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사라진 학교… 운동도 학원 사교육 [심층기획-체육교육 살리자]
교사 따라 체육수업 질·양 들쭉날쭉… “신체활동 보장돼야”
11∼17세 94% 운동 부족… 세계 최고
초1·2는 별도 수업 없어 사교육 보충
아이들 운동장 수업 달랑 주1회 많아
초1·2 ‘즐거운생활’ 과목에 통합 교육
정해진 체육 시수 없어 학급마다 격차
2020년 체육전담교사 배치율 68% 그쳐
초등생 사교육 68% 예체능분야 차지
학부모 “학교에만 맡기면 운동 부족”
가정 경제력 따라 수영 등 조기 교육
“체력도 빈익빈 부익부” 자조 목소리 상>
경기의 한 초등학교 3학년 A군은 목요일을 제일 좋아한다. 유일하게 운동장에 나가 체육수업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A군의 반은 일주일에 체육 시간이 두 번이지만, 하루는 대부분 교실에서 수업한다. 땀을 흘리며 숨이 차게 ‘뛰는’ 수업만 체육이라 생각하는 A군의 소원은 밖에 나가는 날이 하루 더 늘어나는 것이다.
‘매일 평균 60분 이상 중간∼격렬한 강도의 신체활동’, ‘근력·뼈 강화 운동 포함한 격렬한 운동 주 3회 이상’.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5∼17세 운동 권장량이다. 하지만 한국 아동·청소년 중 권장 운동량을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9년 WHO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11∼17세 중 권장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비율은 94.2%로 세계 146개국(평균 81%) 중 가장 높았다. 운동 부족 비율이 90% 이상인 곳은 한국 외에 필리핀(93.4%), 캄보디아(91.6%), 수단(90.3%)뿐이었다. 통상 국가 소득 수준이 높으면 청소년 신체활동이 늘지만, 한국은 소득 수준이 높으면서도 신체활동이 적은 특이 사례로 꼽혔다.
같은 해 발표된 ‘2018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청소년의 읽기·수학·과학 능력은 세계 79개국 중 5∼11위를 기록했다. 읽기 영역은 6∼11위였음에도 ‘역대 최저 순위’라며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고, 교육 당국은 우수 국가의 교육정책을 참고하고 순위 하락 원인을 분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꼴찌’인 운동량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만약 한국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가 세계 꼴찌 수준이었다면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라며 “운동 부족도 심각한 문제인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아동·청소년 발달은 학업에만 치우친 기형적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3∼6학년의 체육 시간은 연간 102시수다. 3·4학년이 총 1972시수, 5·6학년이 2176시수란 점을 고려하면 체육이 교육과정의 9∼10%를 차지하는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일주일에 2·3회 체육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A군 사례처럼 교실에서 이론 수업 등을 진행하는 곳도 많아 ‘중간∼격렬한 강도’의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나마 체육 수업 시간이 확보되는 것도 3학년부터다. 초 1·2학년은 40년째 음악·미술·체육이 ‘즐거운생활’ 과목으로 통합돼있다. 즐거운생활은 1학년 180시수, 2학년 204시수로만 정해져 있을 뿐, 최소 몇 시간을 신체활동에 할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해보기’식으로 음악·미술과 체육이 통합된 활동을 하는데, 수업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교사 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교사에 따라 체육수업의 양과 질이 다르다. 첫째는 저학년 때도 일주일에 두
교육부 관계자는 “ 초 1·2학년은 발달 단계상 통합교육이 적합하다고 해 수학·국어 외 교과는 통합교과로 묶여있는 것”이라며 “즐거운생활에 신체활동 부분이 적다는 지적이 나와 내년부터 적용되는 ‘2022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실내외 놀이 및 신체활동 기회를 충분히 부여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새 교과서에는 신체활동분이 좀 더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육이 따로 있는 초등 고학년도 수업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정부는 2017년까지 모든 초등학교에 체육전담교사를 배치한다고 밝혔지만, 2020년 전담교사 배치율은 68% 수준이다. 2021년부터는 통계도 없다. 교사 배치는 교육청 권한이란 의견이 나와 교육부가 통계를 집계하지 않아서다.
경기의 한 교사는 “스포츠강사가 배치된 학교도 있지만 수업 보조 역할이어서 한계가 있다”며 “전담교사가 없는 곳은 교사가 교구를 준비해야 하는 등 체육 수업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이가 체육 시간에 일 년 내내 공 드리블만 했다고 한다”, “체육 수업이 대충 진행된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체육수업에 불만을 느끼는 학부모 중 상당수는 사교육을 찾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중학생(76.2%), 고등학생(66%)보다 높았고, 67.8%는 ‘예체능, 취미·교양 분야’ 사교육을 받았다. 예체능 사교육 비중이 높은 것은 학원이 돌봄기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체육교육 수요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취재과정에서 만난 초등학생 학부모 중 상당수는 체육 사교육을 ‘돌봄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이 필요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 다닌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이 강화된다면 사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란 부모도 있었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학업에 열성적인 지역이나 집에서 운동 사교육에 더 공을 들인다. 신체활동이 애들 스트레스 푸는 데도 좋고 중·고등학생 때 공부할 체력을 기르려면 어릴 때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국·영·수 학원 끝난 뒤 저녁 8시에 태권도 학원에 가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학부모도 “학부모들은 학교에만 맡기면 운동 부족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학교에서 기본적인 학습을 책임지는 것처럼 운동도 일정 부분 책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요즘은 미취학 단계부터 격차가 벌어진다. 경제적 여건이 되고 부모가 신경 쓰는 집은 대여섯 살부터 태권도나 축구, 수영 등으로 운동 시간을 만들어 줘 신체능력이 계속 발달한다”며 “체력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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