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의 각오로 타는 ‘날아다니는 관’[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조국의 영공을 목숨으로 지켜가는 공군 장병들의 열화 같은 애국심을 따라 배우자’는 제목의 기사는 “오직 당중앙 결사옹위의 항로만을 나는 공군 장병들의 결사의 각오와 실천이야말로 누구나 본받아야 할 참다운 애국의 귀감”이라고 치켜세웠다.
북한 공군의 최신 전투기는 1980년대 중반 생산된 미그-29로 불과 10여 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1967년 전력화된 미그-23이 40여 대, 1959년 전력화된 미그-21이 120여 대인데 이 중 몇 대나 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머지는 비행기라고 해야 할지조차 민망한 고물들이다.
북한 공군의 주력인 미그-21은 ‘환갑’이 지난 비행기다. 1950년대에 전력화된 비행기가 주력인 공군은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그나마 인도가 올해 초까지 31개 비행대대 중 3개 대대가 미그-21 50대를 운용했지만 지금은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인도가 미그-21을 운용한 것은 소련에서 기술을 이전받은 생산 공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품 조달 및 수리가 가능한 공장까지 갖고 있음에도 인도에서 미그-21은 ‘날아다니는 관’이라고 불렸다.
인도 신문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400대 이상의 미그-21이 각종 사고로 추락했고, 약 200명의 조종사가 숨졌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반 동안 격추된 전투기 수보다 더 많이 추락하고, 더 많은 조종사를 죽게 한 것이 인도의 미그-21이다. 생산 공장이 없는 북한은 인도보다 사정이 더 나쁠 것이다. 인도가 미그-21 운용을 중단하면서 이제 북한 조종사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관’을 타게 됐다.
사고 사례는 노동신문 기사에도 묘사된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포토숍 복사 붙이기 기능까지 동원해 150대가 떴다고 과장선전한 대규모 항공공격종합훈련에서 이륙 후 고장이 난 비행기가 있었다고 한다. 비행사는 귀대 명령을 거부하고 명령을 관철하기 전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 그대로 날아가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 비행사를 결사의 각오를 가진 귀감이라 내세웠지만 그의 생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투기는 개발 시기가 20년 정도 차이만 나도 학살 수준의 격차가 벌어진다. 당장 북한 조종사들부터 1947년에 생산돼 아직도 북한에서 운용 중인 미그-15로 1967년에 생산된 미그-23과 전투를 하라고 하면 “미쳤냐”는 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몇 세대 이상의 격차를 가진 한미 공군과 싸워 이긴다고 큰소리를 친다. 북한이 침투용으로 운용하는 AN-2기는 개발된 지 75년이 지났고, 특수부대 12명을 태우면 시속 150㎞도 나지 않는다. 이걸 타고 북한은 유사시 남쪽 곳곳을 기습 점령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아무리 열심히 결사의 각오를 주문해도 군인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북한군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장마당 세대’가 주력이 됐다. 국가의 혜택이란 걸 받아 보지 못한 이들이 김정은을 위해 진심으로 결사의 각오를 가질까.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침 어제까지 서울공항에선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가 열렸다. KF-21, F-35A, E-737 등 65대의 최신 항공기와 전차, 자주포 등 한미 연합군의 핵심 자산들이 전시됐다. 북한군에 전시회 영상을 보여준다면 없었던 결사의 각오도 진심으로 생기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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