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조 가치 ‘도시광산’ 채굴, 비배터리 기업도 잇달아 진출[인사이드&인사이트]

홍석호 산업1부 기자 2023. 10. 2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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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전망 분석
《“지금까지는 ‘배터리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다면, 앞으론 ‘다 쓴 배터리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큰 관심사가 될 겁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들이 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뛰어든 배경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이 다하기 시작하는 2025∼2027년 본격적으로 성장할 폐배터리 시장을 놓고 기업들이 선점 경쟁에 나섰다. ‘도시광산’이라고도 불리는 폐배터리에서 고가의 희귀광물을 다시 채굴해 재활용하는 사업은 분명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무슨 배터리를, 어떤 기술로 다시 쓸지 불투명하다. 폐배터리 회수, 보관, 평가, 재활용·재사용, 폐기 등 전 과정을 아우르는 규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정부와 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다.》




22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GS, 두산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다.
홍석호 산업1부 기자
완성차 업체들과 함께 전기차 시대를 주도 중인 ‘K배터리’ 3사는 국내외 파트너들과 손을 잡고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라이사이클, 중국에서 화유코발트와 손잡고 폐배터리 재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선 오창 에너지플랜트, 제주월드컵경기장 등에 폐배터리를 활용한 전기차 인프라를 구축했다.

삼성SDI는 2019년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공정 스크랩(부스러기)에서 코발트, 니켈, 리튬 등을 회수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폐배터리 전문 기업 성일하이텍의 지분 8.73%도 확보했다.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은 성일하이텍과 합작법인(JV)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일하이텍의 코발트, 니켈, 망간 회수 기술에 자체 개발한 수산화리튬 회수 기술을 더할 계획이다.

비(非)배터리사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현대글로비스가 세계 곳곳의 폐차장 등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를 수거·운반해 오면 현대차가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하거나 현대모비스가 중고 배터리 등으로 다시 제조한다.

포스코와 GS는 합작법인 포스코GS에코머티리얼즈를 세워 폐배터리에서 금속을 회수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향후 배터리 진단, 평가, 재사용 등을 아우르는 배터리 생애주기 데이터 활용 서비스(BaaS) 사업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자회사 두산리사이클솔루션을 세워 2025년 하반기(7∼12월) 본격적으로 리튬 회수에 나설 예정이다.

글로벌 경쟁도 치열하다. 테슬라는 미국 네바다, 중국 상하이에서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배터리 원자재 회수율을 60%에서 95%로 늘리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중국 CATL은 배터리 밸류체인(가치사슬) 전체를 포괄하는 배터리 제조 산업단지를 구축 중인데, 폐배터리 재활용도 포함돼 있다. 스웨덴 노스볼트도 리튬, 니켈, 망간 등을 재활용할 수 있는 유럽 최대 공장을 구축했다.

● 2040년 236조 원 전망 폐배터리 시장

기업들이 너도나도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확실한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전기차 폐차는 56만 대, 폐배터리는 44GWh(기가와트시)로 예상된다. 2030년에는 폐차 411만 대, 폐배터리는 338GWh로 5년 만에 8배 가까이로 늘어난다. 2040년에는 폐차 4227만 대, 폐배터리 3339GWh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규모도 2030년 535억6900만 달러(약 73조 원)에서 2040년 1741억2000만 달러(약 236조 원)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용 후 배터리는 재사용(Reuse) 혹은 재활용(Recycle)을 통해 다시 쓸 수 있다. 성능이 70% 이하로 떨어져 주행 거리가 줄고 충전 속도가 느려진 배터리는 전기차에는 쓸 수 없지만 전기차 충전소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는 쓸 수 있다. 이렇게 다시 쓰는 경우는 재사용이다.

재사용하기도 어려운 폐배터리를 해체해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희귀 금속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재활용에 해당한다. 리튬이온배터리를 방전시킨 뒤 물리적으로 잘게 쪼개 건식 혹은 습식으로 원료를 추출한다. 한국 배터리 3사의 주력 제품인 삼원계(NCM) 배터리에 쓰이는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재활용이 새로운 공급원이 될 수 있다.

탄소를 줄이는 데도 배터리 재활용이 도움이 된다. 배터리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20%는 셀 제조 단계, 80%는 원료·소재 단계에서 나온다. 대표 원료인 리튬은 소금호수에서 채굴한 뒤 18∼24개월 동안 수분을 증발시켜 나온 추출물에서 생산한다. 리튬 1kg을 생산하는 데 2200L의 소금물이 필요하다. 코발트, 니켈 등은 중국이 공급망을 쥐고 있는데 탄소발자국(생산·소비 전체 과정에서 발생된 온실가스의 총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중국의 자원무기화도 우려돼 한국 입장에선 배터리 재활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유럽연합(EU)은 리튬, 코발트 등의 재활용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6월 유럽의회는 시행 8년 뒤 코발트 16%, 납 85%, 리튬과 니켈은 6%를 재활용하도록 하는 새 배터리법을 통과시켰다. EU는 점차 재활용 비율을 높일 계획이다.

● 승자 예측이 불가능한 시장

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뛰어든 경쟁자는 많지만 승자가 누구일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전처리(폐배터리 선별 및 분리, 방전, 파쇄 및 건조 등) 과정, 후처리 등에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확실한 효율과 경제성을 가진 기술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습식제련 과정에서 ‘선택적 분리’ 과정이 가장 난도가 높은 기술인데 용매추출법, 침전법, 흡착법, 전기화학법 등 다양한 기술이 경합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인 배터리 공급 전쟁의 결과도 변수다. CATL 등은 주력으로 제조하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약점인 ‘약한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배터리 제조 단계에서 모듈을 건너뛴 ‘셀 투 팩’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LFP 배터리의 경우 원재료 가격이 저렴한 탓에 재활용할 유인이 떨어진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이달 중순 기준 NCM 배터리의 주재료인 코발트(t당 3만2975달러)나 망간(t당 1195달러) 대비 LFP 배터리의 주재료인 철광석(t당 116달러)이 훨씬 저렴하다. LFP 배터리의 경우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비용보다 새로 구입하는 비용이 더 쌀 수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도 LFP 배터리 생산 설비를 늘리는 상황에서 향후 LFP 배터리가 대세로 자리 잡는다면 재사용·재활용 산업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 쓴 전기차 배터리의 소유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도 변수다. 한국의 경우 2020년 12월까지 보조금을 받아 구입한 전기차라면 지방자치단체가 소유권을 가진다. 그 이후부터는 전기차 소유주가 권리를 가진다. 만약 보조금을 받지 않고 전기차를 구입했다면 2020년 12월 이전에 구입한 차량이더라도 전기차 소유주가 갖고 있다.

재활용이 본격화될 시점에 소유권을 둘러싼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지자체에 폐배터리를 반납할 때 한국환경공단 주도로 성능 검사를 진행한 뒤 전문 업체나 연구기관에 넘기는 방식으로 재사용·재활용이 진행된다. 향후 구체적인 폐배터리 수거 규정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개별 폐차장에 방치되는 배터리가 쌓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현재 폐배터리 성능 평가에 10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점, 사용 후 배터리에 대한 안전성 검증 기준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 재사용·재활용의 구체적 기준이 미비하다는 점 등도 기술 및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홍석호 산업1부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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