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젯밤 납을 마셨다고?…미궁에 빠진 술판, 대체 ‘무슨 일’ [김기정의 와인클럽]
또 다른 ‘버건디’선 기준치 50배 검출
수입와인에 ‘납’포함 원인은 ‘미스터리’
과거엔 단 맛 내려 고의로 ‘납’ 첨가
와인 애호가 베토벤 ‘사인’ 주장도
머리카락서 정상인 100배 납 검출
최근 조사선 ‘납 중독설’ 다시 뒤바뀌어
납 검출 와인 제조사 유통, “안전할까”
애매모호한 ‘동일 제품’ 적용도 문제
수입명 달라도 사실상 같은 와인일수도
모르고 마셨다면 ‘운’ 나쁜 소비자만 피해
식약처 관계자는 “생산 또는 유통과정 어디선가 납에 오염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납’이 검출된 와인들은 애호가들이 한 번쯤 마셔보길 원하는 유명 와인들입니다. 도대체 이런 유명 수입 와인에 왜 납이 들어있는 것일까요? 과거에는 와인에 ‘납’을 넣었습니다. 와인 애호가 베토벤의 죽음도 납이 들어있는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란 주장도 나왔습니다.
1827년 3월. 불멸의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이라고 합니다. 베토벤은 죽기 전에 무엇을 애석해하고 있었을까요. 베토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은 와인을 무척 좋아해 매일 한 병 이상씩 와인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 베토벤을 위해 그의 악보 출판사가 12병의 와인을 선물로 샀다는 소식을 들은 거지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와인을 마시기엔 건강이 너무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26일 베토벤은 56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베토벤은 죽기 전 자신이 죽으면 부검해 질병과 고통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부탁합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을까요. 그가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아요. 더 크게 말해 주세요’라고 사람들을 향해 고함칠 수 있겠느냐? 완벽했던 내 청각의 약점을 어찌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느냐. (중략)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언젠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대들이 나를 얼마나 부당하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라.
세월이 흘러 여러 명의 손을 거친 뒤 ‘힐러의 머리카락’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머리카락 다발이 1994년 소더비 경매에 나옵니다. 낙찰자는 머리카락 일부를 베토벤 관련 연구소에 기증합니다. 베토벤의 유언대로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1999년 핵에너지 연구로 유명한 미국 시카고의 아르곤 연구소가 흥미로운 검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그때까지 베토벤의 사인은 성병인 ‘매독’일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해보니 사인이 ‘납중독’일수 있다는 겁니다.
머리카락서 일반인의 100배가 넘는 납 성분이 검출됐기 때문입니다. 반면 수은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 활동 당시 수은이 매독 치료제로 사용됐기 때문에 매독 사망설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물론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기에 ‘납’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했기 때문에 꼭 와인의 문제라기 보기는 어렵습니다. 베토벤이 납에 오염된 도나우강의 민물고기를 먹었을 것이란 추측도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3월 또 다른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베토벤의 납 중독설은 다시 뒤집힙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으로 알려진 ‘힐러의 머리카락’ 다발이 DNA분석 결과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연구진은 베토벤이 간 질환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러면 한국 식약처의 검사에 오류가 있었을까요. 식약처는 ‘납 검출’ 등 기준에 부적합할 경우 재시험을 통해 확인한다고 밝혔습니다.
납 검사는 대상 와인을 일정부분 따라 도가니 용기에 담은 뒤 450~550도의 가마에서 태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유기물은 날라가고 납 등 무기물만 남게 됩니다. 질산으로 정용을 한 후 납 성분을 분석하는 무기분석기기에 넣고 납 검출 유무를 확인하는데 기준치는 0.2㎎/㎏이지만 ‘불검출’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기로 실험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가 들어가기는 힘든 구조”라고 말했습니다.
와인은 병행수입이 가능합니다. 한 와인을 여러 수입사가 유통할 수 있어 특정 수입사에 해명을 요구하기도 힘듭니다. 실제 문제가 된 로마네 콩티 라 타슈와 도멘 비죠 에세조 와인은 공식수입사가 아닌 병행수입사에서 와인을 수입하려다 납이 검출됐습니다.
식약처가 로마네 콩티 라 타슈를 제조하는 DRC 전 제품에 대한 수입을 중단시켜 버리자, 와인업계에선 다소 과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소비자로선 안심이 됐습니다.
하지만 도멘 비죠 에세조는 공식수입사도 납 검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지가 기사를 내보내자 공식수입사인 크리스탈 와인 관계자는 “기준치 이상으로 (납이) 발견되면 당연히 수입이 금지된다. 식약처로부터 어떤 문의나 제재 혹은 소명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도멘 비조의 공식수입사인 크리스탈와인컬렉션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식약처의 정식검사를 통과한 제품으로 납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식약처는 유통되고 있는 와인은 ‘도멘 비조 에세조 그랑크뤼’고 납이 검출된 와인은 ‘도멘 비조 에세조’라 다른 와인이란 입장입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수입사에서 수입신고한 제품명이 기존의 수입품과 달랐고 라벨 디자인, 알코올 도수 등도 달라 관련 규정상 다른 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멘 비조’는 생산자의 이름이고 ‘에세조’는 포도밭 이름입니다. ‘그랑크뤼’는 포도밭의 등급인데 에세조 포도밭은 모두 그랑크뤼 등급입니다. 이름만 봐서는 같은 와인일 수 있는데 식약처 규정상 다른 와인으로 적용받은 겁니다. ‘동일 제품’ 규정은 내년부터 바뀝니다.
가장 중요한 왜, 어떻게 와인에 납이 들어갔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게 됐습니다. 용기, 포장, 상수관, 포도밭 등이 납에 오염되는 등 여러 가능성이 있습니다. 납이 검출된 와인들이 ‘가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올해 납이 검출된 샴페인의 경우 공식수입사가 생산자로 부터 직접 와인을 받았다니 ‘가짜’는 아닙니다.
샴페인 드 브노쥬의 수입사 와이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유통 중인 샴페인 드 브노쥬의 12종 와인은 식약처 정밀 검사 기준에 부합되며, 검역 문제가 있었던 뀌베는 정상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한 잠정적으로 수입 계획이 없다.” 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수입와인에서 ‘납’이 검출됐지만 아무도 소명할 의무가 없습니다. 모두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도하에서라면 혹시라도 납이 든 와인을 마셨다면 그건 소비자가 ‘운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납과 같은 중금속 문제는 소비자가 불안해 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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