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사라진 학교… 운동도 학원 사교육 [심층기획-체육교육 살리자]

김유나 2023. 10. 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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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학교에서 홀대받는 체육
교사 따라 체육수업 질·양 들쭉날쭉… “신체활동 보장돼야”
11∼17세 94% 운동 부족… 세계 최고
초1·2는 별도 수업 없어 사교육 보충
아이들 운동장 수업 달랑 주1회 많아
초1·2 ‘즐거운생활’ 과목에 통합 교육
정해진 체육 시수 없어 학급마다 격차
2020년 체육전담교사 배치율 68% 그쳐
초등생 사교육 68% 예체능분야 차지
학부모 “학교에만 맡기면 운동 부족”
가정 경제력 따라 수영 등 조기 교육
“체력도 빈익빈 부익부” 자조 목소리

경기의 한 초등학교 3학년 A군은 목요일을 제일 좋아한다. 유일하게 운동장에 나가 체육수업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A군의 반은 일주일에 체육 시간이 두 번이지만, 하루는 대부분 교실에서 수업한다. 땀을 흘리며 숨이 차게 ‘뛰는’ 수업만 체육이라 생각하는 A군의 소원은 밖에 나가는 날이 하루 더 늘어나는 것이다.

A군의 어머니도 적은 체육 시간이 늘 아쉽다. A군의 어머니는 “성장기 어린이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뛰고 크는 것도 중요한 임무 아니냐”며 “매일 운동장에 나가도 모자라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체육 시간이 적어 놀랐다”고 말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뒷줄 왼쪽 두 번째)이 지난 5월 전남 담양군 창평초등학교에서 ‘체육온동아리’를 통해 원형피구를 하는 학생들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체육온동아리는 놀이·게임과 접목한 신체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교육부는 온동아리 운영을 통해 체육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제공
A군은 부족한 신체활동을 사교육에서 풀고 있다. 평일엔 태권도와 음악 줄넘기 수업을, 주말이면 수영·축구 수업을 듣는다. A군의 어머니는 “요즘 학부모들은 신체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취학 시기부터 사교육을 시키는데 학교는 신체활동을 등한시하는 것 같다”며 “학교에서 체육에 좀 더 신경 써주면 학생·학부모 만족도가 올라가고 사교육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체육이 소외되고 있다. 체육수업은 신체를 단련시키는 것을 넘어 인성과 학업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쳐 아동 교육에서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지만, 한국 공교육에선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된다. 특히 초등학교 1·2학년은 별도의 체육교과도 존재하지 않아 많은 학생이 공교육 진입과 동시에 체육 단절을 겪는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은 체육 사교육이다. 부모의 재력과 관심 정도에 따라 아동 신체활동의 양과 질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운동 부족 청소년 세계 최고

‘매일 평균 60분 이상 중간∼격렬한 강도의 신체활동’, ‘근력·뼈 강화 운동 포함한 격렬한 운동 주 3회 이상’. 세계보건기구(WHO)가 내놓은 5∼17세 운동 권장량이다. 하지만 한국 아동·청소년 중 권장 운동량을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9년 WHO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11∼17세 중 권장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비율은 94.2%로 세계 146개국(평균 81%) 중 가장 높았다. 운동 부족 비율이 90% 이상인 곳은 한국 외에 필리핀(93.4%), 캄보디아(91.6%), 수단(90.3%)뿐이었다. 통상 국가 소득 수준이 높으면 청소년 신체활동이 늘지만, 한국은 소득 수준이 높으면서도 신체활동이 적은 특이 사례로 꼽혔다.

같은 해 발표된 ‘2018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청소년의 읽기·수학·과학 능력은 세계 79개국 중 5∼11위를 기록했다. 읽기 영역은 6∼11위였음에도 ‘역대 최저 순위’라며 학력 저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고, 교육 당국은 우수 국가의 교육정책을 참고하고 순위 하락 원인을 분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꼴찌’인 운동량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만약 한국 청소년의 학업 성취도가 세계 꼴찌 수준이었다면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라며 “운동 부족도 심각한 문제인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아동·청소년 발달은 학업에만 치우친 기형적 구조”라고 말했다.

