 공존을 하자는 ‘두 국가 해법’은 실현되기 어렵다."
-앞으로 일본은 이 사안에 어떻게 관여할 것으로 보나.
"인도적 지원과 휴전 후 복구를 지원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미 가자지구에 1,0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발표했다. 하마스에 직접 지원할 순 없고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 있는 일본 외무성 대표부를 거점으로 해서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본다."
-한국도 비슷한 형태로 관여하게 될까.
"한국은 군대가 있으므로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휴전 후 이를 감시하는 국제평화유지군이 생긴다거나 하면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이나 한국이나 홀로는 중동 문제에 관여하기 어려우므로 국제적 네트워크를 결성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으면 한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의 무슬림 국가와 연합해서 국제포럼 같은 것을 만들고 중동에 집단적으로 관여하는 길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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