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18] 지하 도시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면적은 남북 45km 동서로 최장 12km이다. 신문 보도에서 이 크기를 접하는 순간 지리산의 면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략적으로 지리산은 동서로 40km, 남북으로 20km 정도 본다. 빨치산이 이 면적 안에서 미군의 지원을 받는 대한민국 군경에 대항하여 몇 년을 버텼다. 지리산 안에는 1000미터가 넘는 산봉우리가 40개쯤 된다. 이 40여 개의 산봉우리들이 만들어낸 골짜기를 보통 ‘아흔아홉골’이라고 부르는데, 이 수많은 골짜기들이 빨치산의 은신처가 되고 엄폐물이 되었다. 몇 년 동안의 전투에서 군경 토벌대와 빨치산 양쪽의 사망자는 토탈 5만명으로 추산한다.
팔레스타인의 가자가 지리산과 다른 점은 1000미터급의 산이 없다는 점이다. 산과 계곡이 없다는 점이 게릴라전을 펼치기에는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 어떻게 숨을 것인가. 은폐와 엄폐. 이 문제를 땅굴로 해결하였다. 지하 30m에 길이는 500km에 달한다고 한다. 가자 지하철로 불린다. 높은 산이 없고 평지나 구릉지대로 이루어진 지형에서는 땅속을 파고 지하로 들어가 적군에 대항하는 전략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튀르키예 중부 지역에 있는 지하 도시 데린쿠유(Derinkuyu)이다. 지하 85m까지 내려가는 깊이에 8층 규모의 지하 공간이다.
필자가 10여 년 전 처음 데린쿠유를 들어가 보았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예배당, 학교 교실, 식당, 마구간, 창고, 와인·식용유 저장고도 있었고, 죄인을 심문하고 벌을 내리는 재판소도 있었다. 환기 시설도 되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지하 통로 곳곳에 지름 2m에 가까운 맷돌처럼 생긴 둥그런 돌문들이 있었다. 유사시에 이 맷돌을 굴려 통로를 막아 버릴 수 있었다. 수용 인원은 1만~2만명 수준. 긴 땅굴로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지하 도시들이 몇 군데 더 있다고 들었다. 이 지역에서 지하 도시의 성립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기원전 7~8세기부터 땅굴을 팠다는 것이다.
전쟁 났을 때 숨는 용도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종교적 박해를 피하는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이 지역이 지질학적으로 돌이 무르다는 점도 땅굴 파기에 유리하였다. 한국처럼 단단한 화강암 암반이면 이렇게 땅굴 못 판다. 돌이 무른 화산암이다. 작은 곡괭이로 파면 쉽게 파 들어갈 수 있는 지질이다. 가자의 땅굴도 3000년 가까운 데린쿠유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그 군사전략적 가치는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중동판 21세기 ‘십승지(十勝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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