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정치의 문턱 앞에 쌓여가는 죽음, 당장 끝내야
가끔 한국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한다. 최상단에는 산업현장에서의 사망사고 속보가 ‘중계’된다. 사망사고의 날짜와 장소, 경위가 전광판에 무심히도 스쳐간다. 죽고 또 죽는 가운데 기억되는 죽음은 드물다. 여럿에게 애도되던 죽음조차 뒤따르는 다른 죽음에 잊혀지기 일쑤다. 지난 15일은 SPC계열사 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숨진 노동자 박선빈씨의 1주기였다. 다가오는 12월10일은 김용균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들의 죽음 사이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에도 죽음과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김용균”이라 외쳐 만든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사업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벌어지지만, 경제단체들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에 따른 경영 부담”을 들어 적용시기 유예를 주장한다. 시행령 개정을 통한 전반적인 법령 후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야당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법제화하는 데 큰 관심이 없다. 외주화 구조, 비용 문제로 환원되는 안전, 근로기준법상의 차별 문제 등이 제기되지만 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정치하는 자들의 눈에는 죽음의 릴레이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김훈 작가는 말했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한”다고.
다음주 일요일은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참사를 대하는 국가의 태도를 보면 오늘날 우리 정치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선명히 드러난다. 생명을 살리는 정치도, 애써 죽이는 정치도 아닌 마냥 버려두는 정치. 그들의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도록 황무지에 버려둔 채 침묵한다. 159명의 죽음이 아무런 ‘사건’도 아니라는 듯. 노동자가 몸에 불을 놓고 교사와 대학원생,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목숨을 내려놓아도 정치는 요지부동이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갈 뿐인데 사회운동의 불씨도 좀처럼 번질 새가 없다.
민주노총과 사회운동단체들은 오는 11월11일 윤석열 대통령을 심판하고 퇴진시키기 위해 20만명의 시민을 모으겠다고 한다. 반면에 일상화된 죽음에 맞서 20만명을 모을 의지와 결기는 요원하다. 물론 재난과도 같은 죽음의 반복에 대한 최고 책임은 국가(그리고 정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그간 ‘국가의 부재’에 맞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주문해왔다. 하지만 되돌아온 어떤 대책도 죽음을 막지 못했다. 죽음을 형성하는 중층적·구조적 원인에 근거한 조사나 대책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사회운동이 응답 없는 정치에 맞서는 유일한 돌파구일 수밖에 없다. 만약 ‘20만명’의 힘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그런 힘을 모아낼 의지가 있다면 정치의 문턱 앞에 쌓여가는 죽음을 당장 끝내야 한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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