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갚지 못한 오만원

경기일보 2023. 10. 2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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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렬 한의학 박사

작년 말 향년 90세를 일기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고단한 삶의 무게에서 자식들을 위해 부단하게 몸부림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평생 모시고 살아서인지 나를 부르는 듯한 어머니의 환청이 들리고, 안방에서 금방 나오실 것만 같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1년 전부터 기억력이 감소하는 것 같았으며 약간의 치매 초기 증상도 보였다. 병원에서는 나이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어머니에게 돈을 꾸자는 것이었다. 돈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어머니의 기억력을 체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싶었다.

어머니에게 돈을 꿔 언제 주겠다고 약속하고 기억을 하시면 10만원을 갚는 식이다. 어머니는 꼬박꼬박 기억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안방에 들어가셨는데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다급하게 아내와 방문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쓰러져 계셨다. 중풍으로 의심되는 모습이어서 곧바로 병원으로 모셨는데 뇌경색으로 왼쪽 마비가 왔다.

3시간 동안 수술이 진행됐지만 담당 의사는 더 이상의 수술은 무의미하다며 결단을 하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꿔준 5만원을 기억하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서 6개월 만에 코로나로 인해 가족의 임종도 없이 쓸쓸하게 혼자서 돌아가셨다.

장례 절차를 위해 인수된 어머니의 모습은 그래도 평온하게 보였다.

어머니의 볼에 나의 볼을 문지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직도 어머니의 볼은 따듯했다. 우리 가족은 한없이 오열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묻히셨다. 생전에 두 분은 하루가 멀다고 싸웠지만 이제는 자식들을 위해 다정하게 지내실 것으로 믿으며, 우리의 소망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어머니에게 꾼 5만원을 갚지 못했다. 아니 영원히 갚지 못할 것 같다. 사후에 어머니를 만나더라도 돈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잘해드린 게 없는 것이 너무나 한스럽다.

자식은 언제나 후회 속에서 산다는 옛말을 이제야 깨치니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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