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약전을 집필하며 배운 것
지난 14일 부산 남포문고 문화홀에서 부산문화재단이 공모한 ‘2023년도 부산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의 일환으로 학술세미나 ‘흰샘 이규정의 문학세계’가 열렸다. 고(故) 이규정 소설가는 1997년 월간 ‘시문학’에 ‘부처님의 멀미’로 등단한 이래 2018년 타계할 때까지 장단 이십여 권에 달하는 소설을 집필했으며, 각종 산문집과 문학연구서 등을 펴냈다. 선생이 이룩한 성취에 비해 작가의 삶과 미학에 관한 연구는 일천하다시피 한 시점에서 이날의 세미나는 후속 연구와 비평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할 만했다. 필자는 ‘이규정 단편소설의 현실인식과 작가의식’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문의 말미에 필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W. B. 예이츠의 시구를 빌려와 ‘말년의 양식’이라는 특질로 선생의 작품을 톺아 읽어나가는 연구에 대하여 질의했다. 현로한 노인의 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 대한 대시인의 탄식을 떠올렸던 것은 왜일까. 세대 간 고립과 단절 속에서 왜곡된 사고와 판단을 하는 자들이 바로 현실의 뭇 노인들이 아닌가. 가짜뉴스에 쉽게 현혹되고, 나아가 비식별적으로 이를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는 그들을 존경하기란 얼마나 어려우냐 말이다. 가만, 이리 급발진하는 필자의 일반화는 대체 어디서부터 비롯한 것일까. 혹 저들이 일군 역사와 현실에 기거하면서도 당면한 생활을 꾸려가는 데에만 골몰했던 스스로의 부채감이 아닐까.
지난봄부터 이어진 아카이빙 연구는 한 작가의 전 생에 걸친 방대한 활동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성취와 업적을 훑고 정리하는 데에 필자를 포함한 네 사람의 소설가와 평론가 세 사람이 힘을 모았다. 앞서 밝힌 네 편의 연구논문과 인터뷰 회고 글 연보 저작물 목록 등에 미완결 연재소설의 소개까지 덧붙이는 작업이었다. 그 가운데 필자는 선생의 생애사를 A4 스무 장 분량의 약전으로 써내는 일을 맡았다.
어느 하루의 일기를 쓴대도 범상한 일상으로부터 불쑥 밀려 나오는 순간이 있는데, 팔순 넘은 인생은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수놓고 있으랴. 더욱이 필자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기 전까지 선생을 알지도 못했다.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움으로 전환되기까지는 몇 계절을 건너야 했다. 부단히 창작에 매진해 온 소설가이자, 뭉근한 열도로 사회개조에 힘써온 시민사회의 스승이었으며, 교리에 순명하는 신앙인이었던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갖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했다.
다양한 시간과 자리를 지나온 삶에 대한 경외심은 곧 필자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 적어도 소설을 쓰겠다는 자가 자기성찰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혐오가 쉬운 세계에서 나태한 판단에 젖어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 것이다. 노인을 위하지 않는 나라에서 과연 나는 노인이 되도록 살더라도 어떤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 무엇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똬리를 트는 의심이 나를 골탕 먹이기 시작했다. 연구팀에는 선생과 부산문단의 선후배로 연이 있는 소설가도 있었고 심지어 선생의 문학수업을 수강했던 제자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50년 가까이 연상인 당신을 모른다 주저하고만 있던 필자는 얼마나 자격이 없는가! 그 같은 볼품 없는 마음의 형(形)이 더 이지러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이란, 선생이 남긴 거의 모든 글을 읽어내는 것 뿐. 여름을 지나는 동안 약전의 글감이라고 옮긴 메모가 A4 80여 장이었다.
이를 허락된 분량 안으로 서사를 꿰어내는 작업은 정제의 연속이었고 선택의 과정은 의심과 싸움이었다. 무엇 하나 쉬 빠뜨려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쓰는 자의 알량한 권능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과정보다 비워내는 것이 어렵다는 배움은 혹독한 시간을 요구했다.
죽어서도 무언가 일러주는 존재가 있다더니…. 부재로 나의 몽매를 일깨우시는 흰샘이시여…, 나는 연방 사죄를 올린 끝에 약전 집필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필자만 빼고 익히 아시는 바겠으나, 편년체로 써내려간 약전에는 선생의 웅숭깊은 세월의 일부만이 담겨있다. 딴에 필자가 깜냥 이상으로 무언가 발견했거나 포착하였더라도 이는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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