WHO의 통계는 수년 전 조사이지만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특히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신체활동이 줄어 상황은 더 나빠졌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2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청소년의 생활체육 참여 비율(일주일에 1회·30분 이상 운동)은 52.6%로 전년(55%)보다 2.4%포인트 줄었고, 70대 이상(54.3%)보다도 낮았다. 체육교육계에선 청소년들의 운동 부족에는 학교의 책임도 크다고 보고 있다.
◆초 1·2 ‘체육’ 교과 없는 한국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초등학교 3∼6학년의 체육 시간은 연간 102시수다. 3·4학년이 총 1972시수, 5·6학년이 2176시수란 점을 고려하면 체육이 교육과정의 9∼10%를 차지하는 셈이다. 산술적으로는 일주일에 2·3회 체육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A군 사례처럼 교실에서 이론 수업 등을 진행하는 곳도 많아 ‘중간∼격렬한 강도’의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그나마 체육 수업 시간이 확보되는 것도 3학년부터다. 초 1·2학년은 40년째 음악·미술·체육이 ‘즐거운생활’ 과목으로 통합돼있다. 즐거운생활은 1학년 180시수, 2학년 204시수로만 정해져 있을 뿐, 최소 몇 시간을 신체활동에 할애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해보기’식으로 음악·미술과 체육이 통합된 활동을 하는데, 수업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교사 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교사에 따라 체육수업의 양과 질이 다르다. 첫째는 저학년 때도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장에 나갔는데 둘째는 1학년 때 운동장에 한 번도 안 나갔다”며 “주변에 물어보면 미술 위주로만 수업하는 반도 많고, 통제 안 되는 학생이 있으면 교실 밖에 더 안 나가는 등 반마다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체육 교과가 따로 없는 국가는 한국 외에 찾기 어렵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중등학교 교과 교육과정 국제 비교 연구’(권정례·2018)에 따르면 호주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체육 교과를 지도하는 등 해외 많은 나라가 체육 조기교육을 중시한다. 보고서는 “한국 초 1·2학년은 ’체육 단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체활동 교육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국도 신체활동 교육을 책임지는 공교육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 초 1·2학년은 발달 단계상 통합교육이 적합하다고 해 수학·국어 외 교과는 통합교과로 묶여있는 것”이라며 “즐거운생활에 신체활동 부분이 적다는 지적이 나와 내년부터 적용되는 ‘2022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실내외 놀이 및 신체활동 기회를 충분히 부여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새 교과서에는 신체활동분이 좀 더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육교육 전문가들은 신체활동 시수가 별도로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과목과 시수를 공유하는 구조에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회 위원장은 “발달에서 중요한 것은 영양·휴식·운동의 조화인데 지금 학교는 운동 시간이 너무 적다”며 “가장 큰 문제는 교육부가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체육 사교육’으로 몰리는 학생들

체육이 따로 있는 초등 고학년도 수업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3년 정부는 2017년까지 모든 초등학교에 체육전담교사를 배치한다고 밝혔지만, 2020년 전담교사 배치율은 68% 수준이다. 2021년부터는 통계도 없다. 교사 배치는 교육청 권한이란 의견이 나와 교육부가 통계를 집계하지 않아서다.

경기의 한 교사는 “스포츠강사가 배치된 학교도 있지만 수업 보조 역할이어서 한계가 있다”며 “전담교사가 없는 곳은 교사가 교구를 준비해야 하는 등 체육 수업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아이가 체육 시간에 일 년 내내 공 드리블만 했다고 한다”, “체육 수업이 대충 진행된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체육수업에 불만을 느끼는 학부모 중 상당수는 사교육을 찾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중학생(76.2%), 고등학생(66%)보다 높았고, 67.8%는 ‘예체능, 취미·교양 분야’ 사교육을 받았다. 예체능 사교육 비중이 높은 것은 학원이 돌봄기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체육교육 수요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취재과정에서 만난 초등학생 학부모 중 상당수는 체육 사교육을 ‘돌봄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이 필요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 다닌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이 강화된다면 사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란 부모도 있었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학업에 열성적인 지역이나 집에서 운동 사교육에 더 공을 들인다. 신체활동이 애들 스트레스 푸는 데도 좋고 중·고등학생 때 공부할 체력을 기르려면 어릴 때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국·영·수 학원 끝난 뒤 저녁 8시에 태권도 학원에 가는 아이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학부모도 “학부모들은 학교에만 맡기면 운동 부족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학교에서 기본적인 학습을 책임지는 것처럼 운동도 일정 부분 책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요즘은 미취학 단계부터 격차가 벌어진다. 경제적 여건이 되고 부모가 신경 쓰는 집은 대여섯 살부터 태권도나 축구, 수영 등으로 운동 시간을 만들어 줘 신체능력이 계속 발달한다”며 “체력도 ‘빈익빈 부익부’가 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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