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법원의 판결과 언론 공공성
언론의 자유나 공공성을 법원 판결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 불행한 현실이다. 언론의 자유나 공공성이 현실에서 침해당하거나 위협에 처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올바른 판단으로 바람직한 원칙이 정립되는 경우도 충분히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관습법의 전통이 있는 미국 대법원의 판례로 정착된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나 ‘현실적 악의’ 이론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선 2012년 MBC 노조가 진행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판례가 대표적이다. 낙하산 사장과 방송 탄압에 저항하기 위해 파업에 참여했던 핵심 노조원들을 MBC가 업무방해 혐의로 해직시키자 해직자들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남부지방법원은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마련(방송의 공공성)은 근로자들의 근로 환경이나 근로 조건에 관한 것으로 쟁의 행위의 정당한 목적’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언론노조가 경제적 이익보다 더 중요한 언론 공공성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판례적 근거가 만들어졌다. 언론 공공성을 보장한 획기적 판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반면 법원의 판결은 권력의 언론 탄압을 정당화시킬 위험성도 안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김의철 전 KBS 사장이 제기한 해임정지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가 남은 방송통신위원장을 해임하고 임기 만료된 위원의 후임 임명을 보류한 3인 비상 체제가 공영방송 KBS 이사장을 해임하는 등 이사회 구성을 바꿨다. 구성이 바뀐 이사회는 신속히 KBS 사장을 해임했다. 김의철 사장은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임기가 2024년 12월까지라서 본안 소송 결과를 기다리기에는 이익의 침해가 심하다면서 해임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행정법원은 ‘해임 처분 당시 KBS의 기자와 PD, 간부들 상당수가 전국언론노동조합(KBS본부) 출신이고 신청인이 취임한 이후 임명된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 2명이 모두 위 조합의 위원장 출신인 것으로 보’이고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합의한 주요 간부 임명동의제 확대가 ‘사장이 상위 직위로의 승격임용을 한다’는 KBS 인사규정(제17조)에 저촉되고, ‘내부 규정에 따라 이사회 심의·의결로 이뤄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KBS 내 다수 노조다. 더군다나 기자나 PD들 중 대다수가 가입한 노조다. 기자·PD 직종의 간부 ‘상당수’가 본부 노조 출신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아닐까? 소명이 부족했을까 아니면 판사가 이를 무시했을까? 주요 간부 임명동의제 확대가 인사규정에 저촉된다는 논리도 합리적이지 않다. 인사규정상 사장에게 권한이 귀속된다고 해도 사장이 단체협약을 통해 관련 직군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그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정권이 언론을 장악해 강요한 것도 아니고, 노사가 자발적 협의를 통해 결정한 사항이다. 법원이 자율적으로 협의한 사안까지 규율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법원은 언론의 공공성 확보 투쟁의 역사성을 부인했다. 1980년대까지 쿠데타 독재 정권들은 공영방송 사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낙하산 사장 임명에 반대하는 내부 구성원의 저항이 있었다. 언론 민주화 투쟁이다. 사장 임명이 중요한 것은 언론 보도의 공공성을 좌우할 주요 간부의 임명 권한이 사장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장이 누가 되든 부당한 인사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내부 자율성(내적 자유)을 확보하는 것이 언론 공공성 보장의 핵심 의제가 된 것이다. 임명동의제는 그 성과이다. 더군다나 김의철 사장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른 언론사에도 권장되어야 할 사안을 인사규정 위반이라고 판결한 것은, 언론의 공공성에 역행하는 판결이라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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