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짜 뉴스 뺨치는 저질 여론조사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국리서치, 한국갤럽 등 34개 여론조사회사가 소속된 한국조사협회(KORA)는 앞으로 정치·선거 여론조사를 할 때 자동응답서비스(ARS)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조사원이 진행하는 전화 면접 조사만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녹음된 목소리나 기계음을 통해 조사한 ARS를 과학적인 조사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또 조사 대상자의 지역, 성별, 연령대 등을 사전에 알고 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 방식의 경우 응답률 10%, 전화번호 임의걸기(RDD) 조사의 경우 응답률 7% 미만의 여론조사는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 통화 중인 조사 대상자에 대한 재접촉도 3회 이상 시도해 정확성을 높이기로 했다.
한국조사협회가 여론조사 기준을 처음으로 만들어 발표해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정치·선거 여론조사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특정 정치인을 띄워 주거나 불리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후, 정파성이 강한 매체들이 이를 인용 보도하는 형태로 확산시키는 게 보편화하다시피 했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9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여심위) 미등록 업체가 취임한 지 반년밖에 안 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관련 조사를 실시, ‘탄핵에 공감’ 응답이 53%로 나오자 좌파 매체들이 ‘윤 대통령 탄핵론 과반, 전 지역·세대서 공감’ 식의 기사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 당시 문제의 여론조사 회사 대표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친민주당 인사였다. 최근엔 민주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해온 방송인 김어준씨가 여론조사 회사를 만들어 등록하기도 했다.
유권자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선거 여론 조사는 일부 협회의 자율 규제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지금 국회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여론조사 관리·감독위를 설치, 문제가 되는 여론조사를 걸러내는 여론조사 관리·감독 법안이 발의돼 있다. 또 선관위 등록 업체만 정치 현안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여야의 정쟁, 과잉 규제를 이유로 계류 중이다.
정파성이 강한 저질 여론조사는 가짜 뉴스 못지않게 우리 사회를 좀먹고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국회의 적극적인 입법을 통해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를 빙자한 여론 조작은 더욱 기승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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