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생활 속 쓰임과 사전 뜻풀이가 다른 ‘모닥불’
며칠 새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다. 겨울의 문턱. 오래전 이맘때면 시골 마을에선 ‘모닥불’에 밤이나 고구마를 넣어두고 밤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과거의 향기가 지금 라일락 꽃밭의 향기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타닥타닥’ 불꽃을 날리던 그때의 모닥불이 잘 찍은 사진보다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라는 노랫말로도 익숙한 ‘모닥불’은 사람들의 추억 한 귀퉁이에서 시시때때로 타오른다. 그러나 사실 ‘모닥불’은 거의 모든 사람이 뜻을 잘못 알고 쓰는 말이다. 모닥불의 국어사전상 의미가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은 오래가지 못하고, 불꽃도 크지 않다.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빈약한’ 불이다.
‘모닥불’의 옛 표기는 ‘몽당불’이라고도 하며, 그 어원은 ‘모두+악+불’의 구조로 본다. 즉 “주변에 널려 있는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쓸어서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다. 반면 우리 추억 속에 있는 “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으고 질러놓은 불”을 뜻하는 말은 ‘화톳불’이다. “장작으로 피운 불”이라는 의미에서 ‘장작불’로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도 분명 ‘모닥불’을 “잎나무나 검불 따위를 모아놓고 피우는 불”로만 설명하고 있다. 불꽃은 별로 없고 연기만 잔뜩 나는 불이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캠프파이어’의 뜻풀이를 보면 “야영지에서 피우는 모닥불. 또는 그것을 둘러싸고 하는 간담회나 놀이”라고 돼 있다. 많은 사람의 추억 속에 자리한 불이다. 이는 <표준국어대사전> 제작에 참여한 우리말 전문가들도 ‘모닥불’을 ‘화톳불’과 같은 의미로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국어사전들이 밝히고 있는 ‘모닥불’의 뜻풀이는 바뀌어야 한다. ‘화톳불’의 동의어로 쓸 수 있도록 의미가 확대돼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쓰면 국어사전의 뜻풀이도 변해야 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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