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잇몸으로 버티는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부가 재외 공관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대사관·영사관·대표부를 합해 총 167개 공관이 설치돼 있는데 이걸 30~40개 정도 늘려 태평양 도서국 등 미답(未踏)의 영역까지 모두 커버하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대표 브랜드인 이른바 ‘글로벌 중추 국가’의 일환이기도 하다. 대사관이 많이 생기면 대사 자리도 그만큼 늘어날 테니 커리어 외교관들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인력은 그대로이니 대사 한 사람만 근무하는 초미니 1인 공관이 양산될지 모른다”는 푸념을 들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외무공무원 숫자는 총 2574명. 전 세계 10위권이지만 지난 16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 증가할 때 600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한다. 미국(7만6665명)까지 안 가더라도 영국·프랑스·독일 등 G7(7국) 국가들의 외교부 정원은 1만명이 넘는다. 일본은 “인도·태평양 외교를 강화하겠다”며 2030년까지 전문직 위주로 증원해 외무성 직원을 6000명에서 8000명으로 확대한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외교 인력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역대 모든 정부가 추진했지만 연기만 피우고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미·중·일·러 ‘4강 외교’만 잘해도 본전은 뽑았던 한국 외교의 지평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대됐다. 지구 반대편 남의 일 같았던 나토(NATO) 정상회의에 우리 대통령이 초청받고 태평양도서국과도 안방에서 정상 외교를 한다. 내년에는 민주주의 정상회의(3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5월)같이 처음 해보는 대형 이벤트도 예정돼있다. 한 국장급 간부는 “국력은 신장됐고 국민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솔직히 걱정된다”고 했다.
외교부가 떠들석하게 홍보한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24~2025)만 하더라도 한동안 각 부서에서 차출된 인력들이 본업은 본업대로 하면서 ‘사이드 잡’으로 수임(受任) 준비를 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거버넌스, 사이버 안보 등 우리가 국제사회에 호기롭게 던진 어젠다들은 빚처럼 쌓여가고 있다. 외교에서 말과 행동의 간극이 벌어지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차제에 형평성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인사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근무하면 무조건 아프리카에서 ‘의무 복무’를 해야 하고, 같은 공관에 부임한 부부 외교관이 특혜 소리 듣지 않기 위해 한 사람은 울며 겨자 먹기로 휴직하는 관행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나. ‘험지’라 불리는 나라에 아무도 가겠다고 손을 들지 않는 건 합당한 보상이나 그 지역에 특화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는 커리어 패스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 경쟁 시대라면서 두 나라 모두에 능통한 스윙맨을 키워보겠단 인사 철학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이빨 없이 잇몸으로만 버티기엔 ‘글로벌 중추 국가’라는 슬로건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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