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신촌의 추억 간직한 커피숍[레거시 in 서울]

이소정 기자 2023. 10.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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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의 한 골목길.

시끌벅적한 거리 한편에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한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신촌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빨간 체크 무늬 탁자보.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한 이곳은 1975년 문을 열고 50년 가까이 운영돼 온 '카페 미네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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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카페 미네르바
반세기 가깝게 자리 지킨 신촌 카페… 주인 바뀌었지만 내부 분위기는 여전
증기압으로 추출 사이펀 커피 고수
“자녀와 함께 와 추억 공유하는 부모도”
19일 서울 서대문구 카페 미네르바에서 현인선 대표가 가게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1975년 운영을 시작한 미네르바는 반세기 가까이 한자리에서 과거 신촌 대학가의 분위기를 간직한 채 운영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의 한 골목길.

시끌벅적한 거리 한편에 1970년대 모습을 간직한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원두커피 전문점’이란 문구를 뒤로하고 입구에서 2층으로 올라가니 계단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신촌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빨간 체크 무늬 탁자보….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한 이곳은 1975년 문을 열고 50년 가까이 운영돼 온 ‘카페 미네르바’다.

● 1970년대 대학가 분위기

카페 미네르바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내부는 반세기 전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5년 “개업 후 같은 장소에서 계속 운영되는 커피전문점으로 1970년대 신촌 대학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보존 가치가 있다”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현인선 카페 미네르바 대표(61)는 취재를 위해 왔다고 하자 대표 메뉴인 ‘사이펀 커피’ 내릴 준비를 했다. 사이펀은 진공압력 방식의 커피 추출 기구인데, 이를 활용해 커피를 추출할 경우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이 잘 살아난다.

현 대표는 알코올 램프에 불을 붙이고 사이펀에 곱게 간 코스타리카 원두를 부었다. 또 잘 우러날 수 있도록 나무 막대를 들고 원두 가루를 조심스레 저었다. 현 대표는 “미네르바만의 분위기와 커피 맛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0년 카페를 인수한 현 대표는 “당시 신촌 현대백화점 주변에서 커피 가게를 운영하다가 미네르바에 우연히 들른 후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매료됐다”며 “당시 가게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는 대표에게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고 4개월을 기다려 인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즐비한 대학가에서 살아남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 대표는 힘들 때마다 커피전문점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새기며 극복했다. 처음 가게를 인수할 때만 해도 술을 팔았지만 지금은 커피에만 집중하는 것도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커피 중에서도 특히 사이펀 커피에 집중했다. 원두를 6가지 이상 준비하고, 손님들이 직접 원하는 원두를 선택하게 했다. 현 대표는 “조금 느리고 번거롭더라도 사이펀으로 커피를 내리는 건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장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 “좋은 사람과 다시 오고 싶은 곳”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킨 카페 미네르바는 이제 ‘추억이 담긴 공간’이 됐다. 20대 여성이 “엄마가 대학 시절 일한 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인근 연세대에 입학한 아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러 온 중년 아버지도 있었다. 현 대표는 “소품 하나를 살 때도 이 공간에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했다.

다만 카페 미네르바가 계속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건물주가 지금의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현 대표는 “외국은 지방자치단체나 지역사회가 100년 가게를 키우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다”라면서도 “앞으로도 가능한 한 오래 자리를 지키며 ‘좋은 사람과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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