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대한민국 탄생의 기적… 내일은 유엔데이다
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은 유엔 주도하에 전 국민 투표권, 1948년 제헌의회 꾸려
정작 우리는 잊고 있는 세계 민주주의史의 기적이다
직장인들은 매년 말 이듬해 달력을 넘겨보며 ‘빨간 날’을 확인하고 일희일비하지만,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 오래인 필자는 공휴일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 한창 정신없이 일하다 문득 달력을 보고 ‘오늘이 휴일이었구나’라고 깨닫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감각은 때로 반대로 작동하기도 한다. 공휴일이 아닌지 오래되었기에 다들 잊고 있는 국경일 혹은 기념일을 새삼 달력에서 찾아보곤 하는 것이다.
내일, 10월 24일 국제연합일(國際聯合日)도 그런 날이다. 일명 ‘유엔데이’로 통하는 지난 시절의 국경일이다. 한국에만 있는 날은 아니다. 1945년 유엔 창설을 기리는 세계 공통의 기념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각별한 날이다. 우리나라의 탄생과 국제연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되어 남쪽은 미국, 북쪽은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에 들어갔다. 문제는 그 후의 역사적 궤적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한 운동권의 현대사는 우리가 일본의 뒤를 이어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식으로 “납작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국제연합을 통한 국가 창설이라는 초유의 실험을 폄하하는 역사 왜곡일 뿐이다.
스스로의 역사이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이 얼마나 독특했는지 우리는 그 가치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공산주의와 자유 진영의 대립으로 인해 절반으로 나뉜 어떤 피식민 지역이 있다.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처럼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임시정부가 있던 것도 아니다. 일본이 북한 지역에 남겨둔 약간의 산업 자원을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최빈국 수준의 농업 국가다.
그런 나라가 갑자기 온 국민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고 총선거에 돌입했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인 역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그것은 역사 발전의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는 무모한 도전에 지나지 않는다. 20세기의 역사가 그랬다. 산업 기반이 취약한 후진국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도, 그보다 뒤떨어진 농업국 중국의 마오쩌둥도, 모두 자국의 열악한 상황을 핑계로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독재를 정당화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길을 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버거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왕이 다스리던 대한제국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이도 상당수였다. 이런 나라에서 유엔 주도하에 모든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고 총선거를 통해 제헌의회를 꾸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 나라가 태어났다. 국제연합의 도움으로 탄생한 사실상 최초이자 최선의 민주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75년이 흐른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모범적인 민주국가가 되어 있다.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민주주의 역사의 기적이었다.
대한민국과 국제연합의 관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새 나라가 태어난 후 2년을 겨우 넘긴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과 함께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이번에도 대한민국은 국제연합과 함께였다. 남침 개시 직후 안보리 결의를 통해 유엔군 파병이 결정됐고, 16국이 전투병을 보냈으며, 그 외 5국이 의료 등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엔군사령부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수행중이다.
미합중국은 18세기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어 헌법을 만들고 탄생시킨 계몽주의의 나라였다. 대한민국은 20세기의 피식민 백성들이 국제연합의 도움하에 공산주의자들의 방해를 뚫고 평화적인 총선거를 통해 이룩해 낸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다. 인류 역사상 어떤 나라가 그렇게 태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잊고 있는, 어떤 이들은 애써 도외시하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건국 설화인 것이다.
날씨 좋은 10월, 이미 개천절과 한글날이라는 두 공휴일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한 달에 사흘이나 공휴일이면 지나칠 듯하다. 그렇다면 개천절 대신 국제연합일, 유엔데이를 다시 공휴일로 삼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단군의 자손들끼리 모여 사는 민족국가를 넘어, 전 세계인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글로벌 선진 국가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국제연합의 탄생을 국가적 경사로 삼을 자격과 의무가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드리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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