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테슬라 뒤에…‘차량용 OS’ 춘추전국 시대
10년 전 테슬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해당 분야 선도
현대차 2025년 독자 OS 목표 등 브랜드별 기술 확보 고심
테슬라의 모델 S는 출시 다음해인 2013년 위기를 맞았다. 그해 10월과 11월 미국 워싱턴주·테네시주, 멕시코 등에서 모델 S에 불이 나는 사건이 수차례 발생했기 때문이다. 주행 중 도로 위 파편이 배터리팩으로 튀었고 배터리에 구멍이 나면서 발생한 화재였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의 안전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자체 조사를 진행한 테슬라 기술팀은 모델 S의 현가장치(서스펜션)를 조절해 차량 바닥 높이를 조금만 들어올려도 파편으로 인한 화재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완성차 회사들은 대리점이나 서비스센터를 통해 수리하는 방식을 취했을 테지만 테슬라는 달랐다. 서스펜션이 차체 높이를 수㎝ 들어올리도록 코드를 수정해서 무선통신을 통해 그해 12월 모델 S를 모두 업데이트했다. 스마트폰 소프트웨어·펌웨어 업데이트에 많이 활용되는 OTA(Over-the-air) 방식이다. 급한 불을 끈 테슬라는 이후 배터리팩을 보호하기 위해 더 두꺼운 판을 대는 방식으로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몇달 뒤에는 모델 S를 충전하던 충전기에서 화재가 났는데 테슬라는 이번에도 OTA 방식으로 과부하를 막는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비슷한 시기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차량 소프트웨어 문제로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리콜을 실시했는데, GM은 고객들이 대리점을 방문해 차량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도록 했다. 서비스 비용 등 리콜에만 막대한 돈이 들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당시 “앞으로 리콜 등에 더 큰 비용이 들게 될 것”이라며 “테슬라 같은 방식의 기술이 널리 배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테슬라의 모델 S처럼 소프트웨어로 제어할 수 있는 차량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라고 부른다. 소비자로서는 수리가 쉬워지고 차량도 새로 나온 자동차처럼 관리할 수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10년이 지난 지금 SDV는 자동차 업계의 최대 화두지만, 여전히 완성차 업체들은 SDV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GM 등 완성차 업체들은 리콜에 많은 돈을 쓰는 반면, 테슬라는 OTA를 고도화하고 있다. 지난 17일(현지시간)에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테슬라의 모델 X가 브레이크액 부족 상황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결함을 이유로 리콜을 결정했는데, 테슬라는 이번에도 OTA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여전히 OTA에 애를 먹는 건 각각의 자동차 부품을 통합 제어하는 차량용 운영체제(OS)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1대에는 60~100개의 전자제어유닛(ECU)이 들어간다. 브레이크, 트랜스미션, 엔진, 카메라 등 각각의 전장 부품을 제어하는 작은 컴퓨터다.
ECU 구동에 OS가 사용되는데 이 OS가 부품마다 제각각이다. 현재 블랙베리의 QNX OS, 완성차업체연합이 만든 AUTOSAR OS, 리눅스 기반 OS 등이 사용된다. 차량에 장착된 ECU의 수가 많고 OS도 다르다 보니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차량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테슬라는 모델 3에 다른 ECU를 제어하는 ‘중앙집중형’ 통합 ECU를 탑재하고 통합 OS의 기능을 고도화했다. 2020년 모델 3를 분해한 일본의 자동차 회사 기술자들이 “우리보다 (구조적으로) 6년은 앞서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테슬라는 통합 OS를 활용해 ‘구독 사업’도 벌인다. 자사 차량 소유자를 대상으로 테슬라의 자율주행기능(FSD)을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1만2000달러를 한 번에 내거나 월 구독료를 내는 방식으로 테슬라 차량에서 이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통합 OS를 통해 확보하는 데이터 역시 귀중한 자산이 된다. 테슬라는 FSD로 얻은 주행 데이터 중 양질의 것을 선별해 자율주행기능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제 완성차 업체들도 통합 OS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테슬라처럼 자체 OS를 확보하려는 업체도 있고 기존 OS를 활용하려는 이들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체 OS 진영으로 분류된다. 현대차그룹은 ccOS를 개발해 ‘제네시스 GV60’ 등에 적용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인포테인먼트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 일부 기능만 제어할 수 있는 OS다.
현대차그룹은 주행 영역 등의 ECU를 단계적으로 통합해 2025년까지 모든 영역의 제어가 가능한 ccOS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폭스바겐(VW.OS), 메르세데스 벤츠(MB.OS), BMW(i드라이브), 도요타(아린) 등이 2024~2025년을 목표로 통합 OS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스마트폰 OS의 양대 산맥인 구글은 2017년 차량용 OS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를 공개했는데 여기에는 볼보와 폴스타가 합류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을 아끼고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 출시 가능성이 있는 애플도 지난해 세계개발자회의를 통해 차량 계기판 디스플레이와 라디오, 공조 장치 등을 제어할 수 있는 차세대 애플 카플레이를 선보였다. 화웨이도 ‘하모니’라는 차량용 OS를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마치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제조업체들이 OS 개발에 합종연횡한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등이 자체 OS를 확보해 애플의 iOS처럼 성공할 수도, 자체 OS 개발을 고집하다가 휴대전화 사업을 접은 노키아가 될 수도 있다. 자체 OS에는 실패했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으로 빠르게 전환한 삼성전자의 선례도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차량 제어가 소프트웨어로 가능해지면 해킹 위험성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한다. 이에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는 ‘자동차 사이버보안 국제기준’을 제정해 지난해 7월 이후 개발에 들어가는 모든 자동차에 사이버보안 관리체계 인증을 받도록 했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통합형 OS 개발을 위해 사이버보안, 자율주행, 블록체인,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국내외 핵심 인재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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