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트럼프 아닌 제3후보, 30년 만에 사고치나 [UPDATE 2024]
안녕하세요. 대선이 1년 넘게 남았지만 미국은 벌써 ‘선거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 선거가 한국의 안보와 정치·경제·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피부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격주로 뉴스레터를 연재하며 지면 제약으로 다루지 못한 대선 관련 심층 뉴스를 전달드리고, 나중에는 선거 실황도 중계합니다. 뉴스레터 구독만으로 대선과 미국 정치의 ‘플러스 알파’를 잘 정리된 형태로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번째 시간인 오늘의 주제는 30년 만에 등장한 위력적인 제3후보, 무소속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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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 각각 진보·보수층에서 가장 선호하는 방송인 MSNBC·폭스뉴스 화면이 반복돼 등장합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헐뜯고, 싸우고, 소리 지르고…. 말미에 등장한 한 남성이 이렇게 외칩니다. “나도 이제 정말로 지긋지긋(fed up)합니다. 그래서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가보려고 해요!” 이달 9일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1954년생 대선 후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첫 선거 캠페인 TV 광고입니다.
미국만큼 민주·공화당 양당의 기득권이 확고한 나라도 없습니다. 매년 예산안을 적시에 처리 못해 신용 등급이 강등을 당하고,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상이 어지러운데 의회 내 분열로 서열 3위인 하원의장조차 선출하지 못하고 군 장성 수백 명이 인준을 기다리는 나라. “미 유권자들이 당파성(partisanship)에 이골이 났다”는 건 이제 뉴스(news) 거리도 아닌데요. 이상하게도 대통령 선거에선 ‘제3지대’라 표현할 만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1992년 대선 당시 19%를 득표한 기업인 로스 페로(1930~2019) 이후 지난 30년 동안 뚜렷한 인상을 남긴 무소속 주자를 찾아보기 힘들었죠.
그런데 올해 4월부터 대선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이른바 ‘RFJ’가 이런 구도에 틈을 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92년 페로 이후 가장 강력한 무소속 후보가 될 채비를 갖췄다”고 했는데요. 우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주 진영의 최고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가(家) 사람입니다.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요르단계 이민자 총격을 받고 피살된 로버트 F. 케네디의 아들이에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존 F. 케네디의 동생인데 형이 대통령일 때 법무장관을 지냈죠) 그러면서도 이력을 보면 환경 변호사, 반(反)백신주의자이자 ‘코로나 음모론자’로 활동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요. 아직은 미풍에 불과하지만 보수·진보 모두 주판알을 튕기고 있습니다. “대선 판을 흔들어보겠다(spoil)”는 이 후보가 완주할 경우 자당에 유리한지 불리한 지 그 득실을 말이죠.
RFJ의 출마를 놓고 가문 안에서도 격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RFJ 쪽 집안이 7남 4녀로 케네디 집안 중에서도 형제·자매 숫자가 독보적으로 많은데요. RFJ의 형인 크리스 케네디는 언론에 “진솔한 생각을 교환하는 왕성한 가족 대화(robust intra-family dialogue)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일부 케네디가 일원은 문자도 보내고 심지어 줌(zoom)으로 화상 미팅까지 하며 무소속 출마를 만류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생각은 각자 다른 것 같습니다. 형인 크리스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대통령 트럼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민주당 후보로 뛰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어요.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코로나 음모론을 주장온 RFJ가 강경 보수 유권자들에게 소구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는 거죠. 반면 여동생인 로리를 비롯해 케리 등은 공개적으로 성명을 내고 “그의 출마를 비판한다” “우리나라에 위험이 된다”라고 했어요. 안 그래도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이 ‘고령 리스크’로 위태위태한데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면 민주당 표를 잠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겁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제3후보론’이 있어왔어요. 뉴욕시장으로 인기가 상당했던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 ‘스타벅스 제국’을 일군 하워드 슐츠 전 회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신선함을 앞세워 한때 대권까지 엿봤지만 표 잠식 우려와 후원금 부족 등을 이유로 번번이 낙마하고 말았죠. ‘쩐의 전쟁’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선거에선 무소속 후보가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는 일부터가 만만치 않습니다. ‘투표용지 접근(Ballot Access)’이란 절차가 있어 주마다 각각 유권자 서명을 받아 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데요. 가장 많은 선거인단 걸려있는 캘리포니아주는 무려 20만명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전국위원회(RNC·DNC)가 있고 당원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는 거대 정당과 달리 무소속 후보는 만만치 않은 일이죠. 여기에 무소속 후보가 주목이라도 받는가 싶으면 표 잠식을 우려한 거대 정당이 나서서 서명의 유효성 등을 문제 삼으며 법적 시비를 끊임없이 걸어옵니다. 2004년 대선 당시 0.38%를 득표해 3위에 오른 랄프 네이더 후보 캠프의 한 활동가는 “매주 양 정당이 주마다 걸어온 법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야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현재까지 무소속 후보로서의 RFJ 페이스는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지 6시간 만에 그를 지지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 ‘아메리칸 밸류 2024′가 150억원 가까이 모금했고요. 지난달 말 선거관리위원회(FEC)에 보고된 걸 보면 600만 달러의 현금을 들고 있는데 지난 3개월 동안 900만 달러를 모아 700만 달러를 사용했어요. 미 언론들은 “쓸어 담아서 태워버렸다”고 표현하는데 무소속 후보로의 체급을 생각하면 벌만큼 벌어서 쓸만큼 쓰고 있다는 거겠죠. (지지자들의 후원에 감읍한 나머지 절벽에서 360도 돌아 다이빙을 하기도 합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향해 “이 게임에 동참하라”며 지지를 요청한 RFJ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10%대 지지율도 기록했습니다. 1992년 페로 이후 대선후보 토론회에 무소속 후보가 등장한 적이 없는데요, 지난 2020년 대선 때 본선 토론회에 출연할 수 있는 ‘커트라인’은 15% 였습니다. RFJ의 TV 토론 등장이 성사된다면 그것 자체로 파장이 적지 않겠죠. 더군다나 선거에 임박해 양당이 결집하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텐데 경우에 따라 바이든·트럼프가 RFJ에게 읍소·구애하는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네요. 미 대선판에 30년 만에 얘기가 될 만한(?) 무소속 후보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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