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쉽게 돈 버는 알바할래?”… 성매매 위험 도사리는 알바사이트 주의보
구인구직 사이트 이용해 성매매로 끌어들여
성매매 위험 누구에게나 뻗칠 수 있어 위험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 텅텅 빈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었는데요.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무 살을 아무도 채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급한 마음에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작성해서 남들도 볼 수 있도록 공개했었는데요. 정말 1시간 사이에 모르는 업체로부터 전화가 5통은 걸려왔어요. 광고 전화는 물론,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 없이 면접에 한번 와보겠냐고 물어봤었고요. 그때는 무서운 줄 모르고 귀찮은 마음에 다시 이력서를 비공개로 돌리고 오는 연락은 모두 무시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자칫하면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는 행동이었죠.
지난 4월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던 10대가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본인의 신상 정보가 담긴 이력서를 올렸습니다. 이를 본 가해자 남성 A 씨는 자신을 스터디카페 관계자라고 소개한 뒤 피해자에게 접근했습니다. 면접을 빌미로 피해자를 부산의 한 스터디카페로 부른 A 씨는 ‘더 쉽고 좋은 일이 있다’며 바로 옆 건물로 유인했습니다. 피해자가 끌려간 곳은 유사 성매매업소였죠. 피해자는 A 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9월 27일 이 사건으로 A 씨는 구속 기소됩니다. A 씨를 수사하던 검찰은 추가 피해 사실도 알아냈습니다. A 씨는 2021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1000여 명의 여성에게 연락해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이 중 280여 명과 면접을 진행한 뒤 40여 명을 유사 성매매업소로 유인했습니다. 여기서 최소 6명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죠. 수사 기관은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보면 유사 성매매업소로 추정되는 업체의 구직 광고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이트에서는 성매매업소를 제한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해두지만 사각지대를 이용해 이를 피해 가기도 합니다. A 씨는 문제의 유사 성매매업소를 전기통신사업자로 등록해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직 광고를 올렸고, 20개월가량의 범행 기간 동안 구인구직 사이트의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활동했습니다.
A 씨의 범행 수법은 과거부터 쓰여왔던 것입니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전형적인 범행 수법에서 구직 환경만 조금 바뀌었죠.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구인 광고 전단지를 통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광고지에 ‘숙식제공’ ‘급여 많음’ 등을 기재해 피해자를 유인한 뒤 성매매업소로 끌어들였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구인구직 사이트를 이용해 여성들을 끌어들입니다. 사이트에서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처럼 위장한 뒤 여성들을 끌어들여 성매매업소로 유인하기도 하고, 바·카페 등과 같은 곳에서 먼저 일하게 한 뒤 ‘다른 곳에서 일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말로 속인 뒤 성매매업소로 데려가기도 합니다. 구인구직 환경이 온라인으로 옮겨오면서 더 활발하게, 더 넓은 규모로 성매매 업자들이 활동하게 된 것일 뿐, 수법은 과거와 비슷합니다.
성매매피해지원 단체들이 입을 모아 “아주 이례적인 사건은 아니다. 전형적인 수법을 썼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찾아갔다가 유사 성매매업소나 성매매업소로 연결되거나,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다수 있었다고 말했죠.
구직자가 일을 하기 위해 개인 정보를 적극적으로 온라인에 공개하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성매매 위험은 누구에게나 뻗칠 수 있게 됐습니다. 특히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구인구직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거의 없는 10·20대 여성이 주 타깃이 됐죠. 어린 여성들은 구직 내용이 이상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채지 못하고 이런 업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요즘은 성매매업소가 아닌 것처럼 위장해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설마 구인구직 사이트에 성매매업소 구직 광고가 올라오겠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매매 위험에 노출된다”고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성행하는 성매매 구인을 효과적으로 단속해야 성매매 업자들의 활동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구직자가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구인구직 플랫폼 자체에서 성매매 구직 광고를 단속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업에서 부적절한 구인 글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대응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죠. 정부도 기업에서 규제 조항을 만들고, 구직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기업·정부 차원에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이 사건에 대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습니다. A 씨는 현재 간음유인, 피감독자간음, 성매매처벌법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입니다. A 씨의 성범죄를 도운 공범 2명은 직업안정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송치됐죠. 차가영 부산성폭력상담소 팀장은 “성폭행 발생 후 피해자가 사망한 것이기 때문에 A 씨는 ‘강간치사’로 구속 기소돼야 하는 것이 맞다”며 “공범 2명도 ‘특수강간치사’로 혐의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A 씨가 여성들에게 접근하는데 활용했던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 대표는 국정감사에 출석해 사과했습니다. 김병섭 알바천국 대표는 “당사 플랫폼을 이용한 구직자 대상으로 악의적인 성범죄 피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 피해자 유가족분들에게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이력서 열람 상품은 대부분 채용 플랫폼사에서 모두 동일하게 운영하는 서비스이고,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의를 통해 공동 대응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죠. 김 대표는 “현재는 주의 멘트를 안내하고 있고, 추가적인 보완 대책도 마련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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