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워싱턴의 북한 인권

박영준 2023. 10. 2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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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탈출기 담은 영화 ‘비욘드…’
美 전역 상영 예정… 뜨거운 관심
탈북민 강제북송도 美단체 제기
尹정부 대응 미흡… ‘행동’ 나서야

“한국보다 미국에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 놀랍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실제 탈북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의 시사회가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렸다.

영화에는 10년 전 탈북한 뒤 북한에 있는 아들을 탈북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탈북민 이소연씨의 분투도 담겼다. 이씨는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놀랍다고 했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여부로 세계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던 월요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진행된 영화 시사회에 대한 관심은 놀라웠다. 160석의 관객석은 일찌감치 가득 찼고, 북한 문제를 담당했던 미 행정부 전직 고위 당국자부터 미 국무부 한국 담당과장, 전직 주한 미국대사, 미 싱크탱크 한반도 전문가 등이 대거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1시간55분 동안 숨을 죽이고 북한 주민들의 탈북 과정을 지켜봤다.

기자 앞에 앉은 금발의 노부부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탈북민들의 사연에 쉴새 없이 눈물을 닦아 냈다. 영화가 끝나자 장내에는 한참 동안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국무부 한국담당 과장은 기자에게 “영화가 놀라웠다”면서 “북한의 상황이 너무나 비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은 북한 인권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의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은 8월31일 본지에 보낸 긴급 메일에서 8월29일 중국 단둥에서 탈북민을 태운 버스 두 대가 북한 신의주로 향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있는 탈북민에 대한 강제 북송이 시작됐다는 첫 번째 소식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경을 걸어 잠갔던 북한이 8월27일, 3년7개월 만에 외국에 체류하던 북한 주민들의 귀국을 공식 승인하며 국경을 개방한 지 이틀 만에 중국에 수감된 탈북민이 송환된 것이다.

북한 국경 개방 시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실제 강제 북송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처음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워싱턴의 북한 인권단체였다. 단체의 수잰 숄티 대표는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강제 북송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중국이 600명에 달하는 탈북민을 강제 북송시켰다는 소식을 포함해 탈북민 강제 북송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난 16일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공식 취임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북한 인권 회의 개최를 요청했고, 2017년 이후 6년 만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안보리 공개회의가 열렸다. 미국 정부가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대중 견제를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인권 문제를 눈감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실제 문제만 제기할 뿐 행동으로는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만큼 인권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나라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는 지난 1월 미국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이달 초에는 미국 우드스톡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 등을 수상했다. 오는 23일부터 미 전역 600여곳에서 상영이 될 만큼 관심이 높다. 탈북민 이소연씨는 기자에게 “한국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보수이고, 그렇지 않으면 진보라는 식으로 정치적 문제가 돼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대응이 바뀐다”면서 “미국에서는 인권의 문제에만 중심을 두고 공감대가 만들어진다는 부분이 한국과 많이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북한 인권 문제 해결을 주요 과제로 내세운 윤석열정부가 탈북민 강제 북송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많게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탈북민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는 미 북한인권단체의 이메일에는 항상 ‘ACTA NON VERBA!’라는 라틴어 문구가 포함된다. ‘말보다 행동으로’라는 뜻이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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