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의대 정원 확대, 베토벤에게 물어보자
의료인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한 삶과 생명에 직결되는 중요한 정책이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 대략 60% 이상의 국민이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원인은 아마도 인력의 부적절한 배치 문제(필수 의료 문제 및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한 한국 의사 수에 대한 이견도 한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정부나 대한의사협회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에 기반해서 적정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난다면 의대 정원 확대에 동의한다. 의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의대 정원 확대를 하더라도 의과대, 인턴·레지던트 그리고 전문의까지는 최소 11~14년이 소요된다. 몇 년 후 미래의 의료 현장에서 오늘의 정책 결정이 미칠 그 과오나 결실을 알 수는 없다.
그동안 국민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최우선 과제는 필수 의료 문제 및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결이다. 필수 의료인력 부족 및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로 인해 응급질환·중증질환을 앓았던 환자 중에서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사들 또한 이러한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의사수가 부족하거나 의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으로 인해 발생한 사회구조적 문제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필수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많지만, 무작정 의사의 사명감만을 강요할 수 없다.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로 인한 의료 소송 부담감 ▷응급 및 중증 환자를 맡는 과도한 업무 부담 ▷다른 과에 비해 낮은 의료수가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필수 의료 문제 해결방안으로 의사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계는 보상이 낮은 수술· 위험한 수술 등에 수가 인상 등의 과감한 수가 개선 및 의료사고로 발생하는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를 위한 ‘필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제안한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결은 국민권익위원회 조사 결과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중심이 된 지방공공의료기관 설립 및 기능 강화,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지역 가산수가 도입 등이 있었다. 정부와 의료정책 당국은 이러한 국민과 의료현장의 소리를 잘 경청해야 한다.
의사 수에 대한 이견과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을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한의사를 포함)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었다. 미국이 2.7명, 일본이 2.6명 수준이었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의사수가 OECD 평균에 비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일본과 비교한 결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구밀도 대비당 의사수가 많기 때문에 손쉽게 의사를 만날 수 있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의료 접근성은 뛰어나다. 하지만 대형병원에서의 주요 질환 치료 및 수술대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접근성 문제는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해결방안과 함께 중증도에 따른 1차, 2차, 3차 병원 간 기능과 역할을 달리해서 개선해야 한다.
관점의 차이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 현 한국 사회에 베토벤의 열정이 생각난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가는 도중 과연 어떻게 곡을 썼을까? 나팔형 보청기(ear trumpet)나 피아노 위에 올리는 공명기 등의 청각 보조기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방법은 뼛속 깊은 곳에서 진동을 감지하는 방법으로 입에 막대기를 물고 그 막대기 끝을 피아노 공명판 위에 대어 피아노에서 나는 미세한 음의 진동 차이로 소리를 구분해 작곡했다고 한다.
대화를 통해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의사인력전문위원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서로 존중하며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 베토벤이 작곡을 위해 그토록 간절하게 느끼고자 했던 피아노의 진동처럼 서로의 머리를 맞대어 뼛속 깊이 진정한 마음의 진동을 느낄 정도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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