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팔레스타인을 위하여
제정신으로 볼 수 없는 일을 제정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누가 계속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인간인가, 수없이 되묻는 시간이다. 팔레스타인 전쟁 속보를 부산역 대합실에서 처음 들었다. 함께 모여 뉴스를 응시하던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눈동자 속에는 불안감이 차오르고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길, 일요일 오후 동서울터미널에는 동부전선으로 귀대하는 군인들로 붐빈다.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의 군인을 보며 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여기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땅. 아무리 모른 척하며 살아가도,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그 진동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크게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폭탄은 이곳의 하늘 위로 겹쳐진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이 땅의 비극과도 닿아 있다. 강대국 간의 전후 협상이 비극의 씨앗이 되고, 전쟁이 끝났을 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던 곳.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해는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분단 상태로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해다. 이 땅의 일제강점기는 36년이었지만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은 올해로 75년에 이른다. 만약 이 땅의 식민지 역사가 그때 끝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시키는 대로 복종하면서,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임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전쟁에 대한 기사와 댓글은 압도적으로 이스라엘 편이다. 무장독립운동은 점령국의 입장에선 언제나 폭동이고 테러로 규정되는데,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일본 우익에 대해선 식민지 민중의 입장에서 분노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점령국이 아닌 약소국의 입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선 점령국의 입장에 선다.
‘이제 하마스는 끝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없앨 명분을 잡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쌍하게 됐다….’ 가장 선량한 사람들의 태도라 할 만한 동정심도 여기에 머문다.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가 지금 일어나는 보복학살의 명분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기습에 의해 개전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까지 이스라엘 군대와 민병대에 목숨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은 230명에 이른다. 2022년 한 해 희생자는 204명이었다. 하마스의 작전 직전인 올해 6월15일부터 9월15일까지 3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부상자는 2830명이고, 1504명이 체포당했으며, 68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75년 동안 겪어온 고난은 극단에 달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누가 시작했는가’가 아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가자지구의 알 아흘리 아랍병원에 미사일이 떨어지기 전에 촬영된 영상이다. 어린이들이 동그랗게 손에 손을 잡고 서서 노래를 부르며 함께 웃는 모습. 어른들은 종종 어린이들을 이 병원 안마당으로 데리고 왔다. 어린이들이 공습에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놀고 난 후에는 함께 마당을 청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터를 돌보고 가꾸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거기 있었던 사람들은 지금은 없다. 가장 많이 울었지만 나는 비로소 전쟁에서 죽음만이 아니라 삶도 보게 되었다. 주검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 속에서 서로를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영상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누구의 폭탄인가가 아니라 그곳에 어떤 삶이 있었는가라는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도 삶이 있다. 내일 결혼할 부부가 있고, 오늘 태어난 아이가 있으며, 선생님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교가 있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 아이들이 있다. 죽지 않고 살기를 원하고,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내고 있다. 전 세계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생지옥’이라 묘사하는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로를 돌보며 최후까지 존엄을 지키는 인간의 모습을 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본다. 무엇에서 시작되었든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명백한 집단학살이고 인종청소다.
우리의 침묵은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감행할 용기를 준다. 전쟁은 전쟁 수행자만이 아니라 전쟁을 바라보는 사람의 존엄과 인간성도 파괴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력감과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러니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시작하자. 전쟁에 반대한다. 학살을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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