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동천일야화] 어쩌면, 하마스의 內心은 지상전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2023. 10.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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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 접경 인근에 장갑차와 탱크 등을 집결시키고 지상작전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0월 7일 새벽 하마스의 공격은 치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마트 펜스를 무력화하며 이스라엘의 삼엄한 감시 정찰망을 뚫었다. 허를 찌르며 직접 침투한 하마스는 대면한 주민들을 사살했다. 인질까지 잡아들였다. 로켓으로만 공격하던 종전 패턴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마스의 도발에 항상 비례를 넘어서는 압도적 보복을 해온 이스라엘이다. 하마스 궤멸은 물론 근거지 가자를 쓸어버리겠노라 나서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이번 피습은 이스라엘에 아팠다. 그렇다면 다음 절차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무차별 폭격 그리고 지상군 투입을 통한 가자 장악이다.

궁금했다. 하마스는 한풀이하듯 한 번 세게 공격하고 궤멸당할 위험을 감수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토록 치밀하게 기습 도발을 준비했다면 이스라엘의 보복전 대비는 더 촘촘하게 해놓았을 것이라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어쩌면 하마스가 내심 바라는 본게임은 가자 지구 지상전일지 모른다. 아직 지상전을 시작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셈법은 복잡할 것이다. 만만치 않다.

그래픽=김성규

첫째, 시가전 공포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급습 후 가자 지구의 복잡한 도심 각처에 진을 치고 있다. 대개 전선(戰線)은 앞에 있는 적과 대치하며 만들어진다. 반면 시가전은 전후좌우 360도가 전선이다. 더욱이 밀집도가 높은 빌딩과 비좁은 골목 사이 어디에 하마스 무장 대원들이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공습으로 인한 잔해가 뒤엉킨 건물 사이를 장갑차로 진입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적 저격수에게 노출되기 십상이다.

건물 수색도 만만치 않다. 과거 이라크 시가전에 투입되었던 미군들은 가가호호 수색 때 방문을 열 때마다 누가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웠다고 한다. 민간인 식별의 어려움도 공포다. 매캐한 포연 속에서 누가 민간인이고 누가 무장 대원인지 알 수 없다. 자칫 민간인을 오인해 사격이라도 한다면 그 트라우마는 오래간다. 시가전은 이토록 어렵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가자에 투입했을 때 시가전의 이 모든 위험 요인을 제대로 챙겨 대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둘째, 비대칭전의 혼란이다. 국가와 비국가 행위자 간 싸움으로 말미암는 어려움을 의미한다. 상대 하마스는 양면적 존재다. 초월적 종교 이념을 신봉하는 무장 집단이자, 권력을 잡으려는 정파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전쟁은 국가 간 싸움이다. 국가는 전쟁 중이라도 국가로서 합리성을 갖는다. 여기에 외교 공간이 있다. 전황에 따라 중재나 타협 여지가 생긴다. 휴전이나 정전 또는 전후 질서 수립이 가능하다. 반면 하마스와 벌이는 싸움은 다르다. 동원된 대원들은 샤히드(순교)를 통해 정의를 이루겠노라 이스라엘과 치를 일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싸우다 전사하는 것도 이들에겐 승리다.

그러면서도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권력 의지도 함께 밝히고 있다. 미국인 인질들을 풀어주면서 호흡 조절도 하고 있다. 마치 극단주의 테러 세력 IS와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 탈레반을 섞어놓은 듯하다. 아예 테러 집단이면 대테러전으로 응징하면 되지만, 일부 주민은 하마스를 정치 권력의 대안이라고 믿고 있기에 더 복잡하고 어려운 싸움이 된다. 하마스가 만에 하나 이스라엘 지상군을 물리치게 되면 팔레스타인의 대안 권력이 되는 것이고, 궤멸 수준으로 패배하더라도 그 자체로 신의 섭리에 순종한 것이라 믿을 것이다. 이스라엘로서는 참으로 고약한 상대다.

10월 22일 가자지구 알 레말 지역의 빌딩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돼 있다./EPA 연합뉴스

셋째는 여론전 우려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지상 작전은 필연적으로 가자 지구 민간인 사상(死傷), 그리고 인질의 위험이 따른다. 공격 초기만 해도 이스라엘 민간인 피해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하마스 비난 여론이 거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공습과 봉쇄에 따른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참상이 전해지면서 여론은 반전되고 있다. 더불어 온갖 확인되지 않은 사건이 상황을 뒤섞고 있다. 알아흘리 병원 폭발 사건이나 하마스의 어린이 참수설 등의 진실 여부는 이미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앞으로 선전전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물론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의 일부 지도자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응에 따른 무고한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피해에 대한 분노는 별개다. 아랍 대중의 반이스라엘 정서는 이미 급등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이 아랍 및 이슬람권 국가들과 공들여 맺어놓은 우호 관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응징이 정의라 믿지만 그 응징으로 오히려 아랍을 적으로 돌리면서 안보의 근간이 흔들릴지 모른다. 이스라엘의 딜레마다.

한편 여론전의 또 다른 위험 요인은 테러리스트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노와 갈등을 산소처럼 여기는 극단주의자들은 이번 하마스의 공격에 귀가 번쩍 뜨였을 것이다. 아랍 대중의 반이스라엘 정서가 더 강해지면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가시화되면 한동안 잠잠했던 IS 등이 다시 고개를 디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일정 시점에 지상 작전을 전개할 것이다. 미증유의 피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면 그 자체로 위기라 믿는다. 다만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분노에 휩쓸리면 더 큰 위기를 맞는다. 대규모 무차별 교전이 지속될 때 누가 제일 고통스러울까? 양쪽의 무고한 주민들이다. 반면 누가 제일 크게 웃을까? 바로 하마스, 헤즈볼라 등 무장 집단, 그리고 피를 좇는 극단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지상군의 투입과 확전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선택은 명확하다. 하마스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차갑고 건조하게 시간을 두고, 테러를 자행한 하마스 인사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파시스트를 자임하며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아예 부정함으로써 이 모든 일의 빌미가 된 일부 이스라엘 극우 각료의 책임도 함께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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