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142] 참나무(The Oak)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3. 10. 23. 03:04
참나무(The Oak)
네 인생을 살아라,
젊거나 늙거나,
저 참나무처럼,
봄날엔 밝게 타오르는
황금빛으로 살다가;
여름엔 풍성하게
그리고; 때가 되면
가을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아
더 진중해진 색조로
다시 황금빛이 되지.
나뭇잎들이
기어이 다 떨어지고
봐라, 그는 서있지
나무의 몸통과 가지
벌거벗은 맨몸의 힘으로.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
테니슨의 ‘참나무’를 처음 읽었을 때, 마지막 행의 “벌거벗은 힘”이 주는 얼얼한 충격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노년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보다니. 어떻게든 늙지 않으려, 늙어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시대, 21세기는 안티-에이징(anti-aging)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하리. 시의 힘이 대단하다. 자연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
테니슨의 ‘참나무’는 힘과 지혜의 상징.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인다고 다 지혜로워지지는 않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 늙으면 당신의 몸통과 가지가 다 드러난다. 잎이 떨어진 맨몸이 그다지 누추하지 않기를 바랄 뿐.
“떡갈나무” “도토리나무” 라고도 불리는 참나무는 단단하여 목재로 쓰인다. 내 방에도 떡갈나무로 만든 서랍장이 있다. 이번 가을에 에든버러에 가서 영국의 오크 나무가 얼마나 우람한지 내 눈으로 보고 싶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조선